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9일 치러지는 재보선을 앞두고 후보들간의 선거전이 치열하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거 유세를 했던 지역’, ‘야권의 자존심’

오는 29일 재보선이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관악을은 1988년 이래 27년간 단 한 번도 새누리당에 국회의석을 허용치 않았던 금여(禁輿)의 지역이었다. 그런데 야권에 충성스러웠던 관악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번은 한 번 바꿔봐야 하지 않겠냐’는 여권 지지층의 결집도가 상당했다. 야당의 텃밭에 여당의 맹공이 성공할 수 있을 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관악을의 팽팽한 분위기는 지난 1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나란히 관악을을 찾으면서 더욱 가열됐다. 김 대표는 오신환 후보를 돕기 위해 금요일 퇴근길 인사차 관악을 찾았고, 문 대표는 오전부터 관악에 머물며 정태호 후보를 지원사격 했다. 관악을 돌며 유권자들과 만남을 이어간 문 대표는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삼성동 고시촌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 ‘야당이 해준 게 뭐냐’ 여권 결집에 성공한 오신환

먼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는 점이 특별했다. 이번에는 한 번 바꿔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관악 지역 곳곳에서 이런 목소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난곡 4거리 근처에서 만난 한모(55) 씨는 “야당이 30년 가까이 했는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경전철 얘기만 몇 번을 우려먹는지 모르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에 서운한 감정을 내비췄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오신환 후보가 유권자들과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관악에 20년 거주하며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김모(61) 씨는 “새누리당을 취재하는 것이라면 택시비도 받지 않겠다. 이번에 한 번 시켜보고 제대로 약속 못 지키면 내년에 다시 선거하면 되지 않느냐. 새누리당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써 달라”고까지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충성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고시촌이 있는 대학동 상인들을 중심으로도 이런 목소리가 높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새정치연합이 사법시험도 폐지해서 이 지역 상권이 다 죽었다.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줄이 몇십 미터까지 이어졌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대학동은 사법시험 열풍이 있던 2000년대 초반 황금기를 맞았다. 미니원룸은 예약을 해야 할 정도였고, 수많은 고시생들로 넘쳐나 상가는 활기를 띄었다. 현재는 경찰공무원, 노무사 시험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빈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게 지역 여론이다.

더구나 이 지역에서 5선을 역임했던 이해찬 의원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20년을 있으면서 해준 것도 없이 세종시로 훌쩍 가버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돈다. 사법시험 폐지로 지역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 데 자기만 정치적으로 성장해서 좋은 데 갔다”고 성토했다.

바꿔보자는 지지층들의 목소리는 일치했지만, 오신환 후보가 가진 한계도 있었다. 삼성동에서 헬스클럽을 30년 가까이 운영 중인 안모(62) 씨는 “이 지역은 호남사람들도 많고 젊은 층들이 엄청나게 많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일곱은 야당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라면서 “아무래도 야당지지층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오 후보에는 악재다. 퇴근길 인사를 하는 김 대표와 오 후보를 피해 멀찍이 돌아가던 한 젊은 직장인은 “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데, 이런 검은 돈 거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새누리당에 불신만 높아진다”며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었는데, 꼭 투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 야권 지지층의 마음은 누구에게 결집될까

여권이 결집된 데 반해, 야권의 민심은 분분했다. 정태호 후보와 정동영 후보 사이에서 호남민심이 갈렸고 특히 각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지지층을 결집할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말로 풀이할 수도 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정태호 후보가 '미생' 촬영지였던 대학동 유가네 앞에서 젊은 유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원룸을 운영하며 호남향우회 활동도 하고 있다는 김모(68) 씨는 “김희철 후보가 호남사람이면서 향우회랑 접촉이 많았는데, 경선에서 논란 끝에 지면서 뒷말이 많다”며 “친노에 대해 성토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새정치연합에 다들 애정이 있어서 욕을 한다. 아예 돌아섰다고 보도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고 향우회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젊은층들의 문재인 대표를 향한 지지도 뜨거웠다. 삼성동 고시촌에서 유권자들과 만난 문 대표는 1미터를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다가와 사진촬영을 요구한 것. 사진촬영을 마친 사람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문 대표와 덕담을 나눴다. 젊은층 유권자들의 문 대표를 향한 뜨거운 지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다만 문 대표에 대한 지지가 정태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행정고시 준비를 위해 5년을 고시촌에 살고 있다는 김모(31) 씨는 “이 지역에 사는 남자들의 경우 예비군 등을 이유로 주소지 이전을 하지만, 여자들은 주소이전을 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남자들도 결국은 이 지역을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지역선거에는 관심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한편 관악을 선거에서 최대 변수로 떠오른 정동영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뜨뜻미지근 했다. 오히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가장 피해자가 정 후보인 모양새였다.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정모(35) 씨는 “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정동영 후보가 주목받을 텐데, 성완종 파문으로 주위에서 다 여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만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자신을 전북출신이라고 밝힌 한 유권자도 “정동영이랑 천정배가 오죽 막다른 길에 몰렸으면 이렇게 출마했겠느냐”며 “정동영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들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야권을 심판하고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 친노가 잘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닌데…, 정동영 한 명 된다고 정치가 크게 달라지겠나”라고 뒷말을 흐렸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