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디지털 사회의 도래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디지털 성범죄’라는 암세포의 성장도 함께 가져왔다. 특히 최근 들어 금융사기와 디지털 성범죄가 섞인 ‘몸캠피싱’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디지털 사회의 도래는 우리에게 생산성과 업무효율의 증대, 게임과 OTT 등 즐거운 여가 활동들을 가져다 주는 축복이 됐다. 하지만 그 축복의 그늘진 곳 아래서 ‘디지털 성범죄’라는 암세포가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심각한 위협으로 자리잡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유형은 바로 ‘몸캠피싱’ 문제다. 

 금전적·정신적으로 피해자에 큰 고통 주는 조직범죄 몸캠피싱’

몸캠피싱이란 영상 통화로 음란행위를 하는 ‘몸캠’이라는 단어와 전자 금융 사기 범죄를 뜻하는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신종 사기 수법 중 하나다. 성적 행위와 관련한 민감한 자료를 확보한 후, 이를 유포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섹스토션(Sextortion)’ 범죄의 대표적 예시가 바로 몸캠피싱이다. 

몸캠피싱 범죄가 무서운 점은 단순 디지털 성범죄를 넘어 조직적인 ‘금융사기 범죄’가 엮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몸캠피싱의 주된 범죄 수법은 랜덤채팅이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사기 조직원들이 범행 대상자에게 접근한 후 영상통화로 음란행위를 조장하고 조직원들은 불법 앱(App) 및 악성코드를 피해자의 스마트폰이나 PC에 몰래 설치한 후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하는 것이다. 해당 영상을 빌미로 조직원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금품 등을 갈취하거나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해 금전적 이득을 취득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도 2016년 발간한 ‘기술적 수단을 사용한 사이버 금융사기범죄의 실태와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신종 금융사기는 최근에 이메일해킹 무역사기, 랜섬웨어과 섹스토션. 일명 몸캠피싱과 같이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몸캠피싱 범죄의 특징은 기존 피해자가 여성일 확률이 높은 단순 디지털 성범죄와 달리 남성 피해자가 발생할 확률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성적인 호기심이 활발한 남자 청소년의 경우 몸캠피싱 범죄의 위협에서 상당히 위험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인천에 거주하는 중학생 A군이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 측 조사에 따르면 A군은 몸캠피싱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져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대학생 B씨가 몸캠피싱을 당한 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한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에서 공개한 몸캠피싱 범죄 과정./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 몸캠피싱 급증하지만… 범죄 특성 및 복잡한 수사체계에 검거 난항

문제는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입히고 있는 몸캠피싱 범죄는 IT기기의 대량 보급과 디지털 사회의 도래로 더욱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찰청이 발표한 ‘2019 사이버 위협 분석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한 몸캠피싱 피해 건수는 △2015년 (102건) △2016년 (1,193건) △2017년 (1,234건) △2018년 (1,414건) △2019년 (1,824건)으로 해마다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몸캠피싱 범죄 검거율의 경우, 2019년 기준 26.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피해가 한 번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피해 보상 및 해결은 다소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몸캠피싱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몸캠피싱이 단순 개인이 저지르는 디지털 성범죄가 아닌, 금전적 목적 등이 엮여 있는 ‘조직적 범죄’라는 점 때문이다. 

개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증거 은폐 및 경찰의 추적 회피 등에 한계가 있다. 반면 조직적 범죄는 훨씬 효율적으로 경찰의 추적망을 피할 수 있다. 범죄조직들의 경우 몸캠피싱에서 사용하는 홈페이지나 서버의 IP 등을 수시로 변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 해커를 고용해 보안 프로그램 우회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몸캠피싱 범죄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이뤄진다는 점과 복잡한 수사 공조체계가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몸캠피싱 범죄를 당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고하더라도 이미 불법촬영물이 퍼져나가 발생하는 피해는 막을 수 없으며, 복잡한 공조체계로 인해 수사가 늦어져 피해가 커진다는 것이다.

김상영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디지털 포렌식 분석관과 이상진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몸캠피싱 범죄의 2차 피해방지를 위한 경찰의 적극적 대응에 관한 연구(2020)’ 논문을 통해 “대부분의 몸캠피싱 사건은 수사 기관에 접수된 이후에 단서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는데, 이미 2차 피해가 발생된 이후로 실질적인 피해 방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이 몸캠피싱 범죄에서 사용하는 서버가 특정된다고 하더라도 해외에 위치한 경우 현행 국내법체계 및 형사사법 공조 체계는 절차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러한 긴급성을 요하는 범죄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몸캠피싱은 피해자에게 금전적,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금융사기조직과 연관된 조직적인 범죄행위때문에 수사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몸캠피싱은 피해자에게 금전적,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금융사기조직과 연관된 조직적인 범죄행위 때문에 수사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전문가들, “몸캠피싱 대응 위해선 법률 개정 필수”… 피해를 당했을 시엔 신고부터
 
그렇다면 몸캠피싱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는 것일까. 앞서 인용한 ‘몸캠피싱 범죄의 2차 피해방지를 위한 경찰의 적극적 대응에 관한 연구’ 논문을 조금 더 살펴보면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몸캠피싱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므로 법률을 개정해 명확한 근거를 두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저자 김상영 디지털 포렌식 분석관과 이상진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되는 범죄에 대해 다양한 법제도가 존재하고 있으나, 사이버 위험을 총괄하는 기본법과 개별법과의 통일성과 연계성이 고려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경찰상 즉시강제 조치에 대해서는 적법성을 심사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통신망법에 몸캠피싱 관련 피해자에게 중대한 위협을 야기할 수 있는 불법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외 서버또는 통신매체에 대한 즉각적인 수색 및 저장, 삭제 조치’와 관련된 조항을 두어 몸캠피싱 범죄로 인해 탈취된 정보의 확인을 위한 발동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몸캠피싱 범죄가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법에 의해 사기이용계좌전부에 대해 지급정지 초기를 할 수 있도록 ‘지급 정지 대상 범죄로 몸캠피싱 포함’과 관련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현행 공조체계는 절차가 복잡하고 평균 4~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범죄 대응에 한계가 존재한다”며 “국제공조체계를 좀 더 신속하고 원활하게 구축함으로써 사이버 범죄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국제공조체계의 효율적 구축을 주문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몸캠피싱 범죄 자체에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개개인이 조심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몸캠피싱 범죄를 당했을 경우, 범죄자들의 요구에 절대 응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국은 “스마트폰 환경설정 메뉴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어플 설치 차단’ 기능 등을 이용해 보안 설정을 강화시킬 것을 권고한다”며 “익명성 보장을 이유로 개인 정보와 채팅 내용을 저장하지 않는 랜덤채팅 앱 등은 몸캐피싱 등 여러가지 범죄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음란 채팅'’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만약 몸캠피싱 범죄를 당했을 경우 범인들의 송금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하는데, 송금할 경우, 오히려 추가로 더 돈을 요구하며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으면 결국 동영상을 배포해버린다”며 “협박 문자나 전화를 받은 즉시 채팅 화면을 캡쳐하고 송금 내역 등 증거자료를 준비한 후,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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