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공개 발표현장서 고성 지르고 난동… 인니, 결국 입찰 전면 무효화
입찰 통과한 대림산업 계약 날려… 국가간 경제협력 사업서 망신살

▲ 현대건설과 동부건설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중인 ‘Karian 다목적 댐 사업(이하 까리안 댐 건설사업)’에 입찰금지 조치돼 주목되고 있다. 사진 우측은 수출입은행이 인도네시아 측에 보낸 공문으로, 현대건설과 동부건설에 대해 내년 1월 16일까지 입찰참여를 전면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현대건설과 동부건설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중인 ‘Karian 다목적 댐 사업(이하 까리안 댐 건설사업)’에 입찰이 전면 금지돼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조치는 발주처인 인도네시아 측이 직접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된다. 도대체 인도네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사위크>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까리안 댐 건설사업’과 관련, 이들 건설사의 ‘충격적 행태’를 2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 자국기업인 대림산업 상대로 입찰방해 

‘까리안 댐 건설사업’은 자카르타 서부 지역의 주민들과 농경지에 맑은 물을 공급하는 대규모 다목적댐 건설 공사로, 지난 2012년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이 경제협력 차원에서 협의한 ‘한-인니, 산업·인프라 등 10대 협력과제’ 프로젝트 중 하나다.

국내 대외경제협력기금(이하 EDCF)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는 까리안 댐 건설사업은 인도네시아에서 주관(발주)하지만, 재원은 우리 쪽에서 지원하는 형태다. 통상 EDCF 지원사업의 경우, 발주처(현지 국가)가 주관하고 한국 기업들이 경쟁 입찰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EDCF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까리안 댐 건설사업은 총 2조원 규모로, EDCF 지원 규모는 1조원에 달한다.

까리안 댐 건설사업에는 현대건설(현대건설-Brantas Abipraya 컨소시엄), 동부건설(동부건설-PT.PP 컨소시엄), 대림산업(대림산업-Wika 컨소시엄)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현지 업체와 각각 컨소시엄을 맺고 입찰에 참여했다.

업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까리안 댐 건설사업의 입찰은 사전적격심사(PQ)→기술평가→가격공개 순으로 진행된다. 입찰과정 중 기술평가를 통과한 업체에 한해 가격공개가 이뤄지는데, 사실상 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으로 간주돼 더 이상의 입찰 프로세스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평가에서 통과했다’는 의미는 결국 ‘사업을 수주했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하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 같은 ‘기술평가’ 과정에서다. 입찰에 참여한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하게 ‘대림산업’만 기술평가를 통과했는데, 이를 두고 현대건설 등이 “입찰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강하게 이의제기를 하고 나선 것.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기술평가 이후 절차인 ‘가격공개’는 지난해 9월 16일 진행됐다. 이날 인도네시아 측은 기술평가를 통과한 업체, 즉 ‘대림산업’만 단독으로 초청해 가격공개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 현장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까지 방문했다. 현대건설과 동부건설 등 입찰에 탈락한 건설사 관계자들이 가격공개 발표 장소에 찾아온 것인데, 당시 현장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현장에서 고성을 지르고 “입찰을 무효화시켜야 한다”며 난동을 부렸다.

▲ 수출입은행이 인도네시아 측에 보낸 공문.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ECDF 사업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제재를 받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수출입은행 공문 담당자의 서명은 모자이크 처리함)
참다못한 사업주(발주처) 측에서 “초청받지 않은 업체는 나가달라”고 수십차례 경고했지만, 현대건설 등은 불응했고 이에 따라 오전에 예정돼 있던 이날 회의는 늦은 오후까지 지연되게 됐다.

결국 발주처인 인도네시아 공공사업부는 입찰을 원천 무효화하고 한국 측에 현대건설 등의 행태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측은 가격발표 당일에 있었던 이들 건설사의 행동을 지적하며, “현대건설 등이 입찰 과정에서 허위서류를 제출하는 등 입찰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 같은 내용은 ‘Jakarta Post’ ‘Bisnis Indonesia’ ‘Jakarta Globe’ 등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카리안 댐 시공낙찰 발표가 탈락 업체가 제기한 입찰 과정의 불공정 관련 문제로 지연되는 상황”이라면서 “낙찰 관련 건설관리청(BPK)의 Herdiyanto W Husaini 청장은 해당 프로젝트가 1억불 규모의 한국정부 자금을 지원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찰 규정에 따라 진행되었으나, 불확실한 증인 서명과 입찰 초청 제안과 같이 인도네시아의 입찰 절차에 맞지 않는 사항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 현대·동부건설 “기술평가 탈락 이유에 대해 설명 요구했을 뿐, 입찰방해 사실 아니다”

결국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 공문을 통해 “현대건설과 동부건설에 대해 10월 16일부터 2015년 1월 15일까지 3개월간 EDCF 사업 입찰참가를 금지시키겠다”는 내용을 통보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ECDF 사업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제재를 받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유권해석에 따라 현대건설 등은 다른 EDCF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입찰참여가 전면 금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입찰 방해했다거나 물리적인 방해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발주처(인도네시아)에서 입찰방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현대건설) 쪽은 그런 사실이 없다. 단지 기술평가에서 탈락한 이유를 문의했던 것 뿐이다. 원래 기술평가에서 탈락하면 그 사유를 설명하도록 돼 있는데, 발주처가 이런 절차도 없이 곧바로 ‘가격공개’를 진행하려고 해 지난해 9월 16일 가격공개 발표장소를 방문한 것 뿐이다. 현장에서 고성과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주처의 주장처럼 현대건설이 입찰서류에 내용을 허위기재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면서도  “해당 사업은 1억불 미만의 사업으로, 현대건설 전체 매출로 보자면 매우 미미한 사업이다. 사실상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동부건설도 같은 설명이다. 동부건설 측은 “기술평가에서 탈락하게 되면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설명(디브리핑)하게 돼 있는데, 발주처 측은 이에 대한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탈락 통보만 했다”면서 “기술평가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가격발표장소를 찾은 것으로, 고성을 질렀다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없었다. 국제 입찰에서 그런 일이 말이 되는가”라고 일축했다. 

현재 까리안 댐 건설사업은 재입찰을 진행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달 13일 까리안 댐 건설사업 관련 공고를 다시 내고 사전적격심사(PQ) 접수 절차를 밟고 있다. 재입찰에 다시 도전하는 대림산업은 앞선 입찰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만큼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자국기업 간 벌어진 ‘추태’를 놓고, 현지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이미지 회복이 가능할 지에 대해선 우려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대림산업 한 관계자는 “당시 사건으로 해당 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된 것은 물론, 대림 입장에선 작년 연말 본계약 체결을 목전에 두고 대형사업을 날린 셈”이라면서 “해당 사업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양국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결과적으로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행태는 한국 건설사들의 대외 이미지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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