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을 주주 결의에 부치는 임시 주주총회의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제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대통령선거 당선자 캠프 같다.”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승인을 위해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양재동 aT센터는 취재진과 주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한 주주는 몰려든 취재진들을 보며 “마치 대선 당선자 캠프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삼성물산 주주총회 현장은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번 주주총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드러내는 방증이었다.

◇ 수백명의 취재진과 주주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뜨거운 관심

이날 삼성물산 주주총회(이하 주총)는 600석 규모 5층 대회의실과 400석 규모 4층 중회의실에서 동시진행됐다. 이날 주총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감안해 주주들을 위한 좌석규모를 늘린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주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140여석 규모의 4층 기자실은 주총이 시작되기 2시간 전인 오전 7시경 이미 만석을 이뤘다. 이날 주총장을 찾은 취재진은 300여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총이 시작되기 앞서, 1층 로비에서는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의 1인시위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을 ‘삼성 족벌 불법 승계를 원천봉쇄하는 특별위원회’라고 밝힌 남성은 “국민연금공단이 같은 처지 주주들 이익에 반하는 삼성 돕기가 웬 말이냐”라고 고함쳤다.

▲ ▲ 초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가 17일 오전 9시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주주총회 현장에는 수백명의 취재진(사진 위,아래)과 주주들(사진 아래 우측)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드러냈다.
한참동안 진행된 1인시위는 8시 10분경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현장 도착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무리됐다. 주총 현장에 도착한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은 ‘제일모직과의 합병 여부를 결정할 주총에 임하는 각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주들에게 달렸다”고 짤막하게 답했고, 뒤이어 도착한 김신 삼성물산 사장 역시 “생각보다 많은 소액주주들이 찬성해주셨다”면서 “국내외 주주들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주총장으로 향했다.

개회는 9시로 예정됐지만, 시계바늘이 이를 훌쩍 넘길 때까지도 주총은 시작되지 못했다. 입구에 마련된 접수처에서 위임장 확인에 시간 걸리면서 주주들이 미처 입장을 다 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주총 개회를 기다리고 있던 일부 주주들은 “빨리 진행하라”며 욕설과 함께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주주는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다”고 발언해 주주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는 주주들의 긴장된 열기는 소동과 고함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 터져 나온 속내들… 극도의 긴장감과 열기 속 주총

9시 35분.

드디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개회선언으로 주총이 본격 시작됐다.

▲ 이날 주주총회 개회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는 소액주주(좌측 마스크를 쓴 남성)가 1인 시위에 나서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날 주총 진행은 이사회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맡았다. 주총장 단상에는 최치훈 사장을 비롯한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 이영호 부사장 등 사내이사 3명과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현수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등 사외이사 4명이 자리했다.

주총 결의사항은 3가지다.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1안) △현물배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개정의 건(2안) △주총을 통해 중간배당을 하도록 결의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중간배당을 현물로도 할 수 있게 하는 정관 개정의 건(3안) 등이다. 합병승인의 건을 제외한 나머지 두개 의안은 엘리엇이 주주제안한 것이다.

초조함 속에 개회를 기다리던 주주들은 ‘주주발언’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갑론을박 팽팽한 설전이 오갔고, 고함과 삿대질이 난무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주발언에서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는 한 주주는 “언론보도에서는 주가가 다 오른다고 하는데, 합병이 성사되면 주가가 오른다는 보장이 어딨느냐”면서 “삼성물산 지분을 7%나 가진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합병에 반대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찬성의사를 표시한 주주는 “애국심으로 찬성표를 던지기는 하지만 삼성 경영진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속내는 합병에 반대하지만, 울며겨자먹기로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는 의미였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다른 주주는 “찬 밥 더운 밥 가릴 게 없다. 돈 되는 사업을 해야 한다”면서 “합병에 적극 찬성한다”고 발언했다.

특히 엘리엇 법률대리인은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 위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엘리엇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넥서스의 최영익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 위임에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면서 “이건희 회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주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은 언제, 어떻게 위임된 것인지 밝혀 달라. 이번 합병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의사를 정확히 확인했는지, 대리행사에 법적 문제는 없는지 말해 달라”고 언급했다.

▲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가 투표 용지를 보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제공)
이에 대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이건희 회장은 과거에 의결권 행사를 포괄적으로 위임해놨으며 이에 따라 삼성물산 정기주총과 본건 합병승인을 위한 임시주총에도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의결권이 행사될 예정”이라면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주주발언이 팽팽하게 엇갈리면서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표결 진행 선언으로 논쟁을 매듭지었다.

◇ 69.53% 압도적 찬성… 박수와 환호

검표 과정 역시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검표에는 주주대표를 비롯해 삼성물산과 합병을 반대해 온 엘리엇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사안이 민감한 만큼 법원 검사인이 검표에 참석하는 이례적인 풍경도 펼쳐졌다.

검표에 착수한 지 1시간여가 지난 오후 12시 45분. 마침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마이크를 잡고 투표결과를 발표했다. 주총이 시작된 지 3시간여만이다.

“주총에 참석한 주주님 중 1안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에는 1억3,235만5,800주가 투표에 참여하여 원안에 찬성하는 주식수는 총 9,202만3,660주, 69.53%로 집계되었습니다. 표결결과 제1안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은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2/3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1/3 이상의 찬성으로 원안으로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사진 좌측 아래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이날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에 대한 사회자의 설명을 TV 앞에 모여 듣고 있는 모습(사진=삼성물산 제공)

전체 주주 11만263명 중 553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석 주식수는 전체의 84.73%, 이중 69.53%가 양사 합병을 찬성하면서 합병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로써 삼성과 엘리엇의 50여일간의 합병진통은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합병 승인이 선언되자 주총장에선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기자실에 비치된 모니터를 통해 주총 과정을 지켜본 취재진 사이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예상을 초과한 찬성률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초 기자들 사이에선 합병승인에 무게를 두면서도 찬성률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한편 이날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의 요청으로 상정된 현물배당 정관 개정과 중간배당 결의 정관 개정 등의 2개 안건은 참석자의 2/3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임시 주주총회 직후 기자실에 방문해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면서 “기업설명회을 다니면서 반대해주신 많은 분들을 많이 봤다“며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지적한 부분들은 고쳐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69.53%의 찬성률로 제일모직과 합병안이 승인됐다. 사진 우측은 주총이 끝난 후 삼성물산 주주들이 주총장을 빠져 나가고 있는 모습.
주총이 끝나고 회의실을 가득 메웠던 주주들은 썰물처럼 일순간에 빠져나갔다. 주주들의 표정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장의 손해보다 향후 이익을 따졌기 때문이다. 주주로서 ‘이익’을 택한 것이지만, 삼성 입장에선 소액주주들이 ‘미래’를 결정해준 셈이다. 앞으로 삼성이 소액주주들에게 한 약속을 어떻게 보답할 지 지켜볼 생각이다.”

이날 주총에 대한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주주가 남긴 답이다. 50여일간의 합병 진통은 끝났지만, 삼성 입장에서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음을 시사하는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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