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CG작업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업체의 과도한 작업 수주, 촉박하거나 횟수 제한 없는 수정요청, 기한이 짧은 재하청 작업 등을 꼽았다. /픽사베이

시사위크=엄이랑 기자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CG작업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업체의 과도한 작업 수주 △촉박하거나 횟수 제한 없는 수정요청 △기한이 짧은 재하청 작업 등을 꼽았다. 

장시간 노동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자 CG업체 소속 직책 중 하나인 프로젝트 매니저(PM)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PM은 CG작업을 요청하는 제작사와 긴밀히 소통하며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안정적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담당한다.  

◇ 낮은 단가, 세분화된 작업공정 등 다수 요인 존재 

본지와 만난 현직 PM(이하 C씨)은 “대다수 제작사는 할리우드 수준의 결과물을 원하는 반면, 단가는 낮게 책정한다”며 “규모가 큰 업체는 작업인원 유출을 막고자 업무 환경을 개선하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업체는 개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C씨는 CG업체들이 과도한 작업을 수주하는 원인으로 수익이 낮은 점을 들었다. C씨는 “1차 원인은 마진이 적은 업계 특성이다. 올린 수익으로 인건비, 장비 구입 등의 비용이 해결되면 다행”이라며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해서 CG까지 담당한다면 모를까, 대다수가 제작사로부터 하청을 받는 구조다보니 수익이 낮다”라고 설명했다.

특정 시기 다량의 작업을 수주하는 이유로는 영화업계 특성을 꼽았다. 대부분의 영화는 개봉시기를 이른바 대목인 여름(7~8월)·겨울(12월)을 목표로 하는 탓에 비슷한 시기 작업의뢰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대목을 노리는 영화 대다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볼거리에 집중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 필요해 더욱 면밀한 작업을 요하는 특성이 존재한다. 

C씨는 다량의 작업 수주 외에 장시간 노동의 또 다른 요인으로 세분화된 작업 공정을 들었다.

C씨는 “(CG 작업은) 일정 부분 아트워크(독창적인 예술 형태의 작업)라 정해진 일정에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며 “한 샷의 CG작업을 완성하는데 여섯 단계의 공정이 필요하다. 특정 파트를 기준으로 전달받거나 전달해야 하는 6개 파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단계에서 늦어지는 경우 업무가 지속 누적되고 최종 작업에 근접한 공정일수록 과부하된다”고 말했다.

C씨는 잦은 수정을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으로 보지 않았다. 마감일이 촉박한 재하청 문제와 관련해서는 타 업체에 급히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의 대다수는 작업자들이 다치거나, 퇴사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씨는 “모든 회사가 처음부터 계획 하에 진행하고 싶을 것이다. (재하청은) 작업이 추가되거나, 작업 인력이 줄어드는 불가피한 상황에 내리는 선택”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도 마감이 촉박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재하청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획했던 대로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CG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업계 내 장시간 노동이 연이어지는 원인에 다수 요인을 언급한 가운데, 업체들 간 작업을 수주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는 출혈경쟁이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픽사베이

◇ ‘52시간제’ 시행, ‘주40시간 근무’ 안착이 노동환경 개선에 영향 미칠지 ‘주목’

C씨는 작업 단가가 낮은 점이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업계 내에서 작업을 수주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는 이른바 출혈경쟁이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C씨는 “예를 들어 100의 비용이 필요한 CG를 80에 수주하게 되면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수주 단가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작업량 대비 적은 수의 작업자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요하게 되고, 피로가 누적돼 쓰러지거나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등 작업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재하청으로 해결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C씨는 조심스럽게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업계 내 장시간 노동은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2020년 1월 50~300인 미만 사업장 대상으로 주52시간제가 본격 시행된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5~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시행됐기 때문이다. 단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가 이뤄질 경우에 한해 1주 최대 60시간(올해 12월 31일까지)이 가능하다.

C씨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시작한 세대에게 주40시간 근무가 자연스러운 만큼, 작업인원을 늘리거나 유지하려면 회사 차원에서도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먼저 업체 간 원활한 정보 공유를 꼽았다. 이어 △정부의 규제 및 제도 마련 △업계 재직자 간 정보 공유 활성화 △협회와 같은 직능단체 설립 등을 들었다. 

C씨는 “업체별로 몇 작품을 진행 중인지, 작업인원은 몇 명인지 등의 정보가 공유되면 제작사 입장에서도 굳이 다량의 작업을 진행 중인 업체에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상적으로는 건설업계 공사 입찰을 정부에서 관리하듯 CG업계에 도입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현실적으로는 업계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창구가 활성화 돼야 한다”라며 “더 나아가 재직자들을 대변할 협회와 같은 직능단체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참고자료

 

- 영상 CG업체 프로젝트 매니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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