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정당법 개정에 힘을 싣는 이들은 청소년이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정당법 개정은 정당 가입 연령을 낮추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인 만큼, 청소년의 정치 참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 때문에 정당법 개정안은 매번 공방의 대상이 됐다. 청소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에 부딪히면서다.

그러나 정당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이같은 걱정을 기우라고 말한다. 오히려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정당 가입을 통해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 정치적 토론과 논의 경험

이들은 청소년이 정당 가입을 통해 정치적 토론과 논의를 경험하면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6세 이상으로 하향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만 18세가 되면 민주시민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권이 주어지기 전 정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도 하고 토론 과정에 참여해 본 사람이 선거권을 가졌을 때 더욱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도 “정당이라는 곳이 정치적 견해를 모아서 논의하고 소통하면서 힘을 가꿔가고, 그것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곳”이라며 “이런 정당을 통한 정치활동을 통해 정책 형성 과정에서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이 늘어난다면 그 자체로 시민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체험은 곧 청소년‧청년 정치의 활성화를 가져오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치적 목소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질적 문제로 거론돼 온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묻어 있다.

물론, 현재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 공청회 등은 진행되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청소년은 사실상 의견을 내는 정도에 그칠 뿐 논의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치이즈 활동가는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정치나 사회로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가 없다보니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정당법 개정은) 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이라는 감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정당 가입 연령 폐지를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한 송옥주 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청년 대표성이 낮은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다”며 “모든 연령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에 중요한 과제”라며 정당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이 허용된다면 자연스럽게 청년 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 청년 정치인 육성 가능 

정당 가입 연령을 없애거나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의 ‘세대교체’ 바람과도 맞물려 있다.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 만 34세 핀란드 여성 총리인 산나 마린,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 등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청소년 때부터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형’이 마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은 “청소년의 정당 가입은 청년 정치인의 육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청소년 시기부터 정치를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삶에 가까운 것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청소년과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 등 다수 국가에서는 정당의 가입 연령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당원의 자격은 각 정당이 정한 당헌‧당규를 따르면서 청소년의 정당 가입도 가능한 구조다. 사실상 청소년 정치 참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셈이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공산당 청년조직에서, 스페인 포데모스 당 대표 이글레시아는 14살 때부터 정당 활동을 했다”며 “청소년 정치참여가 자연스런 나라에선 10대 학생 때부터 활동하면서 젊은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권리를 주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그러한 정치인들이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 ‘기본권’ 문제로 접근해야

다만, ′긍정적 변화’만을 생각하며 이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나온다.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의사표시의 일환으로 정당 가입 연령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치적으로 시민이 갖는 권리는 정치 표현의 자유가 있고 결사의 자유가 있다. 참정권과는 다른 문제”라며 “참정권은 헌법에 따라 나이 제한 규정을 합리화하고 있고 법률로 정하는 게 맞지만, 정치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나이로 제한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당법 개정 문제는) 기본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정당 가입은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권리에 해당한다. 그걸 법적으로 제한하는 건 헌법 원리에 안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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