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 후 기아차 노조 조합원이 웃으며 법원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이 지난달 31일 나오면서 이 문제가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기업들 사이에선 ‘존립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통상임금 문제. 그 실체와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통상임금 논란에 불 붙인 박근혜?

최근 재차 화두로 떠오른 통상임금 문제는 이미 오랜 기간 논란이 이어져오고 있는 사안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내용의 소송이 제기됐고, 대부분 기업 측이 패소했다. 이에 소송을 제기하는 노조가 증가했고, 점차 사회적 논란으로 자리매김 했다.

의미 있는 국면전환을 맞은 것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에 방문하면서다. 당시 댄 애커슨 GM 회장을 만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80억달러 투자에 앞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국내 사법부의 판례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법원은 통상임금 문제가 쟁점인 2건의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넘겨 판결에 나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은 치열하게 진행됐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은 양측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판결에 신중을 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내려진 판결은 기존 판례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에 유리했다. 다만, “과거 지급되지 않은 부분을 소급할 때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더해졌다. 대규모 집단소송 제기로 인해 기업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GM 회장의 요구와 이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답은 기업들을 더 난처한 상황으로 이끌게 됐다.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방미 당시 GM의 통상임금 문제 해결 요구에 화답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뉴시스>

◇ 용어부터 모순인 ‘정기상여금’

그렇다면 통상임금 문제의 쟁점은 무엇일까. 핵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들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반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기존의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된 각종 수당은 원래 지급돼야할 것보다 적은 것이 된다. 이것을 돌려달라는 것이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이다.

사법부가 꾸준히 같은 맥락의 판결을 내려온 만큼,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애초에 정기상여금이란 용어 자체가 모순을 담고 있다. 상여금은 쉽게 말해 ‘보너스’다. 정기적으로 일정하게 지급되는 임금 외에 경영실적 등에 따라 특별히 지급되는 현금급여를 말한다. 일반적인 월급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정기적이지 않고,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상여금에 ‘정기’라는 정반대의 수식어가 붙었다.

즉, 정기상여금은 정기적으로 일정하게 지급되는 특별 보너스다. 이 비정상적 개념은 뿌리 깊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의 비중을 줄일 수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각종 수당도 결정됐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꾸준히 상여금을 받는다는 것이 굳이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법에 어긋났다. 특히 기본급의 비중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였다.

예를 들어, A회사가 노동자들에게 기본급 200만원을 지급할 경우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시 이를 기준으로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급 100만원에 정기상여금 100만원을 지급하면, 같은 임금을 지급하고도 추가근무에 따른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정기상여금의 지급 및 규모는 노사의 임단협을 통해 결정되곤 했다. 여기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것과 일정한 연장근로 이행 등의 내용도 대부분 함께 포함됐다. 따라서 기업들은 일은 더 시키면서 임금은 덜 주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정기상여금은 회사 사정을 핑계로 지급하지 않거나 축소시키는 것이 비교적 용이했다. 이때는 ‘정기’라는 의미보다 ‘상여금’이란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됐다. 이러한 측면도 기업들이 정기상여금을 선호한 이유 중 하나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 <뉴시스>

◇ 신의칙 논란 지속 불가피

이처럼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경영계는 대법원이 2013년 판결에서 언급한 ‘신의칙’을 적극 강조하고 나섰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억울한 측면은 분명히 있었다. 애초 의도가 어땠건 간에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이 관행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 사실이다. 보통의 노사합의는 기본급 따로, 정기상여금 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총액을 결정했다. 합의된 총액을 바탕으로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의 비율을 분배한 것이다.

대법원은 신의칙 원칙과 관련해 “전체 노사합의 중 기본급 인상률과 각종 수당의 액수 및 지급조건 등은 그대로 둔 채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만 달리 적용해 추가 수당을 요구할 경우, 근로자는 추가 수익을 얻게 되지만 기업은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신의칙 적용의 요건으로 노사합의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추가 수당 지급시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경우 등을 들었다.

즉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이 노동자 측의 반발 없이 이뤄진 것인 만큼, 기업의 존립위기를 불러올 수준의 추가 수당 청구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의칙 적용의 두 번째 요건의 판단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존립위기를 판단하는데 있어 객관적이거나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나온 판결에서도 기아차와 경영계는 조단위 부담을 언급하며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이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관련 소송에 휩싸인 기업은 100여 곳을 훌쩍 넘는다. 앞으로 추가 소송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의칙을 둘러싼 혼란과 논란은 매번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또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