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작품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배우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매 작품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배우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데뷔 35년 차 배우 허준호는 강렬한 악인부터 평범한 소시민의 얼굴까지, 다채롭게 소화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매 작품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이번에도 더할 나위 없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오른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에서 북한대사 림용수로 분해 선과 악,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절제된 연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사람들의 생존을 건 탈출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달 28일 개봉 첫날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운데 이어, 개봉 6일 만인 지난 3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이목을 끈다. 

허준호는 오래전부터 소말리아와 외교통으로 관계를 맺어 온 북한 대사 림용수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극 중 림용수는 한국과 UN 가입을 두고 경쟁하며 외교 각축전을 벌인다. 그러나 소말리아 내전이 진행되면서 ‘생존’이라는 목표 아래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해 그들과 손을 잡는 인물이다. 

허준호는 림용수의 고뇌와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북한 대사관의 중심인물로서 극의 중심을 잡는 것은 물론, 서 있는 자세부터 걸음걸이, 눈빛까지 인물 그 자체로 분해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북한 사투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대사 전달력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열연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에서 북한대사 림용수로 분한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에서 북한대사 림용수로 분한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허준호는 “ ‘모가디슈’에 함께 하게 돼 영광이고 행복했다”며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택했다고 했는데, 류 감독의 어떤 부분이 가장 믿음을 줬나. 함께 작업하면서 본 류승완 감독은 어떤 감독이었나. 
“처음 만났을 때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식사를 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때 믿음이 생겼다. 분명히 대본을 보고 나서 결정하려고 했는데, 식사 시간이 지나면서 류 감독의 눈빛이 되게 자신감이 있었고 믿음을 줬다. 기승전결이 확실했고, 철저했다.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게 느껴졌고, 되겠구나 싶었다. 현장에서 본 류승완 감독은 정말 대단했다. 그냥 미쳤다. 영화에 미쳐있는, 작품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멋있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땠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당시 소말리아 현장이 어땠을까, 왜 그렇게까지 됐을까 싶더라. 지금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영화를 통해 다들 각성하고 살아야겠다는 개인적인 감정도 있었다. ‘하얀 전쟁’(1992)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쟁에 대한 무서움을 경험했다. 간접경험이었지만 정말 공포스러웠다. 우리가 누구를 가르칠 순 없지만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잘 표현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프로젝트를 잘 완성한 류승완 감독과 제작진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런 작품에 나를 출연시켜줘서 영광이었다.”

-림용수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철저하게 대본 위주로 갔다. 감독의 주문에 의지했다. 시대나 상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는 북한을 ‘북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북이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래서 이념적인 것보다 대본으로 보이는 내용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했다. 영화 속 남과 북의 대립관계에서 림용수가 깨기 힘든 큰 인물로 보이게 하는 게 숙제였다. 더 세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또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거의 매일 운동하며 얼굴살을 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 밖에 없었다. 모니터 하면서 감독에게 물어보고 쌓아나가며 접근했다.” 

‘모가디슈’에서 호흡을 맞춘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인성‧구교환‧허준호‧김윤석. /롯데엔터테인먼트
‘모가디슈’에서 호흡을 맞춘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인성‧구교환‧허준호‧김윤석. /롯데엔터테인먼트

-북한 캐릭터들의 대사가 자막으로 처리된 게 인상적이었는데. 
“류승완 감독에게 고마웠다. 아무리 연습을 하더라도 실제 살아서 나오는 억양과 문화적인 느낌이 있잖나. 내용 전달도 해야 하고 뉘앙스도 담아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막이 도움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만화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좋았다.”

-모로코 로케이션은 어땠나. 힘들진 않았나.
“힘든 건 없었다. 촬영을 잘 할 수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전에 갔던 해외 촬영은 꼭 사고가 났었다. 다친 사람도 많았고, 촬영하다 허가를 못 받아서 잡혀가거나 중단된 적도 있다. 촬영보다 주변에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런데 ‘모가디슈’는 연기만 하면 됐다. 내 임무만 충실히 하면 되는 감사한, 꿈에 그리던 현장이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즐겁고 재밌었다.”

-촬영이 없을 땐 동료와 스태프들을 위해 직접 커피를 타주기도 했다고.  
“해외 촬영이 길어지다 보면 향수병도 생기고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한국에서는 커피차라도 보내주잖나. 그래서 직접 커피를 타주자 싶었다. 해외에서 먹는 낯선 커피 말고 우리가 먹는 익숙한 커피를 타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누구만 타줄 수 없잖나. 그래서 매니저에서 얘기해서 시작한 거다. 그냥 큰 형으로서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던 것뿐이다.” 

믿고 보는 배우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믿고 보는 배우 허준호.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과의 호흡은 어땠나. ‘모가디슈’에 이어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함께 했는데. 
“내가 접근해도 되나 할 정도의 대배우를 만나 좋고 영광이었다. 리허설 때부터 다 준비해서 나오니까 정말 편했다. 리허설 때부터 다 보여주니까 내가 대처할 수 있는 호흡도 생기고 촬영에 들어가서 시너지가 조금씩 더 나왔다. 엄청난 배우였고 좋았다. 더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노량’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제안받은 역할이) 다른 나라 장수이기도 하고 내키지 않기도 했는데 김윤석이 한다고 해서 결정한 것도 있다. 두 작품을 통해 느낀 건 김윤석은 촬영장의 큰 형이라는 거다. 기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역할을 잘 해주는 배우였다.”

-후배 조인성, 구교환은 어땠나. 
“조인성은 그릇이 커진 배우다. 연기 외적으로도 한국대사관 멤버들을 다 아우르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더 커질 배우가 되겠구나 싶어서 좋았다. 구교환은 귀엽다. 하하. 열정이 정말 좋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항상 웃더라. 계속 잘 되고 있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물이겠지만, 매번 새롭고 매번 그 이상을 보여주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 
“100이라고 치면 반이 넘어갔다. 살날도 줄어들고 앞으로 만날 작품들도 적어졌기 때문에 더 간절해지고 진지해지고 감사해졌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느껴지고 대본 보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그래서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허준호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연기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 있나. 
“숙제다. 매 작품 어렵다. 안 쉬워지더라.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에게 쉬는 시간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 자랑스럽기도 하다.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심심한 아저씨였을 것 같다. 그냥 운동이나 좋아하는 아저씨 아니었을까. 하하. 상상이 안 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