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재광이 영화 ‘낫아웃’(감독 이정곤)으로 진가를 드러냈다. /kth, 판씨네마
배우 정재광이 영화 ‘낫아웃’(감독 이정곤)으로 진가를 드러냈다. /kth, 판씨네마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2015년 졸업 작품을 준비 중이던 이정곤 감독은 동기의 작품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던 배우 정재광을 본 뒤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를 염두에 두고 야구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건넬 수 있었다.

이정곤 감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인 고교 야구생 광호로 분한 정재광은 미성숙한 열아홉 소년의 위태로운 얼굴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냈다.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선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심도 깊게 표현하며 광호 그 자체로 존재했다. 영화 ‘낫아웃’을 통해서다.

‘낫아웃’은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하게 된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정재광 분)가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신예 이정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재광은 배우상을 수상했다. 2016년 단편 ‘수난이대’로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 번째 연기상이다. 정재광은 열아홉 야구 유망주 역할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체중을 25kg 가량 늘리고 야구 훈련을 받으며 실제 야구선수와 거의 흡사한 체형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시선으로 일기를 작성해나가기도 했다고. 그 과정에서 생긴 원형탈모까지 캐릭터 표현을 위해 치료를 미뤘을 정도로, 그는 진심을 다해 광호 그리고 ‘낫아웃’을 완성해냈다.

배우 정재광이 영화 ‘낫아웃’을 통해 성장했다고 밝혔다. /kth, 판씨네마
배우 정재광이 영화 ‘낫아웃’을 통해 성장했다고 밝혔다. /kth, 판씨네마

최근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정재광은 과거 입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광호를 표현하는데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낫아웃’을 통해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정재광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이정곤 감독이 캐스팅하면서 무슨 말을 했나.
“2016년 영화 ‘수난이대’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됐다. 그때 영화제에서 감독님이 오셔서 ‘재광 씨를 염두에 두고 야구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하게 됐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준비가 된다면 같이 하자’고 말씀해주셨다. 4년 뒤 감독님이 집 앞에 찾아와서 시나리오 건네주셨다. 4년 전 기억나냐며 함께 하자고 하셔서 함께 하게 됐다. ‘수난이대’ 속 이미지가 광호와 어울려 그때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하더라. 그때 분장으로 피부를 검게 했었는데, 검은 피부와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영화의 어떤 점에 가장 매료됐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디로 가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라는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배우를 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지? 배우로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정말 알고 싶었는데 그 대사가 와닿았다. 광호의 고민과 마음들이 나를 자극했고, 작품에 매료됐다.”

-광호라는 인물을 어떻게 잡아가려고 했나. 캐릭터 구축 과정이 궁금하다.
“관련 영상을 많이 봤다. 실제 야구에 몸담고 있는 야구부 학생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광호의 마음을 이해해갔다. 그러면서 광호의 시점으로 일기를 작성해갔다. 광호를 이해하면서 디테일하게 작성해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애써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하기 보다 그냥 그 공간과 상황 안에서 연기가 되게끔 하고자 했다.” 

나도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면서 ‘네가 무슨 연기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를 티칭해 줬던 연기선생님 마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꿈이 있었고,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과 두려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그 지점이 광호와 가장 맞닿아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영화 ‘낫아웃’에서 고교 야구 유망주 광호를 연기한 정재광 스틸컷. /kth, 판씨네마
영화 ‘낫아웃’에서 고교 야구 유망주 광호를 연기한 정재광 스틸컷. /kth, 판씨네마

-광호의 시선으로 일기를 작성했다는 게 인상적이다. 모든 작품의 인물을 설정해나갈 때 일기를 쓰는 편인가.
“대사 안에 많은 감정을 던져야 하는 인물을 때 일기를 작성한다. 테크닉적으로 표현해야 하거나 순간의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과 상황 안에 놓여있을 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어떤 변수가 생겨도 그 인물이 되게끔 준비하려고 하다 보니 일기 쓰는 방식이 기본이 된 것 같다.”

-외적적인 부분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야구선수로서의 체격이나 머리 흉터, 검은 피부 등 실제 야구 유망주 같았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태닝하는 첫날에 화상을 입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긴 한데,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그래서 며칠 잠을 제대로 못잤다. 촬영 일주일을 앞두고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머리에 구멍이 하나 났더라.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라고 잠을 잘 못 잤냐고 하더라. 그래서 감독님에게 가서 주사를 맞으면 낫는데, 어떻게 할까 상의를 했다. 내가 봤을 땐 광호와 맞닿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투박한 지점을 잘 살려주는 설정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한 후 ‘땜빵’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또 고등학생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수염 자국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주말마다 왁싱 작업을 하기도 했다. 체형은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보러갔을 때 상상했던 인물과 비슷한 야구부 친구를 발견했다. 그 친구가 체형이 굉장히 컸다. 나도 일단 몸부터 키워야겠다 생각해서, 오전에는 근력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야구 훈련을 받고 하루에 다섯 끼씩 먹으면서 25kg 가량 증량을 했다. 극 중 샤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잠깐이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 같아서 진짜 몸을 만들고자 했다.” 

불안한 청춘의 얼굴을 그려낸 정재광. /kth, 판씨네마
불안한 청춘의 얼굴을 그려낸 정재광. /kth, 판씨네마

-광호는 욕망에 솔직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관객에게 공감을 얻는 게 중요했는데,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정말 광호와 같은 친구가 있을까 나도 의문이 들었다. 극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니 불법적인 일은 아니더라도 많이 행해지고 있더라.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고, 감독님이 기사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광호라는 인물을 이해해갔다. 나 자신을 설득시키는 과정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기를 써 내려가지 않았나 싶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지점이 광호를 연기하는데 힘이 됐다.

야구 훈련하는 과정에서 160km 정도의 공이 날아오는데,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처음 열 번은 공에 맞아야 익숙해지더라. 그 과정을 초등학교 때부터 한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서 운이 좋아서 입시에 성공했지만, 광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며 고통을 참아왔는데 한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내려앉았을 때 정말 막막했겠구나 싶었다. 훈련하는 과정이 광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나도 광호처럼 자연스럽게 손에 물집이 생겼다. 몸으로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입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광호처럼 미성년을 지나 성년이 되던 때 겪었던 고민은 무엇이었나.
“연극영화과에 들어가자마자 집이 부도가 났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내가 기댈 곳은 연기뿐이었다. 연기를 잘해서 나중에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리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했는데, 또 배우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때 ‘버티고’ 전계수 감독님의 연락이 왔다. 이 일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성년이 된 후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하지’ 뿐이다. 고민을 덜어내려고 한다. 가끔은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고 싶던 연기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낫아웃’을 통해 많이 느꼈다. 아버지와 수제비 가게에서 ‘나 진짜 야구 잘했단 말이야’라는 대사할 때 광호와 물아일체가 됐다. 나를 잊고, 인물이 됐을 때 희열이 느껴졌다. 재밌고, 뿌듯했다. 그 장면 찍을 때 스태프 몇 분이 우셨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입시할 때 생각이 났다고 하시더라. 뜨거웠던 열기, 에너지를 받아 연기할 수 있었다. 하나가 된 순간이라고 할까. 하나라는 기분이 들었을 때 연기라는 작업이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다.”

정재광이 더 다양한 모습을 예고했다. /kth, 판씨네마
정재광이 더 다양한 모습을 예고했다. /kth, 판씨네마

-그 장면에서 아빠가 광호에게 ‘하면 되지’라고 용기를 준다. 본인에게도 힘든 시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용기가 된 말이나 사람이 있나.
“아버지다. 저희 아버지가 영화광이고 팬이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글레디에디터’를 좋아하셔서 30번을 넘게 봤다. ‘버티고’ 개봉할 때, 드라마 나올 때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셨다. 잘했다, 못했다도 있지만 주변에 소문도 내주시고,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자체만으로도 내게 용기와 응원이 됐다. 연극영화과 다녔을 때도 공연을 할 때마다 아버지가 늘 오셨다. 와서 꽃 한 송이 건네주고 가셨는데, 그게 엄청난 힘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낫아웃’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 성장시켜준 작품이다. 큰 산을 넘는 것 같았다. 인물을 이해하고 본질적인 마음을 통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촬영한 적 있나? 3~4시간 자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갔던 적 있나 했을 때 없었더라. 광호라는 하나의 옷을 빌려 입고, 한 인간으로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시간들을 경험했다. 예전에는 욕심도 있었고, 그 욕심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광호라는 옷을 입고 내려놓은 이후에는 욕심보다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변화됐다. 한 배우, 한 인간으로서 전환점이자 성장한 계기가 된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기작은 JTBC ‘알고있지만’이다. 어떤 모습을 기대하면 될까. 또 앞으로 배우로서 어떻게 쌓아나가고 싶은지.
“많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내게 작품이 오고 내가 소화할 수 있고 내 그릇에 맞는 작품이나 역할이라면 잘 소화해서, 정말 좋은 연기로 계속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알고 있지만’에서는 조소과 조교로 나온다. 안경을 쓰고 나와서 이름도 안경준이다. 오지랖 넓고 재밌고 유쾌한 밝은 캐릭터다. ‘낫아웃’ 광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거다.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기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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