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한국작가회의가 마련한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가 열렸다.
[시사위크=강해경 기자]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으며 “날이 많이 춥죠?”라는 말을 인사대신 건네곤 했다.

그렇게 길었던 겨울이 가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따뜻한 봄이 결국 왔다. 지난주부터 서울 영등포 여의도에는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봄꽃만큼이나 밝고 가벼운 옷을 입고 다시 찾아온 봄을 만끽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 우리에게 4월은 비극적이고, 잔인하다. 여기저기 꽃이 만개하고 사람들의 옷도 얇아지는데 어쩐지 마음은 무겁다. 허은실 시인은 <이름을 짓지 못한 시>에서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슬픈 봄,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우리에게 왔다.

 ▲ 오전에 찾는 광화문 광장은 북적이는 거리와는 달리 광화문 광장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 “봄은 돌아왔지만…”

광화문 광장을 찾은 지난 15일은 세월호가 출항한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높은 빌딩 숲에선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화문 사거리는 신호에 맞춰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엉킨 차량들이 영락없는 도시의 풍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세월호 참사 분향소는 외딴 섬이었다. 북적이는 거리와는 달리 광화문 광장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을 쪼개 분향소를 찾지 않겠나 싶었던 예상은 텅 빈 광장 앞에서 처참히 깨졌다. 광화문 일대를 지나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 테지만, 광화문 광장엔 노란 깃발만 쓸쓸히 펄럭이고 있었다.

 ▲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
 ▲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운동을 촉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이따금씩 서명을 호소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서명에 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광화문 광장의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분향을 위해 길게 줄을 섰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서명을 요청하는 사람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날따라 더 빠르고 차갑게 느껴졌다.

 ▲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는 엄마부대, 호소가 아니라 폭력 같던 그들의 목소리는 텅 빈 광화문 광장을 더욱 허망하게 만들었다.
노란 천막 사이로 흐르는 정적에 씁쓸함을 느낄 무렵, 갑자기 광화문광장 맞은편 도로가 시끄러워 졌다. 급히 눈길이 향한 그곳에서는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제 그만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세월호사고 유족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소가 아니라 폭력 같던 그들의 목소리는 텅 빈 광화문 광장을 더욱 허망하게 만들었다.

 ▲ 광화문 광장 뒤편에 마련돼있는 '아이들의 방 사진전' <빈 방>
▲ '아이들의 방 사진전'에 붙여진 사진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향하자 소박하게 마련된 ‘아이들의 방 사진전’이 발길을 잡아 끌었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다 벌컥 벌컥 들어오는 엄마에게 “노크 좀 하고 들어와!”라고 한바탕 싸우던 그 방. 수학여행 다녀오면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2등에 도전해보겠다는 2반 동영이, 아이들이 좋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윤민이, 심리학자가 돼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잘 살펴주겠다던 건우…. 부모님과 신경전을 하고, 다이어리나 편지에 장래희망을 적던 지극히 평범했던 그 방은 이제 빈 방이 되어 광화문 광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 “언니, 오빠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광화문 광장엔 이따금씩 바람이 불었다. 봄꽃 축제가 한창인 4월 중순이지만, 이날 날씨는 유독 스산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점심시간과는 조금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개성 넘치는 대학생들 등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속속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또한, 손을 꼭 잡고 방문한 젊은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 고등학생들이 실종자들이 빨리돌아오기를 바라는 글귀를 소원지에 적고있다.

차분히 분향을 마친 한 50대 남성은 “여의도에서 일하는데,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광화문에 온 김에 같이 분향하고 가자고 해서 왔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학교를 마치고 왔다는 고등학생들은 “언니, 오빠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글귀를 소원지에 적어 내려갔다.

혼자 광화문을 찾았다고 밝힌 한 중년 여성은 “제사도 원래 전날 밤에 맞춰서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 찾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윗사람들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앞으로를 생각하면 막막하다”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나란히 머리를 물들인 두 여대생은 “마침 오늘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기도 하고, 오늘이 덜 붐빌 것 같아서 찾아왔다”며 “반드시 인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문화제 시작이 가까워지자 노란리본과고리를 만드는 봉사자들의 손도 분주해져갔다.

해가 더 저물자 차가우리만큼 빨랐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서명운동 앞에 멈춰섰고 노란리본과 고리를 만드는 봉사자들의 손도 분주해져갔다.

날이 더 어두워지고 여기저기서 조명이 밝혀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날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는 한국작가회의가 마련한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가 예정돼있었다.

 ▲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열린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다시 마주한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진실

오후 7시. 록밴드 폰부스(Phonebooth)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 <파도에 꽃들>을 부르며 문화제가 시작됐다.

밴드의 공연이 끝나자 영상이 켜졌다. 세월호 안에서 “살고 싶다”, “지금 물에 잠기고 있다”고 절규하는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이 학생은 “마지막으로 나의 라임을 뽐내겠어”라며 자신의 처한 상황을 랩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랩을 하는 중간 중간에 ‘쿵’하는 소리와 배가 기울어지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영상은 종료됐다. 광화문 광장은 더욱 숙연해졌다. 우리는 다시 광화문에서 작년 4월 16일과 극명하게 마주했다.

 
 ▲ 문화제 1부에서는 고(故) 정지아 학생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와 지아엄마 지영희씨 답장이 소개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두고 일찍 가면 안돼~ 사랑해.”

이윽고 고(故) 정지아 학생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가 소개됐다. 엄마 없인 아무것도 한다던 지아는, 엄마 생일선물로 준비한 스케치북 편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별이 됐다.

“친구 손 꼭 잡고 외로워 말고 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사랑해 딸내미, 꿈속에서 만나자.”

 ▲ 아이들의 편지와 시인들 시 낭송이 이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보였다.
김선향 시인이 대신 읽은 지아 엄마인 지영희 씨가 딸에게 보내는 답장 낭독이 끝나자 곳곳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현장을 찍던 휴대폰 카메라 화면도 덩달아 뿌옇게 변했다.

 ▲희생된 이건계 군의 음성을 빌어 <녹색편지>를 낭송하고 있는 도종환 시인
희생자 부모의 답장에 이어 선생님, 도종환 시인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편지와 시 낭송도 이어졌다. 교사 하윤옥 씨는 <이 예쁜 봄날>에서 “기다림마저 잃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마”라며 세월호 참사에 희생, 실종된 아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이어서 도종환 시인(이하 도 시인)은 <녹색편지>를 낭독했다. <녹색편지>는 ‘치유공간 이웃’이 참사에 희생된 학생의 생일을 기념해 시인이 학생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는 편지다. 이번 추모식에서 도 시인은 희생된 이건계 군의 음성을 빌어 엄마와 아빠, 누나에게 편지를 띄웠다.

3부에서는 열 두명 작가들의 낭송 릴레이가 이어졌다. 시인 이영주, 신용목, 이지호, 허은실, 박일환, 김사인, 하명희, 김요아킴, 나종영, 안오일, 김해자, 소설가 신혜진, 하명희 등이 진실을 밝히자는 결의와 함께 싸우겠다는 약속을 시와 산문을 통해 다짐했다. 4부에서 낭송한 나해철 시인의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에서도 그 다짐과 결의를 찾을 수 있었다.

 ▲ 문화제가 끝나고 시민들이 소원지를 태우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실종자들이 조속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이어 노래하는 나들의 공연과 성명서 낭독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날 하루 동안 시민들이 적은 소원문을 소지하며 세월호 희생자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실을 밝히는 일, 그것은 죽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자 애도요, 언제나 그 배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의 간절함이다. 차가운 바다에 그들이 갇힌지 꼬박 1년. 시민들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애도와 간절함을 담은 소원문을 불태우며 어두운 밤 작은 불꽃을 피웠다.

 ▲ 분향소로 향하는 많은 시민들.
시민들은 이 작은 불꽃을 국화꽃에 담아 분향소로 향했다. 분향소 앞에는 오랜만에 긴 줄이 늘어섰다. 이 긴 줄을 따라 우리들의 진심이, 참사에 대한 진실이 저 어두운 바다와 저 높은 하늘에 닿기를. 그리고 그들도, 우리도 이 따뜻하고 아픈 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광화문=강해경·권정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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