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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박예니, 뜨겁고 간절했던
2021. 05. 17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신예 박예니가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에일리언컴퍼니
신예 박예니가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에일리언컴퍼니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신예 박예니는 다섯 살 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 ‘공부를 잘하면 연기를 시켜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미국 대학원 석사 학위까지 땄을 만큼 연기를 향한 열정은 뜨겁고 간절했다. 그리고 배우가 된 그에게 꿈을 향해 견디고 달려온 그 오랜 시간은 다시 시작된 새로운 여정을 또다시 견디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박예니는 미국 뉴욕대학교 티쉬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딴 유학파 출신 배우다. 미국에서 연기 공부를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 단역으로 처음 시청자와 만난 그는 영어 통역사로 분해 한국어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안정적인 연기로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한 광고에서 배우 김남희와 현실감 넘치는 부부 생활을 능청스럽게 표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2020)에서 실종전담반 형사 역을 맡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그는 최근 종영한 OCN ‘타임즈’에서 언론사에서 번역 업무를 담당하는 송민주로 분해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호평을 얻었다.

박예니는 비중에 상관없이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의 첫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감독 이창원‧권성모) 속 활약도 그렇다.

극영화로는 국내 최초로 시청각장애를 다루고 있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박예니는 치매인 아버지(강신일 분)와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돕고 있는 연주를 연기했다.

박예니는 농촌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등장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더니, 수더분하고 털털한 면모부터 재식과 은혜를 가족처럼 아끼고 챙기는 따뜻한 인간미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 뭉클함을 안기기도 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감독 이창원‧권성모)로 관객 앞에 서는 박예니. /에일리언컴퍼니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감독 이창원‧권성모)로 관객 앞에 서는 박예니. /에일리언컴퍼니

박예니는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는 그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는 각오를 전하며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감독님이 광고를 보고 내가 나온 다른 작품도 찾아보셨나 보더라. 미팅 때 만나 수다를 오래 떨었고, 그날 밤에 (캐스팅) 연락을 받았다. 광고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내 모습이 좋았다고 하시더라. 틀에 박힌 연기가 아니라 과하지 않은데 웃긴 느낌이 좋았다고 하셨다. 연주가 참하면서도 털털했으면 했다는 감독님의 생각이 (광고 속 모습과) 잘 매칭된 것 같다.”

-재식을 향한 연주의 감정은 어떻게 해석했나.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 더 자세히 담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는데.
“연주가 서울에서 무용을 하던 친구인데, 치매인 아버지와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다. 무언가 사정으로 인해 그곳에 투입된 인물이기 때문에 그 공간과 이질감이 있었을 거다. 그런 이질감이 재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 같다. 또 연주가 은혜와 친해지고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재식이 가족을 꿈꾸고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재식과 연주가 감정을 쌓아나가는 과정과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대사나 장면들이 있었는데 편집이 됐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재식과 은혜의 관계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그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보다 감독님의 의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춘 박예니(왼쪽)과 강신일 스틸컷. /파인스토리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춘 박예니(왼쪽)과 강신일 스틸컷. /파인스토리

-사라진 아버지를 찾고 안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연주에게 굉장히 중요한 감정신이었는데, 촬영은 어땠나.
“원래 대본에는 재식이가 달려가고 연주가 눈물을 훔치며 멀리서 바라보는 거였는데,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진구 선배가 재식이라면 그냥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냈다. 연주는 달려갈 것 같더라. 그래서 그렇게 수정돼서 촬영에 들어갔다. 연주가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설정이나 ‘그렇게 없어지면 어떡해?’라는 대사도 없었는데, 감정에 몰입하다보니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 역의 강신일 선배가 정말 잘 맞춰주셨다. 계획에 없이 끌어안았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진짜 치매노인처럼 ‘이 사람 누구지?’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아 내 딸이구나’하는 눈빛을 보이면서 있는 힘껏 안아주셨다. 그래서 바로 오케이 사인이 났다. 강신일 선배도 나도 가장 본능적으로 연기해서 완성된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은혜와 재식을 목적 없이 돕고 선을 베푸는 연주가 은혜와 조카들을 비교하며 ‘그나마 멀쩡하니까’라고 말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쁘다’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더라. 인지하지 못한 채 얼마나 쉽게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반성이 되기도 했는데. 
“누구나 개인적으로 알기 전에는 겪어보지 않은 거니까 실수할 수 있잖나. 그런데 재식이 익숙하다는 듯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라고 말한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이질감이 없다. 이질감이 너무 심해지면 반감이 된다.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이질감을 없앨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불쌍하거나 불행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싫다. 그냥 다른 것이지 않나. 몸이 다르게 생긴 것이고. 다만 눈이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게 더 불편할 순 있겠지. 그러면 보이는 사람이 안 보이는 사람을 도와주면 되는 거다. 나보다 키 큰 친구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처럼.”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호흡을 맞춘 진구(왼쪽)와 박예니 스틸컷. /파인스토리 ​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호흡을 맞춘 진구(왼쪽)와 박예니 스틸컷. /파인스토리 ​

-이번 작품 때문이 아니라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인 것 같은데.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고, 운이 좋게 미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곳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벽이 그렇게 높지 않다. 계단이 있으면 우린 올라갈 수 있지만 휠체어 타신 분은 못 올라가니까 그냥 경사면으로 해놓는다. 다 다닐 수 있으니까. 이 세상에는 비장애인도 있지만, 장애인도 있다. 그냥 비장애인이 숫자가 조금 더 높을 뿐이다. 귀가 안 들리는 커뮤니티는 본인들이 장애라고 분류되는 걸 싫어한다. 언어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어나 영어를 하듯 수어를 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구수했다. 정겹고. 하하. 제작진과 배우 모두 취지가 좋고 의미 있는 영화니 사명감을 갖고 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얼굴 붉히는 일 하나 없었고, 시골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촬영했다. 영화에 나온 집들이 실제 다 살고 계신 집이었다. 집집마다 명패도 있고 농기구나 강아지들도 있었다. 정겹게 촬영했다.” 

-선배 진구는 어땠나.
“시원시원하신데 동시에 배려심도 많으시다. 내가 경험이 없다 보니 가이드를 많이 주셨다.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하는 거야’가 아니라 ‘이렇게 할 수도 있어, 이렇게 해도 돼’ 이런 느낌이었다. 정말 많이 배웠다. 따뜻하고 좋은 선배들과 함께 해서 좋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람도 얻고, 연기 레슨도 받은 느낌이다. 덤으로 얻어간 게 정말 많다.  

박예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고 전했다. /에일리언컴퍼니
박예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고 전했다. /에일리언컴퍼니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한데.
“연기하게 해달라고 조른 게 어렸을 때인데, 그때 부모님이 좋은 대학교에 가면 시켜주겠다고 해서 합의를 봤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고등학교 국제반에 가게 됐고, 영어를 좋아하다 보니 영어권 대학에 도전하게 돼서 미국 대학교에 가게 됐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인식했을 때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다. 다섯 살 때였던 것 같다. 연기를 하겠다고 용기 내서 말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동화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읽는 게 좋았다. 결국엔 한 편의 이야기를 하고 풀어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난 연기, 배우란 직업은 어떤가. 만족하나.     
“좋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더라. 세상에 대해서도 배우는 것 같고, 사람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굉장히 만족스럽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좋다.(웃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원해왔고 준비했는지를 생각하면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잘 참아진다. 배우가 평가를 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학생 때 공부하면서 시험에 연연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지금은 내 꿈에 관련된 것이지 않나. 그래서 잘 다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공부가 어렵던가, 연기가 어렵던가. 누군가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하던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 정말 부럽다.(웃음) 둘 다 어렵다. 연기는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공부하는 것처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연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니까 외롭진 않은 것 같다. 공부는 외롭다.”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유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자 납득이 같은 느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평소 운동을 못하는 편은 아니라서, 액션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겁이 없는 것도 강점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배우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다짐이나 신념이 있다면.
“남에게 피해 안 주면서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다. 연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집중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해지는 사람들. 인성이 무너지는 순간, 연기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 자체가 나빠졌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나는 집중해야 하고 예민해질 때는 어디 숨어버리는 편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작품이 안 끊겼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아직은 공백기가 있으면 불안할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불안하다.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다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나 그 배우 알아’라고만 남아도 최고일 것 같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