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현진이 영화 ‘카시오페아’(감독 신연식)로 관객과 만난다. /트리플 픽쳐스
배우 서현진이 영화 ‘카시오페아’(감독 신연식)로 관객과 만난다. /트리플 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배우 서현진이 이젠 스크린으로 향한다. 영화 ‘카시오페아’(감독 신연식)를 통해서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으로 분한 그는 탄탄한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열연을 보여준다. 작은 브라운관이든, 큰 스크린이든 빛나는 서현진이다. 

영화 ‘카시오페아’는 변호사, 엄마, 딸로 완벽한 삶은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수진(서현진 분)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며 아빠 인우(안성기 분)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특별한 동행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동주’ 각본과 ‘페어 러브’ ‘러시안소설’ ‘조류인간’ ‘배우는 배우다’ ‘프랑스 영화처럼’ ‘로마서 8:37’ 그리고 최근 송강호 주연의 ‘1승’까지 탄탄한 필력과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연식 감독의 신작이다.  

서현진은 수진 역을 맡아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2017) 이후 5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수진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능력 있는 변호사로, 이혼 후 딸 지나와 함께 평범하면서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지나를 미국에 유학을 보낸 후 뜻밖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며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게 된다. 

‘카시오페아’에서 수진을 연기한 서현진 스틸컷. /트리플 픽쳐스​
‘카시오페아’에서 수진을 연기한 서현진 스틸컷. /트리플 픽쳐스​

서현진은 변호사에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며 점점 어린아이로 변해가는 수진의 모습을  깊이 있고 다채로운 연기와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으로 소화해 호평을 얻고 있다. 초점을 잃은 눈빛부터 격정적인 감정 변화까지, 때론 담담하게 때론 폭발적으로 그려내며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드라마 ‘또 오해영’을 시작으로 ‘낭만닥터 김사부’ ‘사랑의 온도’ ‘뷰티 인사이드’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고, 드라마 ‘블랙독’으로 연기 변신까지 이뤄내며 연기력과 흥행력을 모두 입증한 서현진은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개봉에 앞서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영화에서 큰 롤을 맡아 보여드리는 게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관객들의 반응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기는 아쉬움이 남지만 낯설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서현진. /트리플 픽쳐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서현진. /트리플 픽쳐스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정말 큰 도전이었다. 드라마에서 주로 노출된 배우이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낯설게 느껴질까, 혹은 내 얼굴이 스크린에 적합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기술 시사회 때 무서워서 못 보겠더라. 그래서 매니저한테 대신 봐주고 이야기해달라고 했었다. 언론배급시사회 때는 봐야 한다고 해서 끌려가서 봤다.(웃음).”

-직접 보니 어땠나. 드라마 속 얼굴과 스크린 속 모습이 다르던가. 
“일단 화장을 안 해서 다르게 보이더라.(웃음) 드라마에서는 속눈썹도 다 붙이고 자잖나. 지웠다 다시 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영화 속 얼굴이 크게 이질감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스크린에 적합하지 않은 배우일까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비록 연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낯설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게 의외다.   
“촬영할 때는 최선이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한 장면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느낌으로 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만족스럽진 않더라. 허점도 많이 보이고 저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싶은 장면도 많아서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의식, 갈증이 있었나.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가족 중 알츠하이머를 겪은 분이 계셔서 굉장히 공감하고 많이 울면서 봤다. 그래서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은 없었다. 다만 영화를 한다면 드라마에서 할 수 없는 장르나 더 깊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던 차에 ‘카시오페아’ 시나리오를 받았다. 드라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택하게 됐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준비했나. 
“직접 환자분들을 만나볼 순 없었고, 제작사나 감독님이 보내주신 영상 자료를 많이 봤다. 가짜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됐다. 증상을 나타내야 하는데 뭔가 하나라도 ‘어?’하는 부분이 있으면 흐름이 깨질 것 같았다. 자세라든지 목소리라든지 세세한 부분을 각 장면별로 나눠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 맞춰 진행했다. 외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다. 진행 과정을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이 도움이 됐다. 할머니한테 봤던 몸의 행동이나 패턴을 기억하면서 연기했다.”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어떻게 극복했나. 
“평소에도 작품을 할 때 서현진의 일상생활이 없어지는 편이긴 하다. 보통 드라마, 작품이 끝나고 나면 집에서 잘 안 나온다. 취미가 없다. 제일 좋아하는 게 연기고 그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작품이 끝나면 거의 일주일 정도 방에서 못나온다. 극복하는 방법도 없다. ‘카시오페아’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오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작은 영화라 촬영기간이 짧았고, 그래서 수진으로 있어도 고통스럽지만 너무 많이 가지 않을 때쯤 끝날 수 있었다. 또 드라마로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서현진이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트리플 픽쳐스
서현진이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트리플 픽쳐스

-소재 자체만 보면 신파 등 선입견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카시오페아’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꼽자면. 
“나 역시 너무 신파로 흐를까 봐 가장 걱정이 됐다. 촬영하면서 건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내가 자꾸 우는 거다. 울지 않기로 한 신에서도 울음이 터졌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그냥 솔직하게 나오는 감정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해주셔서 그냥 정말 표현되는 대로 했다. ‘카시오페아’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다룬 이야기지만, 그것보다 가족 간의 유대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수진의 이야기, 찍는 동안에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본 다음에는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점이 차별화된 매력이 아닐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이 영화를 가족 중 누구와 보고 싶나. 
“아빠가 시사회 때 못 오셨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는데 올라오시다가 몸이 안 좋으셔서 엄마만 올라오고 아빠는 집에 가셨다. 최근 아빠가 동생한테 ‘나는 우리 집에서 왕따 같아, 너네가 엄마랑만 친해’라는 말을 하셨다고 하더라. 아마 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런 느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육아를 엄마만 하던 시대였으니까. 나도 못해봤는데, 동생이 평생 아빠를 처음 안아줬다더라. 그랬더니 아빠가 한참 말씀을 못하셨다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많이 울었다. 아빠가 말씀이 많으신 편이다. ‘그만’하고 끊어야 멈추시는데, 아빠가 외로워서 저렇게 혼잣말을 많이 했구나 생각이 들더라. 아빠랑 보고 싶다.” 

-만약 수진처럼 기억을 잃게 된다면,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나 존재가 있을까.  
“중고등학교 때 한국무용을 했는데 반복해서 동작을 하잖나. 그런데 어느 순간 몰아의 경지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안 들리고 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때가 한 번 있었다. 연기할 때도 한 작품에 한 장면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집중했던 순간. 그런 순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잊고 싶지 않다. 기억하고 싶다.”

서현진이 배우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트리플 픽쳐스​
서현진이 배우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트리플 픽쳐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참 큰 것 같다.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일까. 
“나는 연기를 하지 않으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 연기할 때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고 밖에도 제일 많이 나가고 그래서 훨씬 더 건강하다. 작품을 찍어야 하니 더 좋은 음식을 먹고 그래서 컨디션도 더 좋다. 1년에 한 작품은 꼭 하자고 생각을 했었다. 오래 쉬면 연기가 줄어들 것 같은 거다. 현장감이 떨어지면 연기를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지금보다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작품을 해온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 너무 안 쉬긴 해서 이제 반년 정도는 쉬고 싶다고 회사에 이야기했다.” 

-배우로서 여러 강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확한 딕션과 발성에 대한 칭찬이 많다.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궁금하다.   
“좋게 봐주신다면 그것은 당연히 감사한 일이다. 다만 딕션이 좋은 게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도 문장을 읽을 때 꼬이는 발음이 있으면 연습해서 안 꼬이게 하지만, 딕션을 위해 일부러 볼펜을 문다거나 연습하진 않는다. 말할 때 편하려고 하는 훈련은 있지만 딱히 딕션이 좋으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내가 말하는 게 너무 잘 들려서 마이너스인 장면도 있다. 조금 더 뭉개지는 발음이면 더 좋은 캐릭터일 수 있잖나. 다음에는 그런 캐릭터를 해서 일부러 뭉개보기도 해야겠다.”

-많은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더라. 이제 누군가의 롤모델로 꼽히는 배우가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또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되게 부담스럽다. 막 더 잘해야 할 것만 같잖나.(웃음) 그동안 시간을 돌아보면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참 다사다단했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없어지는 시간은 없구나 싶기도 하다. 그 시간 동안 분명히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면 분명히 배우거나 얻는 게 꼭 있더라. 없어지거나 버리는 시간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인터뷰에서 ‘로코퀸’ 수식어를 두고 민망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카시오페아’를 통해 듣고 싶은 수식어나 평가가 있다면. 
“사실 우리나라에는 ‘로코퀸’이 참 많다.(웃음)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안했다. ‘또 오해영’ ‘뷰티 인사이드’ 정도다. ‘또 오해영’을 많이 보시고 좋게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머쓱하더라. 그런데 최근 이렇게 채널이 많고 영화도 많은데 내가 출연한 작품을 봐주신다고 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작품을 통해 듣고 싶은 수식어는 없다. 그냥 이렇게까지 연기를 하고,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배운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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