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의원이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의 구체적 목표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보수화된 대법원 지형 바꿔야”
“대법원 개혁 위해 대법관수 증원 필요”
“노무현 거론은 수사의 금도 어긴 것”
“공수처 중립성 의심은 야권의 괜한 꼬투리 잡기”
“대전시장 거론은 권선택 시장에 대한 도리 아냐”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돌풍은 꺼져가고 있었다. 보수진영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건재했고, 월드컵 열풍을 타고 정몽준 국민통합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가 출범해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다. 당 안팎에서는 ‘노무현으로는 대선승리가 힘들다’는 소리가 컸다.

노 후보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현직 판사 한 명이 홀연히 사직서를 던지고 노 후보의 캠프에 합류했다. 박범계 현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한국사회 비주류도 전면에 나서 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안정적이고 명예롭던 판사직도 내던졌다. 노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맡아 문재인 당시 정무수석과 사법개혁을 주도했다.

그렇게 한국사회의 주류세력과 비주류세력이 한바탕 교체되는 줄 알았다. 노무현 정부의 성공여부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민주주의 성숙도는 한 단계 진보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거꾸로 돌리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이용한 탄압, 권력의 사유화가 이명박 정부에서 그대로 진행됐다. 박범계 최고위원은 ‘저격수’로 변신해 보수진영 견제에 나섰으나 야당의원으로서 한계는 분명했다.

힘들어 보였던 정치주도세력 교체의 기회는 국민이 만들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으로 연인원 1,700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헌법절차에 따라 탄핵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박 최고위원은 “지난 정부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로 받아들였다. 박 최고위원이 다양한 국정과제 중 반드시 지켜야할 0순위로 ‘적폐청산’을 꼽는 이유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사위크>와 박범계 최고위원의 인터뷰는 25일 의원실에서 이뤄졌다. 박 최고위원의 집무실 안에는 두 개의 화이트보드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국회 국정조사가 끝난 지 10개월이 넘었지만,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는 식지 않아 보였다. 판사 출신임에도 마치 검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 노무현 후보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합류했다. 판사직을 던지고 뛰어든 이유는.
“민주정부로 국민의 정부가 물론 있었지만, 노무현 후보의 ‘원칙과 상식’이라는 슬로건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비주류가 정치 전면에 등장한 배경이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정치 리더십을 바꾸는 노 후보의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었다.

그런데 그 상징이 2002년 10월에 가면서 서서히 꺼질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뿔이 났었다. 저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캠프에 합류했다.)”

박범계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주요 개혁과제로 대법원 지형 변화와 대법관 증원을 꼽았다.

-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국회서 가결됐다. 이념과 성향이 문제됐지만 따지고 보면 대법관 상당수는 여전히 보수성향이 강하다. 노무현 정부를 거쳤지만 주류세력 교체는 안 된 게 아닌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는 개혁과제가 여러 개 있다. 법원 행정처를 개혁하는 일이 있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이 앞으로 6명의 대법관을 추가적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대법관 구성이 워낙 보수화돼 있어 대법원의 지형을 바꿔나가는 것이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 동안 사법부 관례적으로 임명되던 대법관이 대법원장이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 아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주류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

- 사법개혁 중 하나로 사회노동법원의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사회노동법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도입됐을 경우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수 증원을 얘기했었다. 대법원 개혁의 일환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법관 수는 14명으로 일종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에 증원이 없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재 때 ‘상고법원제’가 시도됐지만 안팎의 반대 때문에 좌절 됐다. 그런데 현행 대법관 수로는 정책·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을 충실하게 다루기에 벅차다. 대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통상임금 판결, 쌍용자동차 사건 등 갈등과제들이 많다.

다만 노동법원만 둬서 노동사건만 하기에는 협소한 측면이 있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할 예정인데 결말이 어떻게 나든 궁극적으로 사건이 법원으로 갈 것 같다. 이렇게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갈등이 심화된 사안은 사법부가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법관 수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노동법원을 대법원으로 두고 대법관을 증원하는 게 필요하다.”

- 사법개혁 외에 ‘적폐청산’이 정치권의 중요한 이슈다. 민주당 적폐청산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구체적인 대상과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농단이 있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국정농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순한 일탈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박근혜 정부를 구성했던 부처들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잃었다.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라고 하지 않았나. 기능을 잃은 부처를 정상화하는 길이 (목표다.) 그런데 정상화 과정에서 따지고 들어가니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과 감사원에도 (적폐가) 쌓여 있더라.

국정농단의 본질은 예산과 인사, 국가기밀을 사유화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나온 국정원 여론조사 사건은 집권자인 대통령(이명박)과 특정정당을 위해 여론을 조작한 사건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주요사항을 메모해 놓은 화이트 보트

- 자유한국당에서는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반대한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민정비서관 출신으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모든 수사에는 금도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돌아가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생명을 던졌다. 수사의 핵심 대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몰아 왔다. 그런데 당사자가 없는데 어떻게 수사를 하나. 금도를 어기는 거다.

정치보복이라는 말은 함부러 쓰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당시) 국민적 비난여론이나 범죄의 증빙 단서가 없었다.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도 없었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정보망을 활용해 계획적·의도적으로 콕 집어서 서울지방 국세청 특별세무조사가 있었다. (그 시기는) 광우병 파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만나려고 봉하마을을 찾던 때다. 그런 걸 정치보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 의혹은) 박근혜 정권 때 했던 수사다. 내부 고발에 의해서 (댓글조작을 하던) 국정원 김모 직원이 들키지 않았나.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 된 것에 대해 국민적 여론이 모아졌고 검찰과 국정원이 수사했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 와서 보니 상상할 수 없는 규모가 감춰져 있었던 거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가 곧 다가 온다. 1심 선고 전 석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저지른 범죄가 워낙 위중해서 더 이상 대통령직을 맡기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헌재가) 파면을 결정했고 구속기소 됐다. 그런데 석방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 구속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석방을 하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증인신청 등) 꼼수를 써서 재판기간을 늘리려고 하는데 검찰이 별건으로라도 구속을 계속 해야 한다.”

- LCT 사건도 정경유착이라는 적폐사건과 같아 보인다. 대선 전 여야가 특검에 합의했는데 대선이 끝나고 전혀 논의가 없는 것 같다.
“상임위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여야가 지난 3월에 합의했으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LCT 사건의 핵심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검이든 검찰수사든 본질을 밝혀야 한다. LCT 사업과정을 보면 처음 리조트 사업에서 대형주거시설로 사업내용이 변경되는데 그런 부분을 수사해야 한다. (핵심 피의자) 이영복이라는 사람이 입을 닫고 있는데 지퍼를 열어야 한다고 본다.”

- 법무부 사법·법무 개혁위원회가 공수처 설치 권고안을 발표했다. 야권은 이 역시 정치탄압이라고 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대통령이 좌우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국회 내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두게 돼 있다. 4명은 국회에서 뽑고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변협회장 등이 들어가 총 7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교섭단체가 4개인 상황에서 국회 TO 4명은 각 당에서 한 명씩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 주장대로) 법무부장관과 법원행정처장이 설사 대통령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해도 3명뿐이다. 변협회장은 선거로 결정되기 때문에 영향권 밖이다. 야권이 괜한 꼬투리를 잡는 것이다.”

-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지역에서는 ‘차기 대전시장은 박범계가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에이 그럴 리가(웃음). 대전시장에 대한 하마평이나 출마여부 관련 보도가 있지만 아직 생각이 없다. 현 권선택 대전시장은 같은 당 동지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데 잘 되기를 바란다. 현 시장이 있는데 차기 운운하는 것은 도리와 예의가 아니다.

- 출마가능성도 열어두지 않는 것인가.
“전혀 생각한 바 없다.”

- 곧 추석연휴가 시작되는데, 당원과 국민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겨울 연인원 1,700만 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그 민심의 기대 하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첫째 과제는 역시 지난 정부의 적폐들을 청산해 달라는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경제를 회복하고 민생에 힘쓰는 길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세계적 영향, 경제상황 등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국민적 지지도 광범위하게 받고 있고,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수월히 될 수 있다.

물론 딴지걸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봤자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적폐만 부각시킬 뿐이고 바라는 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추석연휴에는 진짜 우리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드는 심정으로 적폐청산을 위한 지지를 모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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