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현우가 영화 ‘빛나는 순간’(소준문)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명필름
배우 지현우가 영화 ‘빛나는 순간’(소준문)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명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마음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바라봐 주시면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고두심 분)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 분)의 특별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소준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70대 노년 여성과 30대 청년의 사랑 이야기라는 파격적이고 낯선 설정을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냈다. 

‘빛나는 순간’에는 무르익고 깊어진 배우 지현우의 얼굴이 담겼다. 극 중 다큐멘터리 PD 경훈으로 분한 그는 한층 성숙된 연기로 진옥 역을 맡은 고두심과 안정적인 호흡을 완성하며 제 몫을 다한다. 이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척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히 느끼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자 한 그의 고민과 노력 덕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지현우는 “연기자로서 다양한 색깔을 표현하고 싶고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다”며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빛나는 순간’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영화를 봐줬으면 한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현우가 ‘빛나는 순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명필름
지현우가 ‘빛나는 순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명필름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경훈이 ‘해녀 삼춘’을 한 여자로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들이 나의 보편화된 시각이 아닌 그 사람을 알고, 내면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됐다. 또 한편으론 남자가 나이가 많고 여자가 나이가 적은 경우의 멜로물은 많은데 왜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생각도 들었다. ‘은교’ 같은 작품은 그대로 인식하는데 왜 반대인 작품은 그렇지 못할까, 나 역시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닌가 싶더라..” 

-도전을 요하는 작품이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 
“연기자로서 다양한 색깔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다. 제주도 올로케이션 촬영이라는 점도 좋았고, 대선배님과 연기하는 기회도 흔하지 않지 않나. 대선배님과 연기를 하면 기댈 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고두심 선생님이 워낙 좋으셨다. 긴장을 하긴 했지만 주변에서 워낙 선생님 좋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대가족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배에게 잘 다가가는 편이다. 큰 그늘 안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함께 작업하면서 어떤 점을 배웠나. 
“그냥 멋있다. 흔히 얘기하는 ‘꼰대’ 같은 모습이 전혀 없으시다. ‘라테는 말이야’ 전혀 없으시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주변 사람 이야기를 수용해 주신다. 우리는 본인 힘든 거 이야기하느라 바쁘지 않나. 정말 다르단 걸 느꼈다. 현장에서도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지 않고, 오히려 살려주시려고 했다.”

-경훈의 감정을 어떻게 잡아나갔는지.
“매 장면 찍을 때마다 중요하게 잡고 가야 하는 감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이 12곡 정도 음악 리스트를 보내줬는데, 그 음악이 도움이 많이 됐다. 연기라는 게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느낌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어떤 느낌이냐고 했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음악으로 전달해 주셨다. 그 음악을 현장에서 듣고 대본을 읽으면서 감정을 그리고 느끼면서 잡아나갔다.”

‘빛나는 순간’에서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준 지현우. /명필름
‘빛나는 순간’에서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준 지현우. /명필름

-경훈과 진옥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동굴신 장면이 인상 깊었다. 촬영은 어땠나.
“진옥의 주름진 부분에 입을 맞추면 어떨까 의견을 냈다. 주름을 나이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픔이 담겨 있는 그의 인생에 입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촬영이 진행됐다. 키스신이 어렵잖나. 감독님과 고두심 선생님 다 긴장하셨다. 나는 키스신에 있어서는 선생님보다 경험이 많지 않나.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서 한 번 다시 하겠다고 했다. 다른 버전으로 찍어보자고 했고 그 버전이 영화에 담겼다.”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것 같다. 그런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성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단순히 ‘70대와 30대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자로서 해녀의 삶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너무 일찍부터 일을 하고, 병든 남편 병수발까지 하면서 살아온 한 여자가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면 손가락질 받을 일인가 이상한 일일까.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으로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바라본다면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녀들의 순수함과 멋짐을 볼 수 있을 거다.” 

-대본을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필사를 했나. 그 과정이 연기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나.
“이번에도 필사를 했다. 배우들은 똑같은 걸 계속 읽으면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어차피 아는 부분이니 읽다 보면 후루룩 지나가는 게 있다. 무의식적으로. 그걸 방지하려고 시작했다. 쓰다 보면 속도도 느려지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으로 상황들이 그려지기도 하고 떠오르기도 한다. 더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에서 계속 쓰게 되는 것 같다.”

배우뿐 아니라 밴드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는 지현우. /명필름
배우뿐 아니라 밴드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는 지현우. /명필름

-연기뿐 아니라, 밴드 사거리 그오빠로 음악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연기는 작가님과 감독님 그리고 내가 한 인물을 만들어간다. 여러 의견이 섞인 한 인물이 탄생하는 과정인데, 많은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가끔은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창작해서 만들어내는 거다. 그래서 ‘지현우’ 전에 ‘주형태’(본명)라는 사람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느덧 데뷔 18년 차가 됐다. 데뷔 당시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는 일을 재밌게 즐겁게 한 것 같다. 고민이나 두려움, 걱정이 지금의 십분의 일 어쩌면 오십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즐기는 것보다 두려움과 불안함, 압박감이 더 커졌다. 지금 내 연차 배우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요리로 치면 인테리어가 괜찮아서 찾아 왔다면 이제 인테리어는 익숙해졌고 요리가 맛있어야 찾아오겠구나 싶은 느낌.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고 부담이 커졌다. 정답이 없어 더 어려운 것 같다.”

-배우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나 다짐이 있다면.
“척하지 말자는 것. 예를 들어 우는 연기를 하고 나서 컷 하자마자 ‘이 정도면 됐어요?’ 하는 것처럼 테크닉에 기대서 연기를 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부터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이 창피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 저 배우 좋아해’라고 했을 때 연기하는 게 거슬리거나 어설퍼서 나쁜 반응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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