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시사위크=남빛하늘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최근 불거진 ‘불가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효과’ 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가 발생한 지 3주 만이다.

◇ 홍원식 회장 결국 사퇴… 소비자 반응은 여전히 ‘싸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4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당사의 불가리스와 관련된 논란으로 실망하시고 분노하셨을 모든 국민들과 현장에서 더욱 상처받고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계신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유가공 기업으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도 전날(3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최근 불가리스 보도와 관련해 참담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태 초기부터 사의를 전달했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전했다.

지난달 13일 남양유업의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쇼핑 플랫폼에서는 불가리스가 일시 품절되는 현상이 발생다. /뉴시스
지난달 13일 남양유업의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쇼핑 플랫폼에서는 불가리스가 일시 품절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뉴시스

불가리스 사태는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이 주관한 ‘코로나 시대의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시작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남양유업은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7.8%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쇼핑 플랫폼에서는 불가리스가 일시 품절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 남양유업 주가는 10% 이상 급등해 52주 고점(48만9,000원)을 찍었다가 8.57% 오른 38만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연구 결과 발표 다음날인 14일에는 한때 전거래일 대비 28.6%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곧 해당 연구가 인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동물 세포실험 단계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효과를 단정할 수 없다는 질병관리청과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질병관리청은 “특정 식품의 코로나19 예방 또는 치료 효과를 확인하려면 사람 대상의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분위기도 점점 거세졌다. 과거 ‘대리점 갑질’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 마약 투약 논란’ ‘경쟁사 비방 의혹’ 등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데 이어 이번 불가리스 사태까지 겹친 영향이 크다.

결국 남양유업은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달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제8조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 조치했고, 불가리스 제품을 생산하는 남양유업 세종 생산공장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에 2개월 영업정지 처분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30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총 6곳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영업정지 처분과 별개로 연구결과 발표 전후로 남양유업 주가가 급등한 것과 관련해 한국거래소도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남양유업은 지난달 16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발표 과정에서 세포 실험 단계에서의 결과임을 설명했으나, 인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아 효과를 단정 지을 수 없음에도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홍원식 회장의 ‘사퇴’ 카드를 두고, 남양유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인식한 데 따른 결정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홍 회장은 기자회견 중 눈물까지 보였고, 자식에게 경영권 승계도 안하겠다고 발표했다. 남양유업 입장에선 사실상 ‘마지막 카드’까지 던진 셈이다.

이번 홍 회장의 사퇴·경영권 불승계 카드가 불가리스 사태를 잠재울 지,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시킬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과거 잇따른 논란에도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추지 않던 홍 회장이 처음으로 직접 기자회견에 등장해 최후의 보루 카드를 꺼낸 만큼,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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