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가 자산관리종합계좌(ISA)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금융소비자원 제공>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올 한 해도 금융권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각 업권마다 굵직한 이슈가 강타했고 위기와 변화의 기로에 섰다. ‘금융개혁’ 일환으로 도입된 일부 제도와 상품이 각종 ‘잡음’을 내기도 했다. ‘국민 재산 불리기 상품’으로 불리며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 은행과 증권사들이 앞다퉈 출시한 ISA는 ‘만능통장’으로 불릴 정도로 기대가 컸지만, 깡통계좌 논란, 불완전판매, 수익률 공시 오류 등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신뢰가 추락했다. ISA에 대해 지난 22일 만난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관치금융 상품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고 꼬집었다. <시사위크>에선 그를 만나 ISA 비롯한 올해 주요 금융권 이슈를 되돌아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소비자들의 권익 보호 제도에 대해 말했다. <금융소비자원 제공>
-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된 지 9개월가량이 지났다. 초반의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어느새 시들해졌다. 가입자수는 줄고 수익률도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상품에 대한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제 혜택을 주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질적인 세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수수료 구조를 무시했다. ISA는 위험이 큰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익이 불안정하다. 여기에 금융사에게 수수료까지 물어주면 실질적인 세제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당국이 ISA 도입 전에 면밀한 검토를 했는지 의심스럽다.

제도가 급하게 추진되면서 후진적인 금융행태도 드러냈다. 인적․물적 시스템을 갖추는 데 금융사들의 준비 시간이 부족했고,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과당경쟁’, ‘직원 실적 압박’ 문제까지 나왔다. 그 결과 가입금액 1만원을 밑도는 이른바 ‘깡통계좌’가 150만개가 발생하는 상황까지 낳았다. ISA 제도는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 고객들의 ‘수수료’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씨티은행이 최근 소액 거래 잔액 고객에 한 해 계좌유지수수료를 신설키로 해 파장이 일고 있다.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수수료인 데다가, 비용 절감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도입 논리가 내세워지고 있는데.
“돈이 없는 고객층의 부담이 커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고객과 어린이, 고령층은 수수료에서 제외됐지만 1000만 원 이하 거래 잔액 고객들이 주로 일반 서민 고객들일 것이다. 고액자산가에만 혜택을 주고, 서민들에게는 수수료 부담을 주겠다는 꼴이 아니냐. 게다가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는 논리도 맞지 않다. 해외와 우리나라의 금융 문화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자금 거래에 있어, 금융사 시스템 의존도가 높다. 수수료 인상이 곧바로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관건은 다른 시중은행들이 ‘계좌유지수수료’ 신설에 동참할지다.
“시중은행들도 분위기를 엿보면서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간 한 곳이 수수료를 인상하면 우르르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 왔다. 올해도 각종 주요 금융거래 수수료를 일제히 올렸다. 한 곳씩마다 돌아가면서 특정한 수수료를 올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다만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번 계좌유지수수료는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 보험 분야에선 올 한 해 ‘자살보험금 이슈’가 뜨거웠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버티던 삼성․한화․교보생명 빅3 생보사가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통보에 결국 한발 뒤로 후퇴했다. 어떻게 보고 있나. 
“금융당국이 제재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금감원은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보험사들이 약관에 약속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안 주고 있으면, 강도 높은 제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몇 년 간 손놓고 있다가 소멸시효까지 지나버렸다. 대법원은 형식적인 법 논리를 내세워 결국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사들이 시간을 끌어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전에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늑장공시, 미공개 정보 유출, 횡령 사고 등 각종 사건이 봇물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엄한 개미투자자들만 피해를 봤는데.
“금융범죄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조정하고 해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소송 등 법체계에서만 의존하기에는 시장 개선 효과가 없다.

직원의 횡령사고에 대해서도 법인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직원과 개인 간 사적 거래로 발생한 사건의 경우, 회사는 ‘개인 문제’로 치부한다. 직원은 결국 회사의 타이틀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 아니냐. 금융 사고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내부시스템도 강화될 것이다. ”

- 카드업계에선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 통보로 시름하고 있다. 일방적인 인상 조치에 반발했지만, 당장 내년부터 수수료가 오를 전망이다.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 그간 카드사들이 독자적인 해외결제 인프라를 만들지 않고 비자카드에 의존한 탓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에만 차별적인 인상 조치를 단행한 것 역시 이 같은 의존 구조 탓이다. 당분간 이 구조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른 해외 결제 인프라를 늘리기 위한 카드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자살보험금 지급 이슈와 관련 "금융당국이 좀 더 빨리 제재를 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제공>
- 미국 금리 인상 이슈로 가계부채 관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가계 부채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려돼왔던 부분이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 장기화 속에서 큰 문제로는 부각되지 못했다. 가계 부채 문제는 전 경제시스템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금융위가 ‘가계부채 해결사’인 듯 나서는 것이 우려스럽다. 가계 부채 문제는 금리, 경기, 부동산 등과 관련이 있다. 주도권은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 주요 부처가 쥐고 있어야 한다. ”

- 연말 금융권은 인사 이슈로 뜨겁다. 최순실 사태 후 낙하산 인사 조짐은 줄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혼선은 계속되고 있다.
“공공기관장 인선은 지금 적절치 않다고 본다. 현 정국으로 보면, 길어야 3~5개월 가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인선을 해서 내부의 동요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기존 경영진의 임기를 늘려 당분간 안정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 수장 교체 문제로 내부 갈등을 만들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 최근 몇 년간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금융소비자 권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금융 상품은 복잡하고 어렵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직원들을 믿고 맡기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복잡한 상품을 금융사들은 이익만 쫓아가며 쉽게 판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큰 틀에서라도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또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 소비자 권익을 강화할 시스템은 무엇이 있다고 보고 있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당장은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우선 소비자들에 불리한 금융법상 구조를 당국이 점진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 또 근본적으로 법원까지 안 가고 조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소송은 너무 힘들다. 기본이 3~4년의 시간이 걸린다. 금융분쟁조정위 등 외부 기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 향후 활동 계획은 뭔가.
“내년에는 ISA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에 힘쓸 예정이다. 금융사들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도 올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또 실손보험 문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기 보험금 청구를 막겠다며 불공정하게 지급을 미루는 보험사들 문제도 관심을 쏟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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