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돌아온 배우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돌아온 배우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지은은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가수 아이유로, 배우 이지은으로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매 순간 성장을 멈추지 않고, 매번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또 입증해 오고 있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서도 ‘배우’ 이지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브로커’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 익명으로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이지은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의 엄마 소영으로 분해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표정부터 손짓,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소영으로 온전히 분해 인물을 더욱 디테일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해낸 것은 물론, 특유의 담백하고 담담한 연기로 인물의 다층적인 감정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이끌어냈다. 

특히 지난달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큼, 그동안 탄탄히 쌓아온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며 또 한 번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뤄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지은은 첫 상업영화로 관객 앞에 서는 소감부터 칸영화제 방문 비하인드, 촬영 에피소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다.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칸에서 처음 봤는데, 너무 떨렸다. 자리도 자리고, 의상도 불편하고.(웃음) ‘첫 장면에 나 나오는데, 이 장면 끝나면 나 나오는데’ 이것만 생각하면서 봤는데, 다 보고 나니 예상한 것보다 재밌는 영화더라. 부모님이 엄청 궁금해하셨다. ‘재밌어?’라고 물어봐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재미의 기준이 뭔가에 따라 다를 거라고,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이 담담하고 담백한 편이라 엄마, 아빠가 재밌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는데, 칸에서 보고 나와서 ‘엄마, 아빠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메시지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칸 프리미어 상영 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고. 기분이 어땠나.  
“모든 게 다 얼떨떨했고, 모두가 송강호 선배에게 다 의지했다. 심지어 관계자분들도 송 선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라. 워낙 경험이 많으시잖나. ‘선배님 그거 잘한 거 맞아요? 이렇게 한 거 실수한 거 아닌가요?’ 등 모두가 선배에게 물어봤다. 얼떨떨했고 많이 떨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즐기지는 못했다.”

영화 ‘브로커’에서 아기 엄마 소영을 연기한 이지은 스틸컷. /CJ ENM
영화 ‘브로커’에서 아기 엄마 소영을 연기한 이지은 스틸컷. /CJ ENM

-해외 매체에서 본인을 두고 ‘한국의 국보’로 소개하고, 영화 공개 후에는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그런 것들을 찾아볼 여유가 정말 없었다. 선배들도 그랬을 텐데, 관계자들이 공개 다음날 와서 ‘지은씨도 되게 좋은 이야기 많아’라고 말해주셨다. 그런데 당연히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여유를 갖고 번역기를 돌려서 번역해 보니 진짜 내 이야기를 했더라. 언급된 평들이 있더라. 너무 신기했다. 팬들을 만난 것도 신기했다. 프랑스에 팬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전혀 못했다. 공항에서부터 환대를 해주셔서 정말 얼떨떨했고 몰래카메라 같았다. 레드카펫 행사에서는 더 많은 팬들이 사인 요청을 해줘서 마치 ‘서프라이즈’ 속 한 장면 같았다. CD를 들고 있던 팬도 인상적이었다. 가짜 같기도 하고, ‘어떻게 사셨을까, 직구 하셨나’ 여러 생각이 짧게 지나가기도 했다. 하하.”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감독의 명성, ‘나의 아저씨’ 활약에 대한 기대, 대선배들과의 호흡 등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해결했나.  
“일단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들었던 고민은 ‘송강호 선배와 과연 내가 면 대 면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기절하지 않고?’였다. 그게 제일 먼저 들었던 걱정이다. 연기를 계속한다고 해서 쉽게 오는 경험이 아니잖나. 송강호 선배와 촬영할 때는 직전까지 가장 떨리고 시작하면 가장 떨리지 않고 그랬다. 정말 편하게 해주셨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응원해 주시고 독려해 주시고 눈여겨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처음 제안을 주셨을 때, 보여드린 게 없는데 너무 큰 역할을 맡겨 주신 거라 걱정이 됐다. 그런데 고레에다 감독님도 편하게 해주셨다. 사실 내가 많이 귀찮게 했다.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소영의 구체적인 전사라든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이 지점에서는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소영은 선택에 후회가 없는 인물인지 등 꼬치꼬치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애매한 지점 없이, 의문이 남지 않는 답변을 해주셨다. 그 지점에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또 한 번 영역을 확장한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또 한 번 영역을 확장한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직설적인 대사가 많았다. 어렵진 않았나.  
“감독님의 초기작부터 열심히 봤던 입장에서 ‘브로커’는 늘 해온 화법과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주제를 다룰 때 돌려 말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대사를 번역하고 직역하는 과정에서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 더 직설적인 대사들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직설적이고 바로 화두를 던지는 표현법이 신선했다. 연기하면서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행동이나 눈빛, 분위기로 넘어갈 법한 신에서도 확실히 대사로 짚어주고 명시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것을 여러 테이크 시도하면서 감독님의 생각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에 있어서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차진 욕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원래 대본에는 일본식 욕이 한국어로 직역된 느낌이 나는 대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화났을 때 순하게 이야기하지 않잖나. 한국 욕만의 거침이 있잖나. 그래서 감독님에게 혹시 욕을 한국식으로 바꿔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좋다고 해주셔서 많이 바꿨다. 이렇게도 바꿔보고 엄마 앞에서도 해보고 아빠 앞에서도 해보면서 연습도 많이 했다. 선배들은 바뀐 대본이 미리 전달되진 않았던 것 같더라. 현장에서 바뀐 대본을 보고 재밌어해주셨고, 다행히 찍을 때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독님이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다.” 

-엄마 역할도 처음이었다. 어땠나.  
“막연하게 다음 작품을 고를 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엄마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는데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바로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신기하다 싶었다. 당시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고, 출산을 경험해 본 사람,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 보고 싶고 연기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고 나서는 여전히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당연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엄마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들 우성을 연기한 아기배우 박지용과의 촬영은 어땠나.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아기를 달래는 연습부터 하고 들어갔는데, 극 중 소영이 능숙하게 아이를 안는 엄마가 아니고 아이에게 가는 마음을 모른 척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용을 제일 많이 안아본 사람은 강동원 선배였다. 도맡아서 아이들을 봐줬다. 그래서 지용과 그렇게 친해질 기회는 많이 없었는데, 촬영이 끝난 후에도 SNS를 통해 몰래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전 시사회에서 지용이 왔는데 나는 모르는 것 같더라. 동원 선배한테는 낯을 덜 가리는 것 같았는데, 나는 생판 처음 본 사람처럼 했다. 그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걷는 지용의 모습을 보니 너무 좋고 예뻤다. 나중에 이 아이가 말을 하게 됐을 때는 기분이 또 어떨까 싶었다. 촬영 끝나고 어머님을 통해 지용에게 작은 쪽지를 전했다. 나의 첫 번째 아이잖나. 앞으로 계속해서 엄마 역할을 하게 된다면 첫 번째 아이 역할을 맡았던 지용이가 특별하게 남을 것 같은 거다. 내 아이로 와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쪽지를 남겼다. 그런데 나중에 지용이가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다. 짝사랑이었다.”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지은. /EDAM엔터테인먼트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담담하게 불렀음에도 이렇게 감미로울 일인가 싶더라. 가수 아이유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 장면이라 고민도 됐을 것 같은데. 
“계산을 많이 한 장면이다. 원래 있던 장면이 아니라고 들었다. 감독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쓸 때부터 갑자기 추가된 신이라고 해서, 리딩 때도 너무 떨렸다. 잘 불러야 할까, 못 불러야 할까 고민했다. 너무 잘 불러도 몰입이 깨질 것 같고, 일부러 못 부르는 척해도 작위적일 것 같더라. 그래서 기교 같은 것은 빼고 음정만 맞추는 느낌으로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리딩 때도 박수를 쳐주시고, 영화가 공개된 후에도 자장가 신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 많아서 의외이기도 했다. 그렇게 감미롭게 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가수니까 보태서 좋게 들어주신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 선구안이 좋은 것 같다.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직 기준이 명확한 연기자는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찾아온 시기가 맞는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브로커’ 소영도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찾아왔다. 만약 조금 더 일찍 왔거나 그 시점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많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아저씨’도 그랬고, ‘호텔 델루나’도 그랬다. 그때 당시 어떤 갈증이 있었던 부분을 채워주는 작품이 찾아와줬다. 심도 있게 생각하고 골랐다기 보다 찾아와준 작품들 위주로 지금 내가 가능한가, 지금 컨디션이면 할 수 있나 등을 먼저 따져본다. 겸업하다 보니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때가 많다. 타이밍에 맞춰서 찾아오는 작품이 반갑고 귀하다.”

-배우 이지은이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인가. 연기가 주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무엇인지.
“연기를 하면 내가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의 생각을 건드리는 것 같다. 사람이 어느 지점에서는 관성적으로 살게 되잖나. 소영 역할을 했기 때문에 30살이 되면서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을 생각하게 됐다. 미혼모나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삶을 살고 생각이 건드려지는 게 좋다. 그 과정이 나를 불리는 것 같다. 늘 습관대로 하는 생각만 했을 때, 그것들을 다시 재정비하고 인간을 불리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또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좋다. 가수로서는 프로듀싱을 맡게 된 이후부터 외로운 순간도 피치 못하게 찾아온다. 하나하나 다 선택해야 하고, 내 선택이 맞았나 반문하게 될 때도 있고, 그러면서 팀원들에게 티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는 완벽한 팀 생활이 되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면 된다. 감독님도 있고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면 된다. 명확하게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에서 안정감이 들고,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이지만 작품을 하는 기간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갖고 같이 간다는 소속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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