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기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이 공익제보자들의 처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으로, 흔히 ‘내부고발자’나 ‘공익제보자’ 불린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정부패와 비리가 드러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용기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과 보호는 처참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내부 고발 후, 신분이 노출돼 조직 내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각종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어서다. 지난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혹독한 현실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이에 <시사위크>에선 공익제보자 지원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의 이영기 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이영기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이 해고로 내몰리는 공익제보자들의 사례를 전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 호루라기재단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다. 어떤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올해로 출범 5년째를 맞고 있다. 공익제보자들 지원 목적으로 지난 2011년 말 출범했다. 주로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법률적 상담, 재정적 후원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공익제보자들을 분야별로 선정해 ‘호루라기상’도 수여하고 있다. 다만 재정이 넉넉한 게 아니다보니 물질적 지원에 한계가 있다.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는 정도다.”

- 그렇다면 공익제보자들은 어떤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나.
“가장 큰 고통은 사회적 냉대와 경제적 어려움이다. 익명성이 보장돼야 함에도 내부고발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부고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조직 내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왕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를 견디다 못해 회사를 나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유사 직종으로 취직을 하려고 해도, 소문이 돌아 취직이 어렵다. 일시적으로 취직이 됐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이 될 수가 없다. 이에 직장을 찾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다.”

- 그 중 가장 안타까움을 느낀 사례는 어떤 경우인가.
“가정 파탄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생계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아무래도 부부싸움에 잦아질 수밖에 없다. 갈등이 쌓이다보니 이혼까지 갔다. 스트레스로 정신적‧신체적 고통도 겪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2013년 재단 차원에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실태를 조사를 한 결과, 내부고발자의 50% 이상이 고발 이후 1년 동안 자살 충동 등 정신적·신체적 질환을 겪은 겻으로 나타났다. 그 고통이 오죽했으면 한 고발자는 ‘자식한테는 공익제보를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 정도로 응어리가 깊다.”

- 회사의 부당 징계나 해고에 맞서 법정 싸움을 벌이는 공익제보자들도 있는데. 
“힘겨운 일이다. 해고나 징계가 무효로 판명되기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소 몇 년씩 걸린다. 어떤 사람은 12년 간의 법률적인 투쟁을 거쳐서 명예가 회복된 사례도 있다. 기나긴 다툼 속에서 감당하는 경제적‧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 
“익명성 보장이 지켜지지 않는 게 가장 문제다. 현행법상 내부고발자의 익명성이 보장돼야 함에도 실제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감사실에다 고발을 한 뒤 곧바로 신분이 노출되는 경험을 겪었다는 사례도 많다. 최근에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제보자의 신원을 노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제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있을까.
“변호사를 통한 대리신고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시에서도 이와 같은 제도적인 장치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변호사가 익명으로 신고를 해서 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진행하는 방식이다. 국민권익위에서도 이 같은 대리신고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 이영기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이 국내 공익제보자들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 ‘내부고발’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는데.
“인식 개선 문제도 시급하다. 공익제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부고발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비리 문제는 내부고발이 아니고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는커녕 편견을 드리우고 있다.

심지어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조차도 이런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사법계 현업 종사자들 사이에선 그를 못마땅해 하는 시선이 있다." 

- 내부고발 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례도 있나.
“내부 고발 후 사회 개혁 운동에 뛰어든 인물도 있다. ‘군 부재자투표’ 관련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전 중위도 그 중  대표적인 사례다. 포스코 동반성장 실적 조작 비리를 폭로했던 정진극 씨도 공익제보자 활동 이력을 인정받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사례들이 많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 그렇다면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제도적인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나.
“지난 2011년부터 공익제보자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인 기반이 미흡하다. 우선 공익신고자 보호 대상이 너무 제한돼있다.

우리나라 법은 공익신고 범위를 국민 건강과 안전, 환경 등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국한시키고 있다. 여기에 관련 법률 279개를 적용시키고 있는데, 정작 제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형법상 배임이나 횡령 등 기업부패행위, 사립학교법 위반 등은 신고 대상에서 빠져있다. 이에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공익제보자들도 많은 실정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는 개별 법률로 열거할 것이 아니라, 포괄주의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예컨대 공익제보위원회를 만들어 각 사건을 심사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다. 심사를 통해 공익제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신고자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공익제보자에게 불이익을 가할 시 처분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 이영기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이 국내 공익제보자들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사회적 인식 개선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미디어와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육도 선행돼야 한다. 이에 호루라기 재단에선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육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진 일선 학교에선 이 같은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호루라기재단 차원에서 항후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에 목말라있는 공익제보자들도 많다. 공익제보자들을 모아 힐링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코자 한다. 아직은 재단의 재원이 많지 않아 다양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공익제보자들과 함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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