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상 초유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정치권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하며 “우리 정치가 탄핵됐다는 심정으로 정치개혁에 매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민’에게서 길을 찾았다.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목표로 삼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speaker)’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과거에 국민들은 국회가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췄다.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가 일례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 선도로 대통령, 장·차관, 검찰 등 사회 전반에서도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 궐위 상황인 만큼 국정 안정화에 힘을 모을 계획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16일에도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 9명과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국회의장과 국무위원 간 간담회는 이례적이다. 손을 내민 것은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이날 국회 긴급현안질문 참석을 앞둔 이들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전했다. 두 가지 당부를 하기 위해서다. ‘국민을 잘 섬겨 달라’는 것과 ‘정권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일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 취임한지 10개월 차. 정세균 국회의장은 ‘일하는 국회’를 꿈꾸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승복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친박계에선 청와대 관저를 떠난 점과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는 메시지를 근거로 이미 승복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승복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그런 메시지를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안타까운 심정이다. 대통령 파면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적법성을 판단해 헌재가 결정한 사안인 만큼 국민께 수용 의사와 유감 표시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국민의 신뢰를 배신한 것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줘야 국민들도 이제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현재 판결에 대한 불복은 탄핵 사태로 촉발된 국론 분열을 오히려 조장하는 행위이다. 이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 결자해지해야 하는 문제다.”

▲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정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고 당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 회동 정례화를 제안하고, 국무위원들과 만나 정부와 국회 간 협치를 강조했다.

- 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대통령 궐위로 여야가 없고, 당정 관계가 소멸됐다. 사실상 국정은 마비됐고, 민심은 둘로 갈라졌다. 정국 수습과 운영에 대한 국회의장의 로드맵이 궁금하다.
“지난 3개월, 길게는 6개월간 대한민국은 표류 상태다. 국회와 정치권이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새 출발의 선봉이 돼야 한다. 헌재 결정을 이용해 새로운 분열과 분란을 조장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저는 협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 정파가 협치하고, 나아가 정부와도 협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13일 4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원내대표 간 정례회동을 상설화하기로 했다. 또한 관계부처 장관들과도 의논하고 협력할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국정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고 당면 현안을 지혜롭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 국회와 정부 간 협치를 위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소통이 중요하다. 양측의 교감은 없었는가.
“어제(15일) 전화가 왔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국정을 잘 챙길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뜻을 전했다.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경제, 외교, 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어느 때보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때이다. 아울러 황교안 권한대행은 앞으로 두 달 동안 국정의 책임은 물론 대통령 선거 관리를 중재할 중차대한 책무를 맡게 된다. 필요할 경우 국회가 적극 협력할 테니, 어느 때보다 높은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 권한대행을 잘 해 주시기를 바란다.”

- 야당에선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이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다. 상당히 정비된 나라이기 때문에 허투루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해선 안됐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탄핵 이후 3개월 이상 권한대행을 해왔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보살피는데 전력을 다했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현명한 판단을 해서 다행이다. 대선 관리도 잘 해줄 거라 생각한다.”

-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20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소통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현 정부의 사드 배치를 비판한 바 있다.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문제가 커졌다. 이 문제는 다음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부가 우리 국민들이나 주변국들과 소통 및 설득과정이 부족했다.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라면 당연히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를 같이 다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토지 맞교환이라 할지라도 국유지를 제공하는, 즉 국가소유의 토지(예산)비용이 발생하므로 국회비준 대상이다. 정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드 배치는 우리나라 및 주변 국가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등 정부 내 외교·국방 컨트롤타워가 부실한 상태에서 긴급히 결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시간을 두고 국회와 조율할 필요가 있으며, 필요하다면 의사결정구조가 완성되는 차기 정부에 결정권을 넘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시간을 두고 정부와 국회가 조율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 사드 악재로 국내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뿐이겠는가. 모두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 다만 경제 위기는 사드 배치 논란 이전부터 예측된 결과다. 지난 시간 동안 민생경제에 대한 전략과 대응이 실패했다. 물론 국회도 대안을 미리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지만 책임소재에도 순서가 있다. 1차적으론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금 탄핵 당한 대통령의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다. 그래서 국회와 정부의 협치가 필요하다. 국민을 통합하고 힘을 모으는 노력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

- 당시 사드 비판과 함께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 촉구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주장해 여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금도 의견에 변함없는가.
“공수처는 지난해 9월 정기국회 개회사에서도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통령과 그 주변 측근 비리 등으로 인해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이어진 지금이 공수처 설치 적기다. 고위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용인될 수 없다. 정권,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해 수사하고 처벌할 필요가 있다. 비리에 관련이 없다면 설치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공수처 신설로 검찰 개혁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악용하지 말아야 하며, 엄정하게 집행해야 할 것이다.”

- 취임 후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의장 수행에서 ‘민심 대변’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0대 개원사에서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당체제 하에서 여야 간, 정당 간 협치가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 간 협력도 중요하다. 협력을 바탕으로 민심을 우선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 저는 협치의 장을 만들고, 법과 원칙에 따라 국회의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그 결과물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게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4당 체제가 구축되면서 국회 운영도 좀 더 복잡해졌다.
“의장 취임부터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민생, 개헌, 특권 내려놓기 등 실천할 것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회의원들이 의지를 갖고 협치 해야 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장으로서 협치를 통해 민생법안 통과 등 민생을 먼저 살피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개헌을 추진하고, 특권 내려놓기와 함께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기득권과 적폐를 청산하는 등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

▲ 정세균 국회의장은 오는 5월로 예정된 조기 대선에서 공정한 관리와 유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국회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조기 대선의 막이 올랐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가 더 우려되고 있는 것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내각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복안을 가지고 있는가.
“이제 조기 대선이 현실이 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겪고 치르는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공정하고 차분한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국회가 공정한 대선과 유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민생 등 정책적인 대안도 각 후보들에게 제시할 계획이다.”

- 그동안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왔다. 하지만 대선 전 개헌은 시간이 촉박하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준거기준이 될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개헌특위를 통해 순리대로 논의가 필요하다.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조항에 선거제도 개혁까지 함께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선까지 50여일 남았다. 개헌 절차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 상 이번 대선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합의된 개헌안이 조속히 마련된다면 올해 내에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3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개헌은 개헌이고, 대선은 대선이다. 개헌은 꼭 성공시켜야 할 과제다. 그 시기야 빠를수록 좋지만, 과정이나 절차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 정파의 합의와 공감은 물론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런 노력이 부족하면 개헌을 그르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대선에 적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반 법안도 50여일 만에 할 수가 없다.”

▲ 정세균 국회의장은 취임 이후 다사다난했던 지난 10개월의 시간을 회고하며 “몇 년은 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보람이 컸다. 앞으로도 “국회가 국민들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 무엇보다 대선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멀어졌다. 자칫 동력을 잃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회 개헌특위가 30년 만에 국회에 설치돼 현재 활동 중이다. 이와 함께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대선 등 여러 가지 정치상황이 있지만 개헌특위는 중단하지 않고 결과물을 도출해 낼 것이다. 국민들 역시 개헌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만큼 그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서있다. 이번 탄핵은 국민의 요구로 시작되어 국민의 의지로 이루어낸 결과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떤 권력이나 집단도 주권재민의 헌법정신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재확인하고,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위기와 혼란의 순간에도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보여주신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 외교, 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어느 때보다 국민의 지혜와 하나 된 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역사는 우리가 분열되었을 때 국난을 겪었고, 우리가 단합하였을 때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음을 상기해주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국회가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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