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헌트’(감독 이정재)로 극장가를 접수한 정우성.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로 극장가를 접수한 정우성.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정우성은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 출연을 두고 무려 네 번이나 거절했다. 연출자로 나선 오랜 동료이자 파트너, 절친 이정재의 도전을 응원하는 마음은 물론, 그와 한 작품에서 다시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그 누구보다 컸지만, ‘함께 한다’라는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만큼 부담감과 책임감도 컸기 때문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정우성에게 이정재는 시나리오 수정을 거듭하며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고, 정우성도 후회 없이 해봐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영화 ‘태양은 없다’(1991) 이후 두 배우의 운명적 재회가 성사됐다. 그리고 모든 도전을 마친 정우성은 “헛되지 않아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이정재가 각본 작업부터 연출, 연기까지 1인 3역을 소화해 완성한 감독 데뷔작이자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으로, 지난 10일 국내 개봉한 뒤 밀도 있는 스토리와 스펙터클한 액션, 배우들의 치열한 열연으로 호평을 이끌어내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 초청도 잇따르고 있다.  

21년 만에 재회한 이정재(왼쪽)과 정우성.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1년 만에 재회한 이정재(왼쪽)과 정우성.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증인’ ‘강철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을 사로잡아온 정우성은 ‘헌트’에서 조직 내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거침없는 추적을 이어가며 실체에 다가서는 안기부 요원 김정도로 분해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폭넓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정도의 갈등과 고민, 아픔 강인함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몰입도를 높였다. 또 박평호를 연기한 이정재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장르적 재미를 배가한 것은 물론, 몸을 사리지 않는 강렬한 액션까지 완벽 소화하며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우성은 ‘헌트’ 출연 결심 과정부터 촬영 비하인드, ‘감독’ 이정재와의 호흡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호평에 “(이정재 감독의) 애정 필터 덕분인 것 같다”며 재치 있는 소감을 덧붙였다.  

정우성이 ‘헌트’ 출연을 두고 고민한 이유를 밝혔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이 ‘헌트’ 출연을 두고 고민한 이유를 밝혔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함께 한다는 것이라는 의미는 지워 버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나쁜 도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네 번이나 거절했다고. 
“(이정재가) 감독에 대한 도전 하나도 버거운데, 나름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두 배우의 조우라는 짐까지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 우려됐다. 우리의 모습을 한 작품에서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정말 재밌고 잘 만든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데, 두 가지를 다 해내기엔 너무 버겁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인(이정재)도 이해하고 다른 배우를 찾기도 했는데 그러다 결국 다시 하자고 제안이 왔다. 그렇다면 한 바구니 안에 담은 계란 두 개가 다 깨질지언정 후회 없는 도전을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끼리 즐기는, 의미에 도취되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하게 됐다.”

-감독 이정재는 어땠나.  
“현장에서 귀를 열어놓고 있는 감독이 되길 바랐고, 본인이 선택한 결정에 따르는 고뇌와 외로움, 감정적인 무게에서 벗어나지 않고 올곧이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좋았다.” 

-개봉은 ‘헌트’가 먼저 했지만, 촬영은 감독 정우성의 첫 장편 연출작 ‘보호자’가 먼저였다. 연출 선배로서 이정재에게 큰 힘이 됐을 것도 같은데.
“그냥 옆에 가만히 있는 게 가장 큰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이정재 감독으로서의 해석과 속도가 있을 텐데 함부로 이야기하고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정재다운 현장이 되길 바라면서 너무 힘들면 기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옆에 있고자 했다.”

‘헌트’에서 김정도로 열연한 정우성(오른쪽).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헌트’에서 김정도로 열연한 정우성(오른쪽).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김정도는 어떤 인물이었나.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폭력을 정당화하는 집단 안에서 환멸을 느끼고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딜레마를 느끼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궤도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데서 형성된 신념. 또 그 안에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억울함 그리고 아픔이 더해져 상당한 무게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외적인 모습이 김정도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조직 안에서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더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상대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도록 외적인 부분을 설정했다.”

-김정도와 박평호의 치고받는 액션 신이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땠나. 
“둘 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아이고아이고’하면서 찍었다. 우리끼리는 ‘아이고아이고’ 액션이라고 한다. 김정도와 박평호는 각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그 신념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종착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부딪힐 때 굉장히 단단한 무언가가 표현되길 바랐다. 어떤 면에서는 닮았지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액션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정도를 향한 반응도 뜨겁다. 스스로도 만족하나. 
“나를 잘 찍고 못 찍고 보다 전체적인 도전을 잘 마무리하길 응원했고 그런 마음으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게 더 우선적으로 와닿았다. 내 캐릭터를 잘 찍었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영화를 봐준 분들이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니까 당연히 감사하다. ‘정우성을 제일 멋있게 찍고 싶었다’고 했다는 이정재 감독의 인터뷰를 봤다. 이정재 감독의 애정 필터가 껴있던 게 아닌가 싶다.(웃음) 촬영할 때는 멋짐을 차치하고 두 캐릭터 안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더 신경 쓰고자 했다. 그게 잘 살아난 것 같다.”

정우성이 ‘헌트’라는 도전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이 ‘헌트’라는 도전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그 어느 때보다 홍보 일정에 적극적이다.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듯한 느낌인데.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니 조금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허용하는 곳은 다 나가보자 했는데, 채널이 다양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새롭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게 됐는데 많은 분들이 재밌어해주시는 것 같아서 좋다. 하길 잘했구나 생각이 든다.”

-‘헌트’와 ‘보호자’가 나란히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됐다. 이정재와 함께 감독으로서 참석하게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칸에 이어 토론토로 신혼여행을 가게 됐다. 하하. 토론토영화제에 간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 이 소식이 어떻게 보면 두 친구가 영화라는 일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더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헌트’라는 도전을 마친 소감은.
“이정재의 감독으로서의 도전과 그 도전에 함께 한 것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좋다. 그런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 도전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고 치열하게 해냈다는 게 좋다. 이번에 함께 하면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한 바구니에 담음으로써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을 시도해 보자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