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쵤영감독 중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한국 쵤영감독 중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정정훈 촬영감독은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 무려 일곱 번이나 박찬욱 감독과 협업한 그는 국내 화제작들은 물론, 영화 ‘스토커’로 한국 촬영감독 중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언차티드’까지 내로라하는 작품에 연이어 참여하면서 할리우드에서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정 촬영감독은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독창적인 촬영 시퀀스와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순간을 포착하는 연출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관객까지 사로잡고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감독 데보라 초우)에서도 정정훈 촬영감독의 감각적이고 디테일한 촬영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오비완 케노비’는 어둠과 절망이 팽배한 세상,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잔혹한 제다이 사냥꾼에 맞선 오비완 케노비의 목숨을 건 여정을 담은 작품.

한국인 최초로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여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오비완 케노비’의 깊은 내면의 고뇌와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만 볼 수 있는 광활한 우주 비주얼, 시그니처 광선검 액션 시퀀스 등 풍성한 볼거리를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 완성도를 높였다. 함께 작업한 데보라 초우 감독은 정정훈 감독과의 협업에 대해 “정말 놀라웠고 완벽한 파트너였다”고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14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전설적인 시리즈에 참여하게 된 소감부터 촬영 비하인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체감한다면서 뿌듯함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레전드 작품으로 꼽히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여한 소감은. 
“학교 다닐 때부터 교과서처럼 공부했던 ‘스타워즈’에 참여하게 돼서 좋았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최전방에서 일한다는 게 굉장히 설레고 얻은 것도 많은 작업이었다.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다. 특이하고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였나.  
“사실 ‘스타워즈’ 광적인 팬은 아니었다. 영화학교에서 ‘스타워즈’의 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영화를 접했고, 그래서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봤다. 그러다 이번 시리즈를 촬영하면서 팬이 됐다. 원래 ‘스타워즈’ 오비완 캐릭터에 대해 관심 있고 애정이 많아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망설임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제 ‘스타워즈’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입장이 됐다. 촬영을 하고 나서 오히려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는 상황이 됐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임에도 배경이나 의상이나 고전 느낌이 묻어나는 나는 작품이다. 이런 매력을 더욱 살리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  
“이번 작품에 나를 기용한 것 중 제일 큰 부분이 ‘스타워즈’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다. ‘스타워즈’만의 규칙들이 알게 모르게 있는데,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 위주로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상이나 배경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원래 있던 설정에서 나름대로 고증을 거치고 ‘스타워즈’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다. 자유로우면서도 고전 느낌을 내기 위해 옛날 ‘스타워즈’를 많이 참고했다.” 

-데보라 초우 감독이 정정훈 촬영감독의 전작, 특히 ’올드보이‘ 스타일을 착안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사용됐나. 
“사실 ‘올드보이’ 스타일을 착안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장도리 신 같은 특정 장면을 생각하는데, 특별히 어느 장면을 오마주 했다기보다는 카메라 움직임이나, 더 다크한 룩을 참고했다.”

정정훈 촬영감독 특유의 감각이 돋보이는 ‘오비완 케노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 특유의 감각이 돋보이는 ‘오비완 케노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만이 가진 우주 세계의 모습을 담고자 가장 신경 쓴 촬영 기법은 무엇인가.
“‘스타워즈’는 배경이 우주라 그렇지 이야기 자체는 현실 어느 상황에서도 매치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다. 미래 이야기이고 우주 배경이기 때문에 꼭 이래야 해 이런 걸 없애려고 노력했다. 공개된 후에 ‘스타워즈 같지 않다’는 분들도 있고 ‘새롭다’는 분도 있고 다 다른 것 같은데, 특별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다만 그동안 스튜디오 안에서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것을 배제한 LED 볼륨으로 촬영했다. 굉장히 앞선 기술이기 때문에 한계도 많고 잘못 찍으면 실제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카메라에 어떻게 담기는지 현장에서 확인하고 테스트하며 촬영했다.” 

-‘오비완 케노비’만의 차별을 둔 부분이나 특색이 드러나도록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특별히 그런 건 없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한국에서 진행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드라마에 따라서, 이야기에 따라서 카메라가 구성되고, 조명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차별점이 나오게 된다. 또 ‘스타워즈’ 시리즈는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해도 워낙 자체의 색깔이 강하기 때문에 촬영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특이하고 희한한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했나.  
“볼륨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SF라고 하면 무조건 블루, 그린 스크린 앞에서 배경에 뭐가 쓰인지도 모르게 심심한 촬영을 했는데, LED 볼륨 시스템이 있어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배경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이런 것을 경험했다. 배우들도 실제 눈앞에 배경이 보이면 조금 더 심도 있게 연기할 수 있잖나. 그런 경험이 대단했던 것 같다. 또 ‘오비완 케노비’ 같은 경우에는 ‘스타워즈’의 상징 캐릭터들을 직접 만나게 되니 희한하고 신기했다. 스태프들 중에도 ‘스타워즈’ 팬들이 많아서 한 장면 한 장면 흥분돼 있었고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기뻐하며 작업했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한 할리우드 작품들. (왼쪽부터) ‘좀비랜드: 더블 탭’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언차티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한 할리우드 작품들. (왼쪽부터) ‘좀비랜드: 더블 탭’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언차티드’. /네이버영화, 유니버설 픽쳐스, 소니 픽쳐스 

-다양한 장르의 규모 있는 작품에 참여했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인인 정정훈 촬영감독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통역을 쓰지 않고 직접 (소통)해보려고 노력 중인데, 언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말 수가 적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되게 나이스 한 줄 알기도 하고, 컴플레인도 안 해서 많이 쓰는 것 같다.(웃음) 사실 내가 촬영한 작품을 보면 나 자체도 가끔 너무 색깔이 달라서 도대체 나는 누군인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작품이 뭐가 될지 나 스스로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직 많이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경험해 보려고 한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나를 찾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본 미국의 스토리를 담고 싶어서 많이 찾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같은 영화인으로서 함께 할만하니 찾는 게 아닐까.”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위상이나 변화를 체감하나.  
“나는 ‘올드보이’가 모든 영화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시기에 넘어왔는데, 지금은 한국 작품에 대한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를 들면 ‘오징어 게임’도 현지 감독이나 스태프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들었다. BTS 같은 경우도 나보다 먼저 현지에 있는 프로듀서나 감독, 배우들이 난리가 난 거다. 이제 내가 홍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한테 ‘봤어? 들어봤어?’라고 하는 것들이 재밌다. 예전에는 한국이라고 하면 김치나 비빔밥, 불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첫인사였고, ‘강남 스타일’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온 콘텐츠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로 세계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작품에 참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앞으로 계획은. 
“그 작품에 몰두하려고 한다. 좋든 나쁘든 전작과 다르게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도 한다. 촬영감독이지만 그렇다고 비주얼에 너무 치중해서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지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쓴다. 앞으로 계획은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함께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신작을 준비 중이고, 미국에서 작은 영화도 촬영할 예정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다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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