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광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4개월 동안 매주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은 그는 지역 특유의 공동체와 연대의식에 감탄하며 “특별한 도시”라고 설명했다. <사진|광주=소미연 기자>

[시사위크|광주=소미연 기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영락없는 주부였다. 목욕 후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즐겼고, 이제는 부모가 된 자식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웃음 짓기도 했다. 살가운 성격 탓에 어디서든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가 다녀간 자리, 남은 사람들은 “사람이 참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김정숙 여사가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인 줄은 몰랐다. 광주 동구의 무등목욕탕에서 만난 일명 ‘커피아줌마’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 “제가 문재인 안사람” 4개월 만에 커밍아웃

김정숙 여사는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4개월 동안 매주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이유는 하나다. 광주가 알고 싶었다. 매주 화요일 서울 홍은동 자택을 떠나, 무등산 자락에 있는 춘설헌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며 광주시민들을 만났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모임마다 인원을 2~3명으로 제한해 탁자 하나를 넘기지 않았다. 충분한 소통을 위해서다. 그는 “(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분들의 말씀을 끊는 건 예의가 아니다”며 경청을 중시했다. 다만 정치·언론 관계자들은 피했다. 진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때문에 김정숙 여사는 기자의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는 18일 무등목욕탕 앞에서 기자와 만나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취재는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김정숙 여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목욕을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화장도 금세 끝냈다. 목욕탕을 나서기 전, 매주 커피를 샀던 관리인 A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A씨가 김정숙 여사를 붙잡았다. 귀띔으로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그냥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 김정숙 여사는 광주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 “지난 대선 때 높은 지지율을 보여준 데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면서 “정치 대신 우리 사는 얘기, 광주의 미래를 위한 의견들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사진=소미연 기자>

결국 김정숙 여사는 목욕탕에서 ‘문재인 안사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목욕을 온 아주머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A씨가 설명을 도왔다. 그는 “(김정숙 여사가) 계속 우리 목욕탕에 왔었는데, 새로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사모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실제로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김정숙 여사의 소탈한 모습에 놀랐고, 오랜 시간 광주를 찾아온 정성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들은 “전라도 사람들을 키워줘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열심히 하라”고 응원했다.

김정숙 여사는 쑥스러웠다. 한편으론 속이 시원했다. 그는 “아주머니들이 (저를) 많이 궁금해 했다. 한번은 카운터 아주머니가 쫓아와서 물어보기까지 했다”면서 “나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광주를 알고자 해서 온 것이기 때문에 저에 대해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정숙 여사는 광주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됐을까. 그는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광주에 대해 “특별한 도시”라고 소개했다. “공동체와 연대의식으로 서로 돕고자 하는 따뜻한 정서가 꽉 차 있다”는 것. 지역 내 ‘나눔앤조이’와 ‘서광지역아동센터’를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호남 민심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 대선 때 광주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여준 데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면서 “처음부터 정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우리 사는 얘기, 광주의 미래를 위한 의견들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광주를 포함한 호남을 꾸준히 찾을 생각이다.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지금처럼 고정적으로 방문하기는 어렵겠지만, 광주를 알아가는 데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게 김정숙 여사의 각오다.

◇ 늦게 찾아온 만큼 ‘열심’… “광주의 미래 고민”

김정숙 여사의 커밍아웃은 광주 서구에 위치한 서광지역아동센터에서도 이뤄졌다. 정삼순 원장의 소개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초대해달라”고 깜짝 제안을 했다. 김정숙 여사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날 김정숙 여사의 방문은 두 번째다. 지난달 7일 방문했을 당시엔 방학 전이라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센터의 사연을 전해들은 김정숙 여사는 아이들을 꼭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간식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 김정숙 여사는 앞으로도 ‘광주 알아가기’에 힘쓸 계획이다. 광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는 데 의미가 컸다. 그의 행보에 지역 내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소미연 기자>

김정숙 여사가 기자에게 소개한 사연은 이렇다. 아이들이 손뜨개를 통해 얻은 수익금과 용돈을 아껴서 나눔을 실천하고, 공동의 목표를 세워서 건전한 여가와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서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배경엔 정삼순 원장의 봉사정신이 있었다. 30년간 문방구를 운영해온 그는 자녀들이 성장하자 문방구의 규모를 줄여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었다. 지금의 센터가 되기까지 정삼순 원장은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야했다. 이에 김정숙 여사는 “복지가 희생으로만 이뤄져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숙 여사가 떠난 뒤 정삼순 원장은 “문재인 전 대표가 (광주에서)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모님을 만난 사람들은 평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 정치인의 부인이라고 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서민들과 거리를 두지 않는 모습”에서 호감을 느낀 것. 실제 지역 내에선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호남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를 나눴다면 지금처럼 등 돌리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김정숙 여사가 진심어린 행보를 보여 서운한 감정이 풀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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