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다운’의 김동빈 감독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사진=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세월호 참사 2주기를 20여일 앞둔 지난 2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다운’의 김동빈 감독을 만났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의 김동빈 감독의 첫 인상은 마치 자유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김동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의 순수함과 진지함의 절묘함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고, 우리나라 문제점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는 4월 16일은 수학여행으로 들떠있던 단원고 학생들이 비극을 맞는 날이다. 세월호 사고는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당시 세월호에는 여러 사연을 담은 476명의 사람들이 탑승했다. 이 날 오전 8시 49분부터 101분동안 배는 점차 기울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나가야하는 순간임을 직시했음에도 “기다리라”는 선장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선장의 말을 따른 결과, 476명의 승객들 중 172명만이 구조됐다. 269명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35명은 실종상태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밝혀진 세월호의 충격적인 실태에 국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어느 하나 규칙에 맞게 실천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세월호는 승객을 평소에 6배 더 탑승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라 화물량은 운항관리규정이 정한 최대 화물 적재량의 1,077배 이상을 초과한 상태였다. 오히려 세월호는 그동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태였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업사이드다운’의 재미교포 출신 김동빈 감독은 그 누구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한 사회의 문제를 밝히기 위해 적극적이었으며 열정적이었다. 몸으로 부딪치며 영화 제작에 힘쓴 그의 모습이 인터뷰를 하는 내내 스케치하듯 그려졌다.

한편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오는 4월 14일 개봉 예정이다.

- 프로필을 통해 재미교포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온라인 뉴스로 처음 봤다. ‘생중계’라고 나오는 거였다. 그 때는 배가 넘어 가고 있던 때였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 영화화할 수 있는 많은 소재들 중 ‘세월호 사건’을 영화로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 언론에서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있었잖은가. 저 역시 해당 보도를 보고 ‘역시 모두 구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언론보도는 오보였다. 그 순간 언론에 충격을 좀 많이 받았고, 그렇다면 내가 뭔가를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일단 하고 있는 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거니까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온라인커뮤니티를 많이 찾아봤다. 어떠한 온라인커뮤니티가 있는지 알지 못해 찾은 온라인커뮤니티마다 영화 참여할 사람을 찾는 하나의 글을 커뮤니티게시판에 복사해 올렸다. 작성한 온라인커뮤니티 중에서 같이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능기부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 영화 제목을 ‘업사이드다운’이라고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업사이드다운’은 ‘뒤집히다’라는 뜻이다. 찾아보니 동명의 로맨스 영화가 있더라. 의도하지는 않았다(웃음). 배가 뒤집혔지만 저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기본적인 게 뒤집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업사이드다운’이라는 표현이 영화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제가 좋아하는 문학 멘토가 계셨는데 그 분이 세계 1차 대전 이야기를 하시면서 “정말 세계 1차 대전 이후는 업사이드다운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정말 ‘업사이드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김동빈 감독은 세월호 영화를 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사진=시사위크>
- 영화로 소셜펀딩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소셜펀딩은 사실 2014년 6월부터 했고, 저희 팀(프로젝트 투게더)은 4월 말에 결성됐다. 소셜펀딩을 하게 된 이유는 제작비 등을 내부에서 기부를 많이 했지만 같은 팀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고 돕고 싶지만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여를 못하는 사람 중에 우리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셜펀딩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게 됐다. 소셜펀딩을 ‘퀵스타터’에서 하고 한국에서 2번 진행하고 최근 배급을 위해서 한 번 더 진행했다. 저희는 약간 자랑 아닌 자랑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시민들이 기부하고 내부에서 모금했다. 팀원들 대부분이 많이 기부를 한 것 같다.”

- 영화 속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등장하던데 진선미 의원과 같은 전문가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프로젝트 투게더’라는 제작팀을 만들었다. 팀원들이 비전문가가 많다. 저랑 작가님이랑 음악감독님을 제외한 대부분은 영화나 방송을 만드는 것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었다.  대학생, 회사원처럼 영화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들과 어떻게 영화를 만들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취재팀을 하나 만들어서 작가님과 함께 취재를 보조하는 팀원들을 구성했다. 캐스팅은 전문가들에게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며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사전연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캐스팅 과정에선 전문가들이 협조를 잘 안해주는 게 어려웠다. 해경이나 청해진이나 진도 관제탑등은 협조를 안해줬다. 영화 속 진선미 의원님이 계신데, 그 분의 의견을 듣고 나서 새누리당 의원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했다. 저희는 최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라는 의도로 연락을 취했는데 해외 연수를 갔거나 사무실에 없다고 하더라. 그게 좀 아쉬웠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 많은 상처를 가지고 계신 유가족분들에게 인터뷰 제의를 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처음에 유가족분들을 만났을 때는 인터뷰를 안했고,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다는 취지만 말씀을 드렸다. 유가족분들에게 마지막에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를 해야지 영화가 완성이 되지 않겠냐’ 장난식으로 부탁을 드렸다. 유가족분들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더라. 그래서 두 분은 집안에서 촬영했고 다른 두 분은 야외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 많은 유가족분들 중에서 네 분만 선정된 이유가 있나.

“우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인터뷰를 한 분이 성빈아버지이신데 그 분의 소개를 받아서 네 분이 됐다. 네 명의 아버지들이 다양한 가족을 꾸리고 계신 분들이다. 우리가 유가족, 희생자라고 말을 하면 개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닌 두루뭉술한 의미잖은가. 저는 아이들의 삶도 개개인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아버지들의 이야기도 한 아버지 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 영화를 제작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개인적인 것은 국회에 가서 분리수거를 많이 한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농성을 시작했을 시기에 바로 한국에 도착해서 그 때 같이 노숙을 했다. 이 당시 촬영보다는 부모님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돼 카메라를 더 많이 안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부모님들이 정말 친해지고 신뢰하게 되었을 때 카메라를 들고 찍으라고 할 정도로 먼저 그들과의 관계에 노력을 했다.
또 촬영기간이 굉장히 짧았고, 한 달 반 밖에 안됐는데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 달 반 동안 어떻게 이걸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국회에 머물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 국회에 좀 머물러야겠다고 팀원들에게 말을 했기 때문에 일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살인적으로 스케줄을 좀 몰았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4개의 인터뷰를 하고 바로 대전 내려가서 2개하고 그 다음 바로 여수에 가고 바로 부산가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세월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드러난 것 같다. 그래서 세월호를 생각할 때 ‘그들의 문제’라는 인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론문제도 있고 안전문제도 있지 않는가. 더 이상 사람들이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외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외면하더라. 이 영화가 계기가 돼서 정말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는 이 영화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문구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메르스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삽입한 게 반복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넣은 거다.
이 영화를 통해서 사회를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세월호를 적대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픔으로 안고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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