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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비와 당신의 이야기] 긴 기다림, 그 끝엔
2021. 04. 2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건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뚜렷한 꿈도 목표도 없이 지루한 삼수 생활을 이어가던 영호(강하늘 분)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기억 속 친구를 떠올리고 무작정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꿈은 찾지 못한 채 엄마와 함께 오래된 책방을 운영하는 소희(천우희 분)는 언니 소연에게 도착한 영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소희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답장을 보내고 두 사람은 편지를 이어나간다.

우연히 시작된 편지는 무채색이던 두 사람의 일상을 설렘과 기다림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영호는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가능성이 낮은 제안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질 수 있을까.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는 만남과 기다림의 과정을 겪으며 서로에게 스며든 청춘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영호와 소희가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극장가에 오랜만에 찾아온 감성 로맨스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쉬운 결과물을 내놨다. 다소 산만하고 지루한 스토리와 뚝뚝 끊어지는 전개, 캐릭터 분량 배분 실패로 러닝타임 내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다.

손 편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진은 강하늘(위)와 천우희 스틸컷.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손 편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진은 강하늘(위)와 천우희 스틸컷.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여기서 ‘물음표’는 호기심을 자극한다거나,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을 던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진짜’ 주인공들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이건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라는 강하늘의 대사처럼, 관객 역시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순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간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영호와 재수학원에 함께 다니는 수진(강소라 분)은 주인공 소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정작 인물의 서사나 감정선에 대한 설명은 그 깊이가 얕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수진 외에도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에 각자의 사연을 부여하며 극을 풍성하게 채우고자 했지만, 오히려 흐름을 뚝뚝 끊어 몰입을 방해한다. 영호와 소희의 이야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위 왼쪽부터)강소라와 강하늘, 그리고 천우희(아래)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위 왼쪽부터)강소라와 강하늘, 그리고 천우희(아래)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이엔티

영상미는 좋다. 영화는 2003년과 2011년을 배경으로 영호의 오랜 기다림을 그리는데, 스마트폰도 SNS도 없던 그때 그 시절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영호와 소희를 잇는 매개체이자 유일한 소통 수단 손 편지는 답장을 기다리며 설레어 하던 우리 모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비와 어울리는 음악들이 영화의 곳곳을 채우며 귀를 즐겁게 하고, 영호의 손에서 완성되는 가죽공예품들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산들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눈을 사로잡는다.

배우들도 제 몫을 해낸다. 강하늘은 특유의 순수하면서도 ‘허당미’ 가득한 매력으로 마음을 흔든다. 어린 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가능성 낮은 약속을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리는 영호의 순애보가 납득되는 건 오롯이 강하늘이라는 배우가 지닌 순수하면서도 우직한 이미지 덕이다.

천우희와 강소라도 좋다. 먼저 천우희는 필모그래피상 가장 편안하고 친근한 얼굴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특별출연’이라고 하기엔 주연급 비중을 소화한 강소라도 안정적인 연기로 힘을 더한다. ‘미생’ 이후 재회한 강하늘과도 흠잡을 데 없는 호흡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117분, 오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