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오리지널 시리즈(Apple Original Series) ‘파친코-Pachinko’로 돌아온 윤여정. /애플TV+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Apple Original Series) ‘파친코-Pachinko’로 돌아온 윤여정. /애플TV+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상을 받는 순간에는 기쁘다. 그러나 상이 나를 변화시키진 않는다. 나는 그냥 나로 살다 죽을 것이다.”

한국배우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 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 선정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으며 K-콘텐츠 글로벌 신드롬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 윤여정은 들뜰 법도 한데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겸손하고, 솔직하고, 거침이 없었다. 위트 있는 입담 역시 여전했다. 

윤여정은 최근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Apple Original Series) ‘파친코-Pachinko’(감독 코고나다‧저스틴 전, 각본 수 휴) 공개를 앞두고 <시사위크>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시 한 번 글로벌 프로젝트로 돌아오게 된 그는 ‘파친코’ 촬영 비하인드부터 오스카 수상 이후 생활까지, 특유의 솔직함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파친코’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도서를 원작으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을 4대에 걸친 연대기로 풀어낸다. 

25일 정식 공개를 앞두고, 국내외 언론에 먼저 소개된 ‘파친코’는 장대한 서사를 유려하게 담아낸 연출과 몰입감을 더하는 배우들의 열연 등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대표적인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는 신선도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윤여정을 향한 칭찬도 쏟아지고 있다. 1900년대 초 한국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파친코’는 선자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윤여정은 노년 시절의 선자로 분해 묵직한 존재감으로 극을 이끈다. 모든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 선자의 지나온 삶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고스란히 담아내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는 평이다. 

25일 애플TV+에서 공개된 ‘파친코’. /애플TV+
25일 애플TV+에서 공개된 ‘파친코’. /애플TV+

윤여정은 ‘파친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그동안 알지 못한 자이니치(재일동포)의 삶을 알게 됐다며 값진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들과 이 작품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내가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지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 작은 동네에 살았다. 영어도 잘 못하고 그랬는데 미국인 친구들이 잘 도와줬다. 인종차별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잘 몰랐는데, 우리 아들 세대는 많이 느낀 것 같더라. 그들을 보며 국제고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도 한국말을 못하니 이상하고, 미국에서도 생김새가 다르니 미국 사람도 아니고. ‘미나리’를 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아이삭(정이삭 감독)을 도와줘야겠다. 다 우리 아들인데, 무언가를 만든다고 하는데 도와줘야겠다는 그런 게 아마 내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사람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잖나. 글로벌 프로젝트라서 하거나 그런 마음도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래서 하는 걸 거다. 아마.” 

-일제강점기 전후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품에 임하며 부담감은 없었나. 
“우리 엄마가 이 시절 사람일 거다. 1924년생. 나는 1947년생이니까 해방 후에 태어나서 잘 모른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너무 많이 배웠다. 우선 ‘자이니치’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우리는 보통 재일동포라고 하기 때문에, ‘자이니치’라는 말이 혹시 나쁘게 표현하는 건가 생각했다. 극 중 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박소희가 자이니치인데, 그에게 물어보니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하더라. 재일동포지만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이 있었다. 자이니치에 대해 알게 돼서 좋았다. 이래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 찍으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많이 배웠다.” 

-과거 미국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선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어땠나. 
“나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나는 미국에서 일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공감한 것은 살기 위해 일을 할 때는 힘든 일인지 아닌지 모르고 한다는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할 때는 힘든지도 모른다. 젊은 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치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살기 위해 김치를 만들어 파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파친코’에서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 /애플TV+
‘파친코’에서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 /애플TV+

-‘그것만이 내 세상’ 때 경상도 사투리 연기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이번에는 어땠나. 
“그때 사투리 배우느라 연기를 망쳤다. 사투리에 너무 집중했다. 이우정 작가에게 물어보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원어민처럼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이번에도 사투리 코치가 가르쳐주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가 그럼 연기를 못한다. 뉘앙스만 살리고 연기에 집중해야지 했다. 또 선자가 16세에 일본에 가서 70년을 살았으니, 다 잊어버리지 않았겠나. 이상한 억양이 됐을 거라고 해석해서 그냥 두라고 했다. 내가 늙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거다.(웃음)”  

-노년의 선자가 부산 영도의 찬 바다에 발을 담그고 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에 없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 
“시나리오를 받고 그 신을 봤을 때, 각색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고 잘 표현하고 싶었다. 선자가 고향에 한 번 돌아가 보고 싶지 않았겠나. 선자는 9살 때부터 물질을 배우려고 했다. 초반 선자가 물에 들어가고 아버지가 같이 숨을 참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나이가 든 선자가 고향 바다를 보자마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좋았다. 어떻게 표현을 할까 나 혼자서 준비를 많이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저스틴 전 감독이 갑자기 비를 뿌리겠다는 거다. 비를 막 뿌리니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그것만 생각난다.” 

겸손함을 잃지 않은 윤여정. /애플TV+
겸손함을 잃지 않은 윤여정. /애플TV+

-지난해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후 달라진 점이 있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똑같은 친구와 놀고 똑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하나 감사한 것은 내가 만약 젊은 나이에 상을 탔다면 둥둥 떠다녔을 것 같다. 내 나이에 감사해보긴 또 처음이다. 나도 늙는 게 싫은 사람인데, 내가 만약 ‘아카데미’인지 ‘오카데미’인지 30~40대에 탔다면 사람 다 똑같으니 붕붕 떴을 거다.

물론 상을 받는 순간에는 기쁘다. 하지만 상이 나를 변화시키진 않는다. 나는 그냥 나로 살다가 죽을 거다. 어제 스티븐 연을 만났는데 상 안 타길 잘했다고 했다. 지금 타는 건 아니라고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그 나이에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 운이다. 정말 운이 좋았다. 봉준호 감독이 노크를 했고, 그 다음에 ‘미나리’라는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아카데미에 올라갈 수 있었고, 또 내가 이상한 할머니로 상을 탄 거다. 정말 운이었다.”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늘 재치 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왜 재밌는지 가르쳐주겠다. 나는 힘들게 살고 힘들게 촬영하기 때문에 심각하고 싶지 않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진지하지만 다른 순간에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는 게 이상하다. 웃고 싶고 릴렉스 하고 싶다. 어떤 배우들은 계속 토론한다. 하지만 액팅은 토론이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 액팅을 토론으로 하면 연기론을 쓰든가 해야지. 사람들이 날 웃기다고 하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날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날 좋아한다. 그게 세상이지 뭐.” 

-끝으로 ‘파친코’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굉장히 장대한 역사를 한 가족을 통해 담은 작품이다. 각색을 했기 때문에 소설과 또 다르다. 나는 보고 만족했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장벽을 넘으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파친코’를 통해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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