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적나라한 후진성을 보이면서도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정치 개혁에서 진일보하기도 했다. 돈 없는 정치, 비리 정치인 척결 등을 위해 선거법을 손보고 공천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정치는 수많은 벽들을 만들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정치적 약자들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아왔다. 국회는 민의의 정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의 국회가 돼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사위크>는 우리나라 역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활약상과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고 향후 장애의 벽을 넘기 위해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다. 

21대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좌),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우) 등 4명의 장애인 의원이 입성했다./뉴시스
21대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좌),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우) 등 4명의 장애인 의원이 입성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국회는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 민의(民意)의 기관이다. 민의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국가를 움직이는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하게 된다.

국회는 입법부로서 기능도 하지만 국민과 정부 간의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회는 민의의 정당임에도 그동안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됐고, 국회의 장벽은 장애인에게 한없이 높았다.

국회의 다양화와 정책적 역량 강화를 위해 장애인, 청년, 여성 등 사회‧정치적 약자들의 국회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그동안 성과는 저조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국회의 문턱은 그 누구보다 높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각 정당에 지난 2000년 16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10% 장애인 할당’을 요구했다. 이들은 매 총선 때마다 장애인을 대변할 많은 수의 국회의원 배출을 통해 소외돼왔던 장애인 정책과 예산에 큰 변화를 이끌어오길 바랐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13대 때 이철용 의원 첫 입성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장애인 지역구 국회의원은 13대 국회 평화민주당 소속 이철용 의원(서울 도봉구을)이었다. 어릴적 결핵성 관절염으로 인해 지체장애 3급이 된 이 의원은 ‘꼬방동네 사람들’ ‘어둠의 자식들’을 집필한 소설가이자 빈민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 전 의원은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 국회 의사당에 경사로를 만들게 했다.

이후 15대 국회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이 처음으로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애인 비례대표의 시대를 열었다.

16대 국회에서는 단 한 명도 장애인 의원이 배출되지 못했다. 16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안양시동안구을’ 5선을 지낸 심재철 미래통합당 전 의원이 있지만, 장애계의 대변자라기보다는 기성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고 볼 수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과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 당시 국회는 1급 장애인인 장향숙 의원이 휠체어로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본회의장 발언대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본관 일부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등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의원을 위해서는 점자 표결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는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상민 의원(현 더불어민주당)이 있다.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이후 17대 국회부터 시작해 21대 국회까지 ‘대전 유성구을’에서 내리 5선을 달성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이 의원은 지난 2018년 제18회 전국지체장애인대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상인 ‘자랑스런 지체장애인 대상(국회의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18대 국회에서는 5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비례대표로는 1급 지체장애인인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과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한 판사 출신 민주당 박은수 의원,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친박연대 정하균 의원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5살에 결핵성 척추염을 앓아 장애인이 된 곽정숙 의원은 평생 장애인 활동가로 활약했으며 간암 투병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정하균 의원은 친박연대 비례대표 6번으로 공천을 받아 총선에서 당선됐다.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은 서울 강동구을 지역구 의원으로 18대 국회에 진출했다. 소아마비로 장애등급 2등급인 윤 의원은 한의사 출신이며 한나라당 중앙장애인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17대 국회에서 활동한 열린우리당 장향숙 전 의원(좌)과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주통합당 최동익 전 의원(우)/뉴시스
17대 국회에서 활동한 열린우리당 장향숙 전 의원(좌)과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주통합당 최동익 전 의원(우)/뉴시스

◇ 20대선 장애인 비례대표 0명 21대선 4명 입성

19대 국회에서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 회장, 한국장애인재단 이사 등을 지낸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과 시각장애인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 등이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20대 국회에는 비례대표 장애인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예비역 육군 대령 출신의 새누리당 이종명 전 의원(비례대표)이 2000년 수색 작전을 펴던 도중 지뢰에 다리를 잃었으나 장애인 대표성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미래통합당 김예지·이종성·지성호 의원 등 4명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발레리나의 길을 걷다 지난 2003년 교통사고로 척수장애 판정을 받은 최혜영 의원은 지난해 12월 민주당의 인재 영입 1호로 영입돼 국회에 진출했다.

김예지 의원은 헌정 사상 첫 여성 시각장애인 의원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 의원은 통합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미래한국당 영입인재 1호로 정치에 첫 발을 내딛었다.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이종성 의원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26년 동안 활동했으며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했다. 북한에서 어린시절 팔과 다리를 잃은 지성호 의원은 중증장애인이자 탈북민 출신이다.

김예지 의원의 경우는 21대 국회 개원 후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국회 출입 문제가 논란이 됐다. 그동안 국회는 관행적으로 안내견의 국회 회의 출입을 막아왔다. 17대 국회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 19대 국회 최동익 민주통합당 의원은 안내견이 아닌 활동 보조요원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러나 안내견의 국회 출입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국회 사무처가 결국 안내견 출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김 의원의 안내견 ‘조이’가 국회 역사상 최초로 국회 본관 및 본회의장 출입이 가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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