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고양시 일산서구 한국시설안전공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 도로지반 조사 장비(RSV)를 보고 있다. 대당 2~3억원에 이르는 RVS는 비용 문제로 전국에서 2대만이 운용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흔히 ‘도심 속 지뢰’라 불리는 싱크홀의 공포가 다시금 확산되고 있다. 여름 장마철을 맞아 싱크홀 등 지반침하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지난달 시간당 300mm의 기록적 폭우가 내린 청주에서만 94건이 발생했으며, 울산에서는 지름 6m, 깊이 2m의 대형 싱크홀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경기 수원과 전북 익산 등에서도 싱크홀 발견 신고가 잇따르고 있어 시민 불안은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싱크홀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한 기획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순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반침하가 발생하는 서울시와 국토부의 국토 관리 실태를 점검 했다.

◇ 연간 지반침하 1,000건 발생… 탐사장비는 고작 ‘2대’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싱크홀 등 지반침하 현상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17개 시·도에서 발생한 2,727건의 지반침하 가운데 2,110건(77.34%)이 서울에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14년에서 발생한 858건의 지반침하 중 서울이 779곳(90.79%)으로 압도적이었다. 1,036건을 기록했던 2015년에는 734건이 서울에서 발생해 70.84%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833건의 지반침하 가운데 597건(71.66%)이 서울에서의 일이었다.

인구 1,000만이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전국 지반침하 발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건 도시노후화에 따른 현상이란 분석이다. “197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조성된 서울시 도시기반시설이 서서히 노후화 문턱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게 시 도로굴착관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시는 지반침하 원인의 주된 원인으로 노후된 하수관을 지목했다.

정부 주요 기관과 각종 기업체가 모여 있는 대한민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서울에서 지반침하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2014년경부터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그해 6~8월 송파구 석촌호수와 석촌지하차도 등지에서 발견된 침하 현상만 12곳. 연속해 발생한 침하는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 타워 건설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맞물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송파구 침하사고는 미봉책으로 끝났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나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주문했지만, 긴급 복구 차원에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서울의 도로는 폭에 따라 시의 도로사업소와 구청의 도로과에서 운영 및 관리되고 있는데, 어느 곳 하나 명확한 원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송파를 포함한 강남권 도로를 관할하는 동부도로사업소와 송파구청 모두 시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12곳의 침하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통계자료도 구축하지 않았다.

◇ 컨트롤타워 부재 탓… 원인규명은 ‘뒷전’ 긴급복구만 ‘급급’

도로 안전 관리에 소홀하기는 중앙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반침하 등 건설사고 발생 시 소방, 경찰과 함께 긴급 출동하는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지반 탐사 장비를 자체 운영하고 있지만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3D 다채널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이용해 지반하부 정보를 수집하는 RSV(Road Survey Vehicle‧도로지반조사차량)는 전국에 단 2대 뿐. 중부권과 경상권에 각각 1개 팀씩 운영되고 있다. 해마다 1,000건 가까이 발생하는 지반침하 현장에 매번 출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숫자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이 대당 2~3억원에 이르는 탐사장비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지반탐사전담밤을 11개까지 늘리기로 한 당초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반침하 사고를 진두지휘할 컨트롤 타워 마련을 주문한다. 지반침하가 발생할 때마다 중앙 정부인 국토부와 시·도 광역지자체, 시·군·구 기조지자체가 엇박자를 내다보니 근본적인 원인과 확실한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사고조사위원회 사무국을 운영하는 한국시설안전공단도 사고가 발생한 지자체를 상대로 지휘통제 권한이 없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크로스체크 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나서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는 관련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정부는 정부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데 급급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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