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지난 2월16일 퇴임 이후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변호사 사무실 개업 대신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대외적 행보보단 교회를 다니면서 쌍둥이 손주들을 돌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시사위크|성남=소미연 기자] 다시 만난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왼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정 전 총리는 주일을 맞은 26일, 어김없이 부인 최옥자 여사와 함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H교회를 찾았다. 정 전 총리가 H교회에 몸담은 지도 벌써 20여 년째. 그는 2년 전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도 교회 출석을 지켰다. 이후 총리 취임으로 여건상 교회를 찾지 못하다가 퇴임 이후 교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 낮은 행보 지속… 변호사 사무실 개업 대신 봉사활동 계획

정 전 총리의 등장에 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그때마다 정 전 총리는 “감사하다. 기도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총리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기자의 인사에도 정 전 총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휩싸인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난색을 표했다.

정 전 총리는 “적절치 못하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말하면 파급력만 키울 뿐”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이 총리의 사퇴 표명으로 불거진 ‘컴백설’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각종 패러디가 만들어지고,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자신에게 관심이 모아지는 것에 대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 전 총리는 “나도 패러디물을 여러 개 봤다”면서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그 패러디물로 인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고 위안을 얻는다면 나로서는 기쁜 일이고 만족한다”고 말했다.

퇴임 이후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정작 정 전 총리는 낮은 행보의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그가 지난 두 달 동안 보인 대외 활동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 방문과 고향인 경남 하동 주민들이 마련한 ‘고향 방문 환영행사’에 참석한 것이 전부다. 검사 경력을 살려 변호사 사무실을 내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전망과 달리 “앞으로 변호사 개업은 없다”는 게 정 전 총리의 각오다. “퇴임 후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 네티즌들이 1억원 패러디에 사용된 <시사위크>의 사진. 정홍원 전 총리는 해당 패러디물에 대해 “봤다. 대체 어디서 그런 사진이 나왔느냐”면서 궁금증을 나타낸 뒤 “나는 괜찮다. 국민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대신 정 전 총리는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다. 그는 “국정을 하면서 여러 가지 느꼈던 게 많았다”면서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봉사활동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 전 총리는 대외적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현재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얻고 있다. 관건은 시기다. 그는 “그간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두세 달은 쉬면서 몸을 추스른 다음 봉사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쌍둥이 손주들의 얼굴을 보는 게 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리의 외아들 정우준 검사 내외는 이달 초 쌍둥이를 출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정 전 총리는 이날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쌍둥이 손주 얘기에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 세월호 참사 1주기 하루 앞두고 안산행 “마음 아파 눈물만”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채의식은 여전했다. 앞서 정 전 총리는 재임 중이던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책임을 통감하며 사퇴를 밝힌 바 있다. 등 돌린 민심으로 사실상 최악의 불명예 퇴진이었다. 그러나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사퇴 표명 60일 만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유임이 결정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 수습에 매진하며 올해 2월16일 이완구 총리가 취임하기까지 2년 가까이 총리직을 수행했다. 정 전 총리로선 세월호 참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때문일까. 정 전 총리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다녀왔다.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이뤄 말할 수 없어서 눈물만 흘리고 왔다”면서 “이제는 아픔을 승화시켜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가가 변화하고 거듭나야 한다. 그것 외에는 길이 없다. 이를 위해 국민도, 가족들도 이해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면 빛이 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