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묘소에 놓인 추모조형물.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강원도 태백에서 흘러온 남한강과 북한 땅인 강원도 금강에서 흘러온 북한강은 두물머리에서 마침내 한강으로 합쳐진다. 두물머리가 위치한 양평 양수리는 ‘서울의 젖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은 강과 산이 어우러진 평온한 풍광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멋진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양수리에 잠들어있다. 형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등 현대가(家)의 선영은 경기도 하남이지만, 정세영 명예회장은 이곳에 묻혔다. 수상스키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수상스포츠 마니아였던 그가 평소 취미생활을 즐기던 북한강변을 일찌감치 점찍어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의 묘소는 양평이 시작되는 양수대교를 지나 양수역 뒤편 작은 고개를 넘은 뒤, 북한강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두물머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일반인이 봐도 명당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위치다.

▲ 정세영 명예회장 추모조형물의 뒷모습. 그의 별명인 '포니'가 눈에 띈다.
◇ 시작부터 불법… 10년 뒤엔 또 불법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이 묘소는 사실 불법투성이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지가 위치한 지역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개발은 물론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 지역이 아름다운 풍광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묘소 역시 아무나 조성할 수 없다. 1975년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한 주민만 제한적으로 묘지 조성이 가능하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물론 아들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관할당국인 양평군은 묘지가 조성된 2005년 이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벌금을 납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묘소는 그 자리를 지켰다. 원래대로라면 이장을 해야 하고, 이장을 하지 않을 시에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돼야 하지만 어떤 조치도 없었다. 양평군이 묵인 혹은 방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소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지난해다. 정몽규 회장은 아버지의 10주기를 맞아 묘소 주변을 대대적으로 단장하고, 10주기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묘소 바로 아래엔 화강암으로 된 대형 추모조형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 조형물 앞뒤엔 각각 정세영 명예회장과 포니가 조각됐고, 그가 남긴 어록도 새겨졌다. 또한 추모조형물 앞엔 보도블럭이 깔렸고, 뒤편은 화단과 계단으로 꾸며졌다. 진입로 역시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포장됐다. 평범한 야산이었던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소가 마치 추모공원처럼 잘 정돈된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이 같은 개발이 금지된 상수원보호구역이란 점이다. 심지어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소는 2005년에도 같은 이유로 벌금을 낸 바 있다. 불법을 인지하고도 이를 무시한 채 계속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불법을 인지한 양평군은 즉각 조사에 착수해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몽규 회장을 약식기소 했다.

▲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소는 10월까지 이장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 정몽규 회장의 빗나간 ‘사부곡’

하지만 정몽규 회장은 여전히 법을 무시하고 있다.

기자는 정세영 명예회장의 11주기를 이틀 앞둔 19일 그의 묘소를 찾았다. 그곳은 지난해 공개된 모습과는 다소 달라져있었다.

우선 묘소로 향하는 진입로는 포장이 아닌 돌길로 바뀌었다. 돌길 양 옆으로는 심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어린 소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대형 추모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추모조형물 앞은 보도블럭 대신 역시 어린 소나무들이 심어져있었다. 화단과 계단으로 꾸며졌던 뒤쪽도 마찬가지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추모조형물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양평군청 측은 “지난해 약식기소 이후 (보도블럭과 화단 등) 일부 철거가 이뤄진 것은 확인됐다”면서도 “추모조형물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철거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양평군청은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소에 대해 오는 10월까지 이장할 것을 명령한 상태다. 10월까지 이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역시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담당자에 따르면 정몽규 회장과 현대산업개발 측은 두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양평군청 관계자들은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추모조형물의 경우 그 크기에 따라 이행강제금이 산정되고, 묘소의 경우 500만원이 부과된다. 이행강제금은 1년에 두 차례까지 부과될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정몽규 회장에겐 다르다. 실제로 현재 양평군에는 이장을 하지 않아 이행강제금을 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추모조형물도 마찬가지다. 양평군청 관계자는 “추모비를 세우고, 그것 때문에 벌금까지 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측은 “원상복구 명령에 대해 일부 조치가 이뤄졌고, 추모조형물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장에 대해서는 “가족들이 결정할 일”이라며 전해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추모조형물 및 주변경관 조성의 불법 여부를 사전에 인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불법인지 알면서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정도경영’을 철학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의 묘소는 10년 넘게 정도를 벗어나 있다.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형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지금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기틀을 세웠다. 그가 선보인 최초의 국산자동차 ‘포니’는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현대가(家)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로 옮겼지만,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차는 물론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념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아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회사 경영은 물론 대한축구협회장을 겸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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