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선의 삶’으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는 이우정 감독.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으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는 이우정 감독. /엣나인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은 열여덟 강이(방민아 분), 아람(심달기 분), 소영(한성민 분).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송한나’(2008), ‘옷 젖는 건 괜찮아’(2009), ‘애드벌룬’(2011),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2018) 등 단편 영화를 통해 주목받은 이우정 감독이 각색과 감독을 맡았고, 배우 방민아‧심달기‧한성민이 열여덟 세 친구로 분해 호연을 펼쳤다. 

스크린에 재탄생한 ‘최선의 삶’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KTH상 △CGK&삼양XEEN상 2관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선택상을 수상하고,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와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주인공 강이를 연기한 방민아는 최근 진행된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국제 라이징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우정 감독의 힘이다.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게 된 이우정 감독은 십대 시절의 불안하고 예민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호평을 얻고 있다. 원작 속 사건과 사연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며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10대 소녀들의 불안한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 ‘최선의 삶’. /엣나인필름
10대 소녀들의 불안한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 ‘최선의 삶’. /엣나인필름

오는 9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이우정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시나리오 각색 과정부터 캐스팅 비화까지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한 강이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면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긴장되고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내려놓은 상태다. 받아들이려고 한다.(웃음)”

-원작의 어떤 점에 끌려 연출을 결정했나.
“당시 계속 과거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과거를 마주할 수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원작을 읽었는데, 강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상처라고 할까, 그 악몽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힘이 됐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기준을 두고 각색했나.   
“우선 중학생이던 인물들을 고등학생으로 올렸다. 중학생 설정일 때 캐스팅할 수 있는 나이대 배우들과 찍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꿨다. 또 이 영화에서 내가 담아야 하는 것은 감정들이라고 생각했다. 세 인물이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자. 특히 싸움 장면이나 어떤 장면들은 소설에서 아주 세세하게 표현돼있는데, 그걸 똑같이 영상으로 구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영상으로 구현할 때 날것의 느낌을 다 살리면서 담아낼 수 있을까, 관객들이 그것에 얼마나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이 빼게 됐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삭제한 장면 앞뒤로 남아있는 배우들의 표정이었다. 그 표정들이 다 설명해 줄 수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선택에는 호불호가 있는 것 같다.”

-원작을 읽자마자 아람 역에 심달기가 생각났다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마 심달기라는 배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원작을 본다면 아름은 심달기라고 생각했을 거다. 알쏭달쏭한 아람이라는 인물에 심달기 만큼 찰떡인 배우가 있을까 싶었다. 바로 소설책을 보냈다. 오래 기다려준 배우다.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과 아람의 비슷한 부분을 계속 얘기해 줬다.”

-연출자보다 캐릭터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을 것 같은데.
“처음 이 작업을 하면서 아람(심달기)뿐 아니라 강이(방민아)와 소영(한성민), 셋 모두에게 그걸 느꼈다. 세 배우 모두 인물에 대해 엄청 고민을 많이 해왔다. 좋은 욕심의 향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꽁꽁 품고 온 것들을 카메라 앞에서 각자 펼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최선의 삶’에서 호연을 펼친 (왼쪽부터) 한성민과 방민아, 심달기. /엣나인필름
‘최선의 삶’에서 호연을 펼친 (왼쪽부터) 한성민과 방민아, 심달기. /엣나인필름

-방민아는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됐다고. 첫 미팅 때 어떤 얘기를 나눴나.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방민아가 내게 엄청난 것들을 쏟아냈다. ‘최선의 삶’을 읽고 과거 자신이 강이 같았을 때 힘들었던 부분, 아팠던 상처, 그 후 살아오면서 강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이 작품을 하면서 다시 꺼내는 두려움과 무서움까지… 또 강이의 감정과 얼굴이 방민아가 이전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방민아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끌어내기 위해 감독의 역할이 중요했겠다. 어떤 디렉션을 했나.
“예산이 작은 영화라 현장에서 정신이 없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그 과정을 모두 끝내자 했다. 촬영 전에 정말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각 신 마다 강이의 감정부터 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까지 다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방민아가 강이라는 인물이 다 됐다라고 느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인물의 감정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기한 게 없다.” 

-한성민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평소 관심이 가는 배우가 있으면 사진을 저장해놓는다. 한성민의 사진도 캡처해둔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을 다시 보니 소영 역에 정말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을 요청하고 만났는데 딱 걸어 들어오는 순간 ‘소영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압도가 됐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더라. 인물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안쓰러운 마음까지 다 안고 왔다. 정말 고마웠고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됐다.”

-배경 장소 섭외 과정도 궁금한데.
“원작에 쓰인 읍내동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작가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빌라도 그대로 있더라. 아쉽게도 리모델링을 한 상태라, 영화에 나오는 건물은 그 빌라는 아니었다. 처음 읍내동에 도착했을 때 영화적인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이지 않고 너무 평범해 보여서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각색을 해나가면서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어렸을 때 그 시절을 생각했을 때, 가장 보편적인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았다. 평범한 그 시절 것으로 그대로 두고자 했다.”

‘최선의 삶’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우정 감독. /엣나인필름
‘최선의 삶’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우정 감독. /엣나인필름

-영제를 ‘스노우볼(Snowball)’로 정한 이유는.
“10대 시절 겪게 되는 처음과 다양한 감정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어떻게 갑자기 부풀어질지 누가 산산조각을 낼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시절 겪었던 감정들에 대해 나름의 무기를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슬플 때 무엇을 하면 희석되는지, 어른이 되면 하나둘씩 방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불어나는 감정들이 스노우볼과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작 구절이 담긴 내레이션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름다운 문장을 들을 때 희열이 있다. 원작의 문장이 가진 힘이 있다. 처음엔 원작 문장을 갖고 오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갖지만, 그건 사실 어렵다. 그랬을 때 나는 내레이션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좋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 시나리오 때부터 들어가 있었다. 지금 버전은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버전에서 많이 생략된 것이다. 원작 문장들에 정말 집착했다. 연출을 못했다는 불안감도 커서 문장을 등에 지고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최선의 삶’과 함께 달려온 그 시간 중 지금 가장 떠오르는 순간이나 기억이 있다면.
“지금 생각나는 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이다. 너무 떨려서 염소 목소리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긴장을 했다. 그 상영을 마치고 방민아와 호텔에 돌아와서 방에 들어가기 전에 걱정과 긴장을 다 내려놓고 서로 껴안았다. 그 순간이 기억난다.”

-‘최선의 삶’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닿았으면 하나.
“내게 과거에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내가 진짜로 미워했던 건 그 사람보다 그 사람 앞에 있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그때의 자신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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