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22일 서대문 영천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그는 “일자리와 복지 챙기는 일·복 터진, 정을 몽땅 준 후보”라고 소개하며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서울시장이 되기까지 이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있을까. ‘탈환’에 나선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와 ‘수성’으로 맞선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각자 취약지역으로 불리는 강북과 강남 민심을 얻어야만 승리의 깃발을 잡을 수 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2일 두 후보가 강북과 강남으로 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부끄럼 많은 정몽준 “어색한 게 아니라 과묵한 걸로”

정몽준 후보는 이날 새벽 동대문 시장을 찾은 데 이어 노후한 용산 아파트 지역과 한강교량 중 유일하게 안전등급 C등급을 받은 성산대교 등을 돌며 안전 행보를 이어갔다. 오후엔 서대문 영천시장과 종로 광장시장을 찾아 스킨십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정 후보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평소 말주변이 없기도 하지만 시끌벅적한 게 제 맛인 시장에서 정 후보의 과묵한 성격은 다소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시장 상인들의 평가 역시 갈렸다. 과일을 판매하는 50대 부부는 “TV로만 보다 실물을 처음 봤는데, 인상이 좋다. 과묵한 모습이 빈말하지 않고 진실 돼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상가에서 정 후보의 선거 유세를 지켜본 A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과 어울리기엔 좀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다가서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캠프 측은 “정 후보가 원래 쇼맨십을 싫어하고,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라고 항변했다. 이수희 대변인은 이날 서울 여의도 용산빌딩에 위치한 캠프에서 기자와 만나 “시각의 차이다. 정 후보가 국물까지 다 마실 정도로 설렁탕을 좋아하는데, 이 모습을 갖고도 말이 많다. 어떤 사람은 소탈하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이 더 독하다고 말한다”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줬으면 좋겠다. (정 후보와) 안면이 있으면 더없이 편하고 좋은데, 부끄럼이 많아서 다소 오해를 산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정 후보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이 화두에 오르자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점검하며 민심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넘어설 수 없는 벽과 같았다. “힘들긴 하다”는 게 이 대변인의 솔직한 심정이다. 시장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여당의 평가는 냉정했다. 정 후보를 지지하는 상인들조차 “당선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잡곡을 판매하는 70대 할머니와 주변 이웃분들은 “세월호 참사가 정 후보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고 반문하면서도 “(박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많이 나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침개를 판매하는 50대 부부는 정 후보에게 “큰일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부가 말하는 큰일이란 무엇일까. 다음은 부부가 기자에게 말한 내용이다.

“큰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국민을 잘 섬기는 게 큰일 아닙니까. 정 후보가 워낙 (돈이 많이) 있는 분이다 보니 솔직히 어떨진 모르겠어요. 서민들과 생활수준이 다르니까. 말씀으론 ‘서민시장’이라고 강조하는데, 그 말이 보이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진심이길 바래요. 그것은 여야를 떠나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마찬가지겠죠.”

이어진 앵그리맘(성난 엄마들)의 울분이다.

“국민들이 서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세요. 서민들이 배를 타고 가지, 돈 있는 분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겠습니까. 그 배에 고위층 자제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됐겠습니까. 뉴스로 지켜보는 우리도 이렇게 답답한데 당사자들은 오죽하겠냐 말이죠. 저희도 또래의 자식들이 있는데, 세월호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요.”

▲ 강남권 표심 공략에 나선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셔츠에 가방을 멘 채 나타난 그는 도보를 걸으며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이른바 ‘나홀로 배낭 유세’다. 시민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서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 셔츠에 가방 멘 박원순, 농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톡톡

정몽준 후보가 강북 지역에서 기대만큼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과 달리 박원순 후보는 강남 지역에서 생각지 못한 인기에 깜짝 놀랐다. 정 후보보다 훨씬 앞선 지지율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실제 박 후보가 나타난 강남역, 역삼역, 삼성역, 신천역, 잠실역에선 시민들의 사진촬영과 사인 요청이 이어졌고, 박 후보는 그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즐겁게 응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신천역 인근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반응이다. 다른 지역은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이 많아 실거주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반면 송파구에서 만난 상인들은 실거주자이기 때문에 ‘진짜’ 강남구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두 번째 방문이라 박 후보와 상인들의 소통이 수월했다고 볼 수 있지만 “호응이 뜨거웠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박 후보의 등장으로 시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지난번에 인사했었죠?”라고 묻는 박 후보의 말에 상인들은 박수를 치며 “맞다. 기억한다”고 답하며 좋아했다. 상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박 후보 곁으로 모여들었다. 박 후보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인사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시민들도 많았다.

박 후보와 사진촬영을 한 40대 여성은 “이제는 당보다 인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정 후보가 대기업을 경영하고 큰일을 해낸 것은 알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시장은 박 후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간 보여줬던 묵묵한 시정 활동에 신뢰가 생겼다는 것. 그는 “거대 공약을 내세워 앞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묵묵하게 시정 활동을 하면서 후처리에도 신경쓰는 세심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 박 후보 측은 강남권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강남에 직장을 둔 다른 지역 유권자들이 많아 표심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박 후보의 소탈한 모습과 특유의 친화력까지 발휘되자 시민들의 환호는 더욱 커졌다. 30대 B씨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모습을 봐라. 어느 누가 서울시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고 반문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말을 건네며 관심을 가져줬다. 실제로 만나서 반갑기도 하지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감격했다.

이와 관련, 박 후보의 강남권 유세 현장을 찾은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박 후보를 반기고 좋아해주시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좋아해주셨다. 여권 강세 지역으로 불리는 대치동 은마상가 앞에서도 ‘적어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박 후보가 지난 2년7개월 동안 보여준 시정에 대해 인정받고,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라고 생각돼 뿌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정작 박 후보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박 후보의 유세 현장을 동행하는 한 측근은 “이동 차량에서 박 후보에게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더니 오해해선 안 된다고 하더라. 환호해준 시민들 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후보가 냉철한 부분이 있다”면서 “현재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낙관적으로 보기 보단 아직은 반신반의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반신반의 속에서도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23일 중앙일보가 한국갤럽과 함께 실시한 서울·경기·인천·부산·충북·강원지역 1,600명의 여론조사 결과(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5%포인트) 박 후보는 53.5%의 지지율을 얻어 정 후보(34.4%)를 19.1%포인트 앞섰다. 한발 앞선 박 후보와 쫓아가기 바쁜 정 후보. 두 후보 중 누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오는 6월4일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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