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승원이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로 관객과 만났다. /쇼박스
배우 차승원이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로 관객과 만났다.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차승원은 장르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서늘한 악역이었다가 평범한 가장이었다가,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인물 자체가 돼 관객을 설득시키고 만다. 이는 매 작품 더 새롭게, 더 자연스럽게 극 안에 녹아들고자 하는 그의 치열한 고민 덕이다.  

차승원은 1988년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한 뒤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을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약한 그는 섬뜩한 악역부터 망가짐도 불사하는 코믹 연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 연기력과 흥행력을 모두 입증하며 대중을 사로잡아왔다.

올해도 뜨겁다. 지난 4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 조직의 핵심 인물 마이사에 이어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 평범한 가장 만수까지 전혀 다른 얼굴로 관객과 만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극장 개봉을 택한 ‘싱크홀’은 지난 주말 165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200만 돌파를 향해 질주를 이어가고 있어 이목을 끈다. 

‘싱크홀’은 11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 지하 500m 초대형 싱크홀로 추락하며 벌어지는 상황을 담은 재난물로, 평범한 소시민이 재난 상황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보통의 회사원 동원(김성균 분)과 아들을 위해 ‘쓰리잡’도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가장 만수(차승원 분)의 ‘짠내’나는 재난 탈출기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이다. 

차승원은 생계형 ‘쓰리잡’의 프로 ‘참견러’이자, 401호 주민 만수로 분해 생활 밀착형 연기를 보여준다. 재난 상황 속 이웃을 돕는 든든한 모습부터 하나뿐인 아들을 챙기는 다정한 면모, 애틋한 부성애까지 다채로운 매력으로 극을 이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차승원표’ 코미디도 빼놓을 수 없다. 적재적소의 위트와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영화의 유쾌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싱크홀’로 돌아온 차승원 /쇼박스
‘싱크홀’로 돌아온 차승원 /쇼박스

차승원은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싱크홀’ 촬영 후기와 개봉 소감, 배우로서의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개봉 후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데. 
“두 번 정도 연기 끝에 개봉하게 됐는데, 힘든 시기에 100만 관객을 넘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찍었구나 싶은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관객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려고 만든 영화는 아닌데…(웃음). 100만 넘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싱크홀’에 끌린 이유는. 
“나는 단순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장르가 됐든 비틀어져 있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크홀’은 소소한 이야기에 재난 상황을 접목해서 코미디를 유발한다. 단순 재난 상황이 아닌, 그 안에서 만수의 ‘웃픈’ 상황을 유발하는 점이 좋았다.” 

-만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부분은.
“딱 정해져 놓고 캐릭터에 접근한 게 아니라, 만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왠지 이럴 것 같다 생각하며 접근했다. 오랜 시간 빌라 월세를 살면서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고 직업이 세 개나 있는데 기본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삶을 사는 사람. 또 자식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함을 가진 보편적인 아빠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거대 세트를 지어 촬영한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 
“진짜 마을인 줄 알았다. 되게 근사했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세트였다. 분명 세트인데 운전해서 갈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게 희한했다. 또 재난 상황을 분리해서 세트를 지었다. 1차 때는 덜 망가져 있고, 2차 때는 더 깨져있고 그런 디테일들을 아주 잘 살려서 담아냈더라. 신기하고 잘했다 싶었다.”

‘싱크홀’로 뭉친 (왼쪽부터) 남다름‧이광수‧차승원‧김성규‧김혜준 /쇼박스
‘싱크홀’로 뭉친 (왼쪽부터) 남다름‧이광수‧차승원‧김성규‧김혜준 /쇼박스

-김성균‧이광수‧김혜준 등 출연진 모두 차승원 덕에 더 화합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먼저 나섰던 이유가 궁금하고, 좋은 현장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가 다 끝나면 좋은 현장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좋은 현장은 촬영이 끝나도 서로 연락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장은 아예 안 한다. 좋은 현장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 기본적으로 피해를 안 주는 거다. 서로 간의 약속이 분명히 지켜지는 현장이 좋은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싱크홀’은 내가 제일 선배였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나도 편하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심성이 고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다가갔겠나. 이 친구들이 다 잘해서 그런 마음도 생긴 거다.”

-11년 만에 집을 마련한 동원이나, 계속 월세를 사는 만수, 집 없어서 결혼도 못한다는 김대리 등 여러 세대의 집에 관한 요즘 화두가 담겼다. 이 작품을 통해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을 것 같은데.
“내게 집은 가장 중요한 거다. 우리 식구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잖나. 크고 가득 찬 그런 집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게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데 큰 펜트하우스에서 살면 뭐하겠나. 가족들의 온기가 훈훈하게 채워진 곳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차승원표 코미디’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이번 ‘싱크홀’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더했나. 코미디 장르를 소화할 때 특별히 더 신경 쓰는 지점이 있나.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그런 건 없다. 어떤 장르든 똑같이 한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지 연기는 똑같다. 물론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있으니 그건 지켜야 한다. 다만 지양하는 건 코미디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아주 위험한 거다. 오히려 다른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는 건 괜찮다. 코미디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는 건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려고 한다.”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차승원. /쇼박스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차승원. /쇼박스

-올해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과 ‘싱크홀’로 극과 극인 두 캐릭터를 넘나들었다. 매 작품 독특하고 새로운 인물을 완성하는 것 같은데, 캐릭터를 구축하고 접근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캐릭터는 배우가 만드는 것도 있지만 감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배우가 그런 연기를 했을 때 ‘오케이’하는 건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사를 그렇게 연기하게 해준 박훈정 감독에게 고맙고, ‘싱크홀’ 만수를 그렇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준 김지훈 감독도 고맙다. 마이사는 독특한 캐릭터이고, 만수는 보편적인 인물이다. 연기를 할 때는 마이사 같은 캐릭터가 재밌는데, 만수 같은 캐릭터는 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서 또 좋다. 예전에는 무언가 목표점을 정하고 만들어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많이 써먹으려고 한다. 나는 이해가 되나? 자연스러운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며 캐릭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서늘한 악역과 친근한 얼굴을 서슴없이 오가는 비결이 있다면. 
“스위치가 잘 되는 배우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 비결이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까 작품을 할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고민이 잘 담기면 좋은 것이고. 연기할 때 내 안에 없는 것도 써야 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이미지적으로 만들어서 표현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표현하니까 별로 좋지 않더라. 그래서 나와 조금 더 근접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고민한다. 좋은 연기란 나를 나답게 100%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늘 생각하고 있고, 지금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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