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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한재림 감독, 시대를 관통하는
2022. 08. 08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비상선언’으로 돌아온 한재림 감독. /쇼박스
영화 ‘비상선언’으로 돌아온 한재림 감독.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재림 감독은 관상을 소재로 한 영화 ‘관상’(2013)으로 913만, 권력 이면의 민낯을 그린 ‘더 킹’(2016)으로 531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충무로 대표 흥행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특수한 상황 속 보편적 사건, 보편적 현실 속 특수한 이야기에 주목, 영화적 재미와 묵직한 감동, 유의미한 메시지까지 담아내며 관객을 매료해왔는데, 5년 만에 선보인 영화 ‘비상선언’에서도 한재림 감독의 이러한 강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물로, 배우 송강호‧이병헌‧전도연‧김남길‧임시완‧김소진‧박해준 등이 출연했다. 지난해 제74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비상선언’은 한재림 감독이 약 10여 년 전부터 영화화를 꿈꿨을 만큼 오랜 구상이 담긴 프로젝트다. 3차에 걸친 콘티 작업을 통해 대사 한 줄, 지문 하나에도 디테일한 연출 의도를 담아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 ‘비상선언’은 기술적인 완성도는 물론, 시의적절한 메시지까지 모두 잡으며 보다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재림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비상선언’의 시작부터 시나리오 작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한 감독은 “조금의 용기와 성실함을 보며 희망과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재난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낸 ‘비상선언’. /쇼박스
재난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낸 ‘비상선언’. /쇼박스

-10년 전에 제의를 받았다고.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우아한 세계’ 끝나고 ‘관상’을 하기 전이었는데, 그때 시나리오를 받았다. 항공기 테러 사건 설정이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지상에서 바이러스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그린 작품이었다. 설정은 참 재밌었는데, 과연 영화 후반부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적인, 그리고 한국에서의 여러 재난들을 보면서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 생각이 들더라.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더 킹’에 이어 ‘비상선언’까지 또 한 번 현실과 매우 맞닿아있는 이야기를 선보여, ‘무서울 정도로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나는 사실 억울하다. 원하지도 않았다. 법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을 다루는 것은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 ‘더 킹’이었는데, 예언처럼 돼버렸다. 그게 싫어서 이제는 장르영화를 해야지 했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다니 화가 났다.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주고 싶은데 너무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처럼 보여서,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억울한 부분이 있다. 다음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상상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영화적 상상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면서 기막힌 감정도 들고 굉장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감했던 것은 내가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가 성실하게 그리고 아주 의미 있게 재난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우리 영화에서는 진석(임시완 분)이 재난의 상징이다. 그 재난은 여느 다른 자연재해와 똑같이 아무 이유 없이 오고 지나간다. 그다음, 이 재난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 것이냐가 더 중요하고 거기에 집중했다. 또 다른 재난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인간성의 훼손, 증오심, 이기심. 그렇기 때문에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아주 작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작은 용기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연대감이 세상 속 재난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향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 의견도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에 다양한 인물 군상이 나오는데, 그런 인물들이 이해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왜 저렇게 행동하지?’가 아니라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해 평가가 갈리는 것 역시 어떤 영화를 기대한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결국 우리 영화는 재난 영화다. 재난 영화 범주 안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비상선언’ 촬영 비하인드를 전한 한재림 감독. /쇼박스
‘비상선언’ 촬영 비하인드를 전한 한재림 감독. /쇼박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극호의 평이 나오고 있다. 특히 마치 실제 비행기에 탑승한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는 평인데,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장면은 정말 실감 나게 담아냈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가장 포인트는 사실감이었다. SF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관객들이 한 번도 안 본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의 세계관이 어떻든 믿을 거다. 하지만 비행기는 모두 다 타 봤잖나. 그래서 사실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약이 많다. 우선 굉장히 좁은데 수많은 스태프가 들어가서 찍어야 하고, 위기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 짐벌도 돌려야 하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해야 하고 그것을 또 카메라로 잡아내야 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카메라 감독이 실제 타거나 그렇지 않는다. 보통 카메라를 설치해서 찍는데, 우리는 사실감을 주기 위해 실제 촬영 감독이 직접 타서 핸드헬드를 들고 인물을 찍었다. 사실감,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그런 노력, 수고를 했다.” 

-음향 편집 있어서 가장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비행기 소리다. ‘부웅부웅’하는 소리가 울음이라고 느꼈다. 하나의 인격처럼, 그 소리가 감정적으로 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하길 바랐다. 비행기가 가진 사운드가 인물들의 드라마에 맞게 나올 수 있게 고민을 했다. 긴장감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송강호부터 이병헌, 전도연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다 모았다. 이들에게 연기적으로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일관적으로는 사실적으로 연기해달라는 거였다. 장르적으로 과장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무엇이 앞서지 말고, 사람이 앞서달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승무원은 달랐다. 승객들에게 안심을 줘야 하고 태도가 중요하니까, 직업이 먼저 앞서는 모습이 보였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옆에서 흔히 보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해달라고 했다. 형사인 인호도, 장관인 숙희도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자기의 삶을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한재림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송강호. /쇼박스
한재림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송강호. /쇼박스

-송강호와는 영화 ‘우아한 세계’ ‘관상’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인호 역에 송강호여야 했던 이유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강호 선배가 안 하면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진짜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인호 역할이 되게 단순한 역할이지만 단순하게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어려운 연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플롯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느냐, 얼마나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균형이 잡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호 선배가 아니면 안 됐다. 세 번째 호흡이라 익숙하고 더 많이 의지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강호 선배는 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항상 어른이고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큰 작품에 여러 배우들이 나오는 현장에서, 많이 의지한 배우였고 선배였다.” 

-임시완(진석 역)을 향한 호평도 많다.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했나.  
“드라마 ‘미생’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 한동안 빠져서 봤다. 그때 (임시완이 연기한) 장그래라는 배역을 보면서 저렇게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진석을 캐스팅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사이코패스지만 오히려 착해 보이는 사람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임시완을 떠올리게 됐다. (임시완에게) 본인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연기해달라고 디렉팅 했다. 과장이나 힘을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일상적인 대사처럼 하면 여러 상황이 그것을 더 만들어줄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최대한 힘을 빼고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희망이다. 재난 앞에 두렵고 힘들지만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것은 되게 어려운 일이다. 두려우니까 도망가고 싶다.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의 성실함이 모인다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졌다, 힐링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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