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위협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늪’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전문가들은 최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는 이유가 타 연령층에 비해 10대 청소년층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한 IT서비스의 사용이 매우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연령을 막론하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범죄행위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 성인보다 그 피해가 훨씬 클 수 있다고 경고한다.

◇ 미성년 디지털 성범죄가 성인보다 위험한 까닭

글로벌 디지털 성범죄 연구소 김혜진 대표는 지난해 10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 ‘해외 사례를 통해 본 국내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폭력 피해 지원 제도 개선 방안 연구’ 논문을 통해 “소아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성인성폭력과 차별화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폭력에 노출된 피해아동들이 아직 발달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임상적인 측면에서의 차이뿐만 아니라 치료적인 접근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초래하게 된다”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피해는 성인보다 더 심각하고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가 성인 대상의 범죄보다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피해를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인지가 늦음 △죄책감과 자책감 △수치심과 두려움 △부모 협조의 어려움 △주변의 2차 가해의 5가지 요인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피해 인지’가 늦는 문제점은 불법촬영물 유출 방지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늦출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또한 이는 협박으로 이어져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범죄 규모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실제로 이는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통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으로, 가해자의 유인·협박 등으로 피해아동·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 이미지를 촬영·제작하도록 하는 성착취물 제작(20.7%) 및 아동복지법의 음란행위 강요(23.1%)의 경우 유포 협박 비율이 20%를 넘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온라인에서 성착취 등의 디지털 성범죄를 당한 아동·청소년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데, 협박 위협을 받고나서야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이 성착취 범죄를 당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해자에게 영상이나 사진을 보낸 아동·청소년들은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영상 유포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며 “이러한 심리적 고통은 사건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성범죄는 연령을 불문하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범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정서 등이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청소년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피해를 받을 경우, 그 피해는 성인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 Gettyimagesbank
디지털 성범죄는 연령을 불문하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범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정서 등이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청소년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피해를 받을 경우, 그 피해는 성인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 Gettyimagesbank

앞서 설명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 때문에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선 성인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유인, 권유 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발간한 현황분석 보고서 ‘디지털 아동・청소년성착취 근절 제도개선 현황 및 과제’를 통해 “채팅앱 등 성매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등에는 경고문구 삽입과 온라인 성착취를 경험하거나 시도할 때 즉각 신고할 수 있도록 24시간 신고 체계를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인이 디지털 상에서 성적인 목적 또는 성매수를 위해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장수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범행유인에 적합한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범행을 유발 또는 노출시킨 다음 범인을 검거하고 증거를 포착하는 특수한 수사방법인 위장수사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익명성에 기반한 텔래그램, 다크웹의 경우 해외에 본사를 둔 만큼 공개적 접근이 어려워 n번방, 박사방 사건과 같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에 악용됐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경우 잠입수사 및 위장수사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범죄자 색출 및 검거에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n번방 대책으로 디지털 아동・청소년성착취범죄와 관련한 대책과 입법이 마련됐지만, 이후 아동・청소년성착취물 범죄의 근절과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다양한 후속과제와 쟁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기통신사업법 등이 개정되면서 전기통신사업자, 정보통신망업자도 성범죄물 유통방지의 책무를 가지게 됐다”며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 플랫폼 사업자 등 민간업체와 정부와의 협력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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