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 허용을 우려하는 데는 교실의 정치화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젊은 정치인’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대적 상황은 이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장려하고 있다는 점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어려서 안된다’는 식의 접근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병폐인 ‘편가르기 정치’ 구도에서 과연 ‘제대로 된’ 정치적 학습이 이뤄질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 정당 간 과도한 이념 대립… ‘민주주의’ 배우기 어려워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우리나라처럼 이념 대립이 극심하고 국론분열의 단초가 되는 후진적 정치 상황에서 (정당법 개정은) 미성년자들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찬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철학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이데올로기적 정치 구조에서는 이런 선의의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 참여가 ′교육′과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당은 이데올로기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교과서에 정당의 목표는 정권의 쟁취라고 나와 있다”며 “당원이 된다면 정권 쟁취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민주주의 교육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정당 활동이 교육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변화를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현재 사회적인 합의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불안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정치 참여를 반대한다는 식의 인식과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조 대변인은 “미성년은 다 어리고 미숙하고 성년이면 다 성숙하다는 개념이 아니다. 일부는 어른보다 더 성숙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미성년만도 못한 성인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법률상으로) 성인의 연령을 정하고 권리 일부를 제한하고 보장하는 것은 얼마나 여건을 갖추게 되느냐의 사회적 합의”라며 “나라별로 정치 성향이나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그 나라만의 특성에 맞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작용은 오롯이 사회가 떠안을 수밖에 없고,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대변인은 “정당에 가입한 뒤 홍보활동이라든지 급우들에 대해 권유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실이 정치화 되면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물론 정당 활동에 대해 어디까지 중립으로 볼 수 있는지 등 예기치 않은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스템 상 교실에서 토론과 논의 등을 거쳐 균형있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 교실서도 ‘민주주의 교육’ 가능

이렇다 보니 이들은 단순히 정당 참여를 권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통해서도 충분한 정치적 효능을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청소년기에 정치적 균형감 등을 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건강한 민주주의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지금의 학생들이 민주주의가 뭔지를 배우고, 균형 있는 감각을 아는 게 더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며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육학자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잘 가르치고 체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실에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과 토의를 통한 합의의 과정을 배우는 것이 일례다. 배 교수는 “학급 회의를 하든, 팀 활동을 하든 서로 합의하고 싸우고 갈등을 조정하고 ‘룰’을 만들어보는 경험이 입법인 것”이라며 “(현재는) 입법을 잘해보는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사회의 갈등 조정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조 대변인 역시 현 상황에서도 ‘정치적 활동’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 자치활동이나 선거 활동, 청소년 모의국회 등 학생들이 바라는 의견을 모으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며 “그런 걸 통해서 학생의 정치 참여 권리를 확대해 성인이 된 후 투표의 참여, 정당 가입 등 활동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 참정권의 확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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