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연출/각본 황동혁)으로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배우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연출/각본 황동혁)으로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성향이 있다. 그리고 그 도전 의식은 관객에게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서 생긴다.”

올해로 데뷔 29년 차를 맞은 배우 이정재는 장르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변주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수많은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매 작품 기어코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하는 건, 끝없이 도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과 ‘노력’ 덕이다. 

이정재는 지난달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 게임’(연출/각본 황동혁)을 통해 또 한 번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공개 이후 국내는 물론 미주‧유럽‧아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데,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전체 1위에 등극한 데 이어,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이정재는 벼랑 끝에 몰려 목숨을 건 서바이벌에 참여한 기훈으로 분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강렬함을 벗고 소시민으로 돌아온 그는 ‘잘생김’을 내려놓은 파격적인 외적 변신은 물론, 몰입도 높은 열연으로 극의 중심을 이끌며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을 하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기훈은 극 초반 어머니 돈을 훔쳐 경마장에 갈 만큼 철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자칫하면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완성해냈다. 밝고 천진한 외적인 모습과 삶에 대한 무거운 고통을 지닌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몰입도를 높인다는 평이다.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이정재. /넷플릭스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이정재. /넷플릭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 대해 “한국 콘텐츠가 많은 나라에 소개되고 사랑받는 건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해당 기사에는 ‘오징어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공개 후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한 소회가 궁금하다. 영화 흥행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을 계속 촬영하고 있어서 서울도 못 가고 있다.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문자나 전화를 받거나,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는 정도라 아주 큰 성공을 이뤘다는 게 그렇게 실감이 나진 않는다. 정말 많은 나라에서 봐주셨다는 건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생각도 든다.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 소개되고 사랑받게 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참 감사하다.”

-또 한 번 도전을 요하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택하게 됐나.
“우선 황동혁 감독의 작품이라 정말 반가웠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완전히 상업적인 오락물이라고 느껴졌는데, 다 읽고 나서 캐릭터들의 사연에 참 많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보통 제안을 받고 결정하는데 시나리오를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네 번 이상 본다. 한 번 보고는 절대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처음 읽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겠다고 확답을 드리기 전에 한 번 더 읽었는데, 처음 볼 때는 못 느꼈던 세밀한 설정이나 디테일한 심리 묘사 등이 또 보이게 되면서, 한국에서 되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까지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웃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콘텐츠가 됐지만, ‘모 아니면 도’ 같은 도전적인 측면이 컸던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와 감독에 대한 신뢰로 작품을 택했다고 했지만, 주연배우로서 이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고민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항상 위험을 감수하고 택하는 것 같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성향이 기본적으로 있다. 또 그 도전 의식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기훈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큰 도전은 아니었지만, 작품 적으로 봤을 땐 도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바이벌을 다룬 작품이 국내에서도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기존 다른 작품들과 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있을까 우려가 됐다. 하지만 황동혁이라는 감독이 만드는 거니까 리스크 보다 신선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기댈만한 곳이 있었던 거다. 캐릭터적인 면에 있어서는 사실 센 캐릭터는 기본적인 틀을 잡고 유지하면서 연기하면 크게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생활 연기는 해도 해도 어렵다. 더 진솔해야 하고 그런 연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되는데, 기훈을 통해 오랜만에 그런 역할을 하다 보디 잘 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과 잘 상의하면서 용기를 얻고 한 장면 장면 찍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 스틸컷.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 스틸컷. /넷플릭스

-기훈은 어떤 인물이었나. 
“선함을 간직한 인물이다. 극한의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한 마음 때문에 사람들을 신경 쓰고 도와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극 초반 직업도 없어서 엄마에게 기대어 살고, 엄마 통장을 훔쳐 가서 경마도 하지만, 도박에 빠져서라는 느낌보다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짠한 마음도 들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절박해 보이는 기훈의 모습이 제일 중요했다. 그런데 그 지점을 너무 사실적으로 심각하게 그리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다운될 것 같아 어느 정도 위트나 재미적인 요소를 섞었어야 했다. 매 장면 찍을 때마다 그 지점이 고민이었다. 위트를 더 집어넣으면 이 모든 행위들이 가짜 같아 보이지 않을까, 혹은 재미 요소를 적게 넣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런 지점을 적절히 잘 섞어서 자연스럽게 해냈어야 했다. 기훈은 중요한 캐릭터였고, 미움을 받으면 안 됐기 때문에 철부지 없는 모습들은 귀엽게 보여드리고자 했다. 밉상인 캐릭터로 그려지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엄마에게 어리광도 피우고 응석도 부리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하기도 했다.” 

-외적인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기훈의 비주얼을 구축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당시 피부에 알레르기성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얼굴에 홍조가 있었는데, 가리지 말자는 의견을 냈던 기억이 난다. 염색도 안 했다. 내가 곱슬머리라 염색을 안 하면 되게 지저분해 보인다. 머리도 길고 그러니 더 컨트롤이 안 되더라. 더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지점을 최대한 살려서 가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지금의 기훈이 완성됐다.”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황동혁 감독이 ‘이정재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공개 후 이정재의 새로운 모습을 또 발견했다는 평도 이어지고 있는데, 배우 스스로도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얼굴이 있나.
“멋스러운 걸 걷어내고 (외적인 부분을) 신경을 전혀 안 쓰고 연기를 하니 더 편한 면도 있었다. 극 중 새벽이(정호연 분)와 같이 풀려나서 팬티 바람으로 묶여있던 장면에서 애원을 하는데, 애드리브가 섞여있다.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하다 보니 더 재밌게 촬영이 된 것 같고 편집도 잘 나온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이다’라는 기훈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의미 있는 대사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저 쌍문동 사는 성기훈인데요’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쌍문동 사는 게 기훈에게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자기를 표현하는데 사는 동네를 왜 넣었을까, 재밌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상우(박해수 분)를 소개할 때는 ‘쌍문동이 낳고 키운 서울대 천재 조상우’라고 하지 않나. 굉장히 많은 수식어가 붙는데, 기훈에게는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수식어가 ‘쌍문동’밖에 없구나.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는 기훈의 모습을 보면서 짠했다.”

-결말에서 기훈의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 못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곧 죽게 될 텐데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기훈이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딸을 만나러 가지만 지금 누군가가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져있다면 딸을 만나는 것보다 당장 길에 쓰러져있는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아무리 중요해도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훈의 선택에 당연히 공감이 됐다.”

캐릭터 수집가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정재. /넷플릭스
캐릭터 수집가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정재. /넷플릭스

-데뷔 초 ‘청춘스타’에서 이제는 ‘연기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배우로서 연기파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변곡점은 언제였을까. 
“연륜인 것 같다. 경험. 한 작품 한 작품 다양한 감독님과 제작진,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조금씩 경험을 쌓았던 덕이지 않을까. 또 해가 가면서 관객분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싶은 내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종합적으로 모이다 보니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딱 한 작품이나 특별한 계기로 인해 확 변했다고 할 순 없는 것 같다.” 

-‘캐릭터를 수집한다’는 말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와 배역을 소화하고 있는데, 더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을까.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 기회가 온다면 더 열심히 해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연기자 입장에서 다양한 일을 많이 해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지금까지 있어줘서 정말 감사하다. 예전 인터뷰에서 내가 나온 작품 DVD를 모으는 게 좋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조금씩 다른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는 게 재밌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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