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인터뷰-이지원 감독②] 그래서 ‘아이들은 즐거웠다’
2021. 05. 03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담아낸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담아낸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①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지원 감독은 아이들이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순수하게 즐거울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주인공인 어린이 배우들을 위한 행복한 촬영 현장을 만들기 위해 ‘우리집’ 윤가은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그리고 이 만남에서 오직 어린이 배우들만 전담해서 케어하는 역할에 대한 힌트를 얻었고, ‘연기 커뮤니케이터’라는 새로운 스태프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작업 자체도 쉽지 않았을 텐데, 대본 없이 촬영을 진행했다고.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겼지만, 정말 어렵고 힘든 촬영이었겠다.   
“애초에 시나리오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데, 그분도 어린이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안 주고 촬영한다. 성인이든 아이들이든 감정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소모될 수밖에 없다. 성인 연기자들은 소모되더라도 본인이 바꾸거나 다시 채울 수 있는데 어린이 배우들은 그게 쉽지 않다. 시나리오를 줘서 연습을 하고 익숙해지면 가짜 같은 모습이 나올까 봐 우려스러웠다. 자연스러움이 제일 중요해서 그렇게(대본 없이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어린이 배우들이 나이만 어렸지 엄청 프로더라. 자신이 배우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또 신지이 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은 즐겁다’를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이지원 감독. /CJ ENM
‘아이들은 즐겁다’를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이지원 감독. /CJ ENM

-신지이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촬영 전에 조언을 구하려고 ‘우리집’ 윤가은 감독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시다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아이들이 방치되는 순간이 있다면서 다음 작업에서는 아이들을 전담해서 케어해줄 수 있는 전문 스태프를 두고 싶다고 하더라.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고,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신지이 배우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데, 원래는 오디션 때 지정 대사나 자유연기를 하지 않고 상황극을 했는데, 상황극을 맞춰줄 배우가 필요해서 그 역할을 부탁했었다. 오디션 과정을 진행하면서 보니 신지이가 아이들과 소통을 너무 잘 하는 거다. 그리고 내 생각을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잘 전달해 줬다. 현장에서도 그런 역할을 계속해 주면 어떨까 생각해서 부탁을 드렸고 고민 끝에 같이 해주기로 했다.

그러다가 연기적인 부분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많은 역할을 부탁하게 됐다. 실제 배우이다 보니 배우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관심도 많고 잘 하셔서 나와 어린이 배우들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줬다.”

-인터뷰 내내 ‘어린이’ 배우라고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다. 보통 ‘아역’ 배우라고 하지 않나.
“어린이 배우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여배우랑 비슷한 거다. 그냥 다 배우이지 않나. 현장에서 중요했던 건 어린이지만 똑같이 배우로 보자는 마음이었다. 나뿐 아니라 스태프, 모두가 그랬다. 또 아역이라는 표현이 배우로서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것 같기도 해서 어린이 배우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요즘 그렇게 많이 쓰더라.”

-아빠를 연기한 윤경호가 원작 캐릭터와 외모적으로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 것 같다.
“(캐스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윤경호가) 겉모습은 산적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엄청 여리다. 눈물도 엄청 많고. 내가 생각한 다이 아빠의 모습도 겉모습은 강한데 속은 훨씬 여린 인물이었다. 그런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다이 엄마를 연기한 이상희는 그 반대의 지점이다. 겉모습은 되게 여려 보이는데 속에는 곧은 심지가 느껴졌다.”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호흡을 맞춘 (왼쪽부터) 윤경호와 이경훈, 이상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호흡을 맞춘 (왼쪽부터) 윤경호와 이경훈, 이상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상희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특히 병원에서 나와 다이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원작엔 없는 부분이더라.
“나도 그 장면이 참 좋다. 그 시퀀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족이 한 공간에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장면이 러닝타임으로 봤을 때 딱 중간인데, 그래서 하나의 꼭지라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다음에 어떤 상실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순간. 한 번쯤은 다이에게 서프라이즈 같은 일이 있지 않을까 했다.”

-다이가 꽃을 땅에 심는 것 역시 원작엔 없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
“확장됐으면 하는 주제를 담고 있는 장면이다. 틀, 울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이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상가족의 모습을 원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숨긴다. 엄마가 아픈 게 싫다기보다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게 싫은 아이인 거다. 화분 안에 있는 꽃이 다이에게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분이 어떻게 보면 안전한 틀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었다. 다이도 그 틀을 깨고 나오는 아이가 됐으면 했다. 화분이 깨졌을 때 그 꽃을 엄마에게 가져다주는 것보다 꽃이 있으면 훨씬 더 좋은 자리에 심어주는 게 다이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또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엄마가 부재하지만, 다이는 또 새로운 세계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느낌도 담고 싶었다.”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다이를 연기한 이경훈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다이를 연기한 이경훈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다이가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담백한 톤이 좋았는데, 이경훈이 성인 연기자도 어려웠을 감정을 적절한 온도로 잘 표현해냈더라.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가장 중요하면서도 연기하기 가장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장면이다. 촬영 들어가기 몇 시간 전부터 신지이 커뮤니케이터와 이경훈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현실에 대입해서 상상하는 건 폭력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슬플 때는 언제인지, 느끼는 두려움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의 모든 어린이 배우들이 슬픔과 두려움에 대해 물어보면 가족과 관련된 답을 하더라. 그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슬픔의 감정으로 연결된 것 같다.

또 이상희가 도움을 많이 줬다. 혼수상태로 누워있고, 아무것도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리액션을 보여줬다고 본다.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이경훈도 느꼈을 거다. 그렇게 점점 감정들이 표현됐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사실 성인 연기자에게도 너무 어려운 감정이잖나. 그래서 그 장면 촬영이 끝나고 한참 동안 이경훈을 안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 고마우면서도 감정이 북받쳤다. (촬영 후 이경훈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부모님께서도 이경훈이 잘 추스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엄마가 다이에게, 다이가 엄마에게 했던 ‘잘 자, 벌레 물리지 말고’라는 대사는 어떻게 떠올렸나
“오마주라면 오마주다. 예전 미국영화 중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그 영화도 너무 좋아했고, 그 대사가 엄마가 정말 사랑하는 자식에게 해주는 말이구나 싶어서 기억에 남았다.”

-노란색의 의미도 궁금하다. 꽃부터 마지막 다이가 입은 옷, 엔딩 크레디트의 타이틀 자막도 노란색이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긴 하다. 노란색이 보호색의 의미가 있잖나.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상징하는 색인데, 내게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보호받아야 하지만 과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에겐 꽃 외엔 노란색이 없다. 유진과 민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재경은 계속은 노란색을 입고 있다. 여정에서 재경이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있다가 다이와 화해하고 책을 놔두고 나서 노란색을 벗고 흰색을 입는다. 또 엔딩에서는 다이가 처음으로 노란색을 입는다. 의미를 담고자 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지원 감독. /CJ ENM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지원 감독. /CJ ENM

-이진아의 음악도 영화와 정말 잘 어울렸다. 음악감독으로는 첫 도전이었는데,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엔 이런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악들,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레퍼런스로 공유했다. 그런데 레퍼런스가 도리어 (이진아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다 제쳐두고 그가 느끼는 것을 해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이 영화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 만들어졌다. (이진아가) 정말 열심히 해줬다. 우선 영혼이 너무 맑다. 같이 만나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후반 작업이 길어서 스트레스도 많았는데, 이진아와 작업하는 시간만큼은 단 한 번도 그런 느낌이 없이 너무 좋았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불안과 의심이다. 그 과정이 내겐 꼭 필요하더라. 끝까지 불안해하고 이게 맞는가 이게 최선인가에 대해 계속 의심을 해야 한다. 확신이라는 것도 중요한데, 불안과 의심의 과정을 잘 겪으면 확신은 그냥 생기는 것 같다. 사실 되게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충실히 걷고 났을 때 나오는 어떤 것들이 그래도 내가 했던 진실된 생각인 것 같아서, 그 과정을 계속 겪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 주변에 좋은 동료들이 그렇게 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조금이라도 안주하면 정신 차리라고 한다. 하하. 나를 안주하지 않게 쓴소리를 많이 해주는 동료들이 있는 게 참 고마운 것 같다. 가끔 야속하기도 하지만. (웃음)”

-차기작 계획은.
“그동안 단편을 계속 찍어왔는데, 원래 내가 찍은 영화들은 훨씬 더 무겁다. 어린이 배우와의 작업도 처음이었고, 더 무겁고 불안한 감정, 20대 젊은이들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그런 얘기를 다시 한 번 장편으로 하고 싶고, 준비도 하고 있다. 어쨌든 감독은 현시대와 현실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에 예민해있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불안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포괄적이지만,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