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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고두심, 빛나는 지금
2021. 06. 2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고두심은 49년 동안 대중의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다. /명필름
배우 고두심은 49년 동안 대중의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다. /명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고두심은 1972년 MBC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 49년 동안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대중의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다. 그의 연기 인생을 단순히 수상 이력을 들어 평가할 순 없지만, 지상파 방송 3사 대상을 휩쓴 유일한 연기자이자 ‘연기대상 최다수상자’에 빛나는 그야말로 ‘넘사벽’ 이력의 소유자다. 백상예술대상까지 포함하면 그가 들어 올린 대상 트로피는 무려 7개에 달한다. 

고두심은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에서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로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국민 엄마’로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해왔다. 진정성으로 빚어낸 그의 모든 캐릭터들은 고두심의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명한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에도 고두심의 빛나는 순간이 담겼다.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고두심 분)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 분)의 특별한 사랑을 담은 작품. ‘국민 엄마’ ‘국민 며느리’ 이미지를 벗고, 파격 변신을 택한 그는 제주 해녀 고진옥으로 분해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운명적인 해녀의 삶과 노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평생을 바다에 몸 바쳐 살았던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해녀의 모습은 물론,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순수하고 고운 얼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러한 활약으로 고두심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진행된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의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고두심은 실제 제주도 출신으로 남다른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작품에 임했다고 밝혔다. 특히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수영을 다시 배울 정도로 사명감을 느꼈다고. 스크린 속 그의 얼굴이 유독 빛난 이유다.

고두심이 ‘빛나는 순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명필름
고두심이 ‘빛나는 순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명필름

-제주도 출신이지만, 오랜 시간 표준어로 연기를 해오다 제주어로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어려운 지점은 없었다. 어차피 자막은 나가니까 더 못 알아듣게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제주도의 방언, 들어보지 못한 방언이 더 없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옛날 할머니들이 쓰는 방언은 제주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재밌게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제주어로 연기를 하면서 힐링을 했다. 제주도에서 촬영한 자체도 좋았고, 음식도 푸짐하게 먹으면서 두 달 동안 정말 행복하게 잘 보냈다. 사람이 제일 편하거나 불리할 때 자기 고향 말이 튀어나온다고 하더라. ‘전원일기’ 때도 워낙 편안해서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다.(웃음)” 

-바다 공포증을 극복하고 직접 물질을 했다고. 
“제주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바다와 연관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바다 수영을 배우긴 했는데, 개구리 수영으로 헤엄친 정도였다. 중학교 때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바다에 잘 가지 않았다. 바다를 좋아하긴 했지만,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영화 ‘인어공주’ 찍을 때 바다신이 있었는데, 한 장면뿐이라 할 수 있겠냐고 해서 연습을 했다. 연습하면 하겠지 했는데 못했다. 당시 제주도에 태풍이 와서 동남아 바다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너무 공포가 밀려오는 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그래서 결국 못 찍고, 대역을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녀의 이야기잖나. 해녀의 이야기에 대역을 쓰려면 다른 사람이 해야지 이건 정말 직접 해야겠구나 싶었다. 제주도 바다에 가서 ‘해녀 삼춘’들과 연습을 했는데, 내가 빠진다고 해도 ‘해녀 삼춘’들이 베테랑인데 나 하나 안 건져주겠나 싶으면서 안도감이 들더라. 그러니 자신있게 해졌다. 파도가 셌는데 겁도 안 먹고 한 번만 더하자고 하기도 했다. 감독이 놀라더라. 그러면서 극복했다. 그런데 지금도 다른 바다에서는 못 할 것 같다. 제주는 할 수 있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에서 제주 해녀 진옥을 연기한 고두심. /명필름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에서 제주 해녀 진옥을 연기한 고두심. /명필름

-제주 해녀를 연기한 소감은. 
“해녀들의 정신, 그게 제주의 혼이다. 모든 것을 희생한 인물이다. 제주도는 섬인데다 산까지 있다. 그래서 시야가 넓고 바다가 주는 넉넉함이 있다. 해녀는 그것을 다 보듬고 파도가 쳐도 살아온 사람들이다. 생과 사를 오가며 살아왔다. 바다 바닥까지 들어가서 올라올 때까지 숨을 참는다. 숨을 쉬어야 사람이 사는데 숨을 참는다는 건 할 짓이 아니잖나. 먹고살기 위함인 거다. 척박하고 벌이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손에 들어온 건 쓰지 않고 아껴보려고 하고, 근면한 것이 해녀의 정신이자 제주의 정신이다. 

그 역할을 어느 배우가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제일 잘 맞겠더라. 더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소준문 감독이 내가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손 편지를 써왔다. 그 편지에서 ‘제주도 하면 고두심, 고두심의 얼굴은 제주의 풍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나. 내 몸이 부스러져도 해야지 생각했다. 거기에 제주 4.3 사건의 아픔이 그려진 것도 정말 좋았다. 젊은 청년과 사랑 이야기도 있고, 그건 보너스였다.(웃음). 

-진옥이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즉흥적인 대사로 채워진 장면이라고. 
“나도 해놓고 ‘정말 내가 해냈네’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어서 더 할 수도 있었다. 소준문 감독이 대사를 많이 주신 게 아니었다. 조금 줬는데 거기에 이어서 내가 막 한 거다. 감독님이 놀라서 컷 사인을 못하고 벙벙해 있더라. 스태프들도 다 울먹울먹하면서 있었다. 나도 내가 본 것처럼 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 거미줄처럼 막 나왔다. 이 영화를 통해 4‧3 사건의 아픔, 제주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빛나는 순간’에서 지현우(왼쪽)과 멜로 연기를 펼친 고두심. /명필름​
‘빛나는 순간’에서 지현우(왼쪽)과 멜로 연기를 펼친 고두심. /명필름​

-오랜 기간 연기를 해왔지만, 그런 경험이 흔하진 않지 않나.
“많진 않은데 어떤 작품에서 걸려들 때가 있다. 내 것이 막 나올 때가 있다. 어떤 연기자든 그럴 거다. 40~50년을 사랑받은 사람들이 그게 없다면 우스운 거겠지. 정말 맞는 작품에서 나올 때가 있다. 그 희열 때문에 아마도 (연기의) 끈을 못 놓는 걸 거다. 연극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할 때 정말 숨이 막힌다. 내 몸짓 하나, 내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이 다 느껴진다.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멜로 연기는 어땠나. 
“참고 잘 이겨오다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싶었다. 하하. 그런데 사실 내가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멜로에 큰 비중을 두진 않았다. 끼워 팔기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야만 다가갈 수 있었다. 33살 연상연하라니 언감생심, 현실적으로는 무리잖나.(웃음) 물리적으로 무리이지만, 특별한 일이고 있을 수 있는 일이잖나. 세상에 한 번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것에 내가 뽑혔다는 게 행운이었다.”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고두심. /명필름​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고두심. /명필름​

-진옥의 순수함과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멜로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다 잊어버리고 없어진 감정을 끌어올리느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군가와 연애할 때 어떻게 했지 이러면서. 하하. 소준문 감독이 예쁘게 잘 찍은 것 같다. 마지막 편집이 제일 좋았다. 편집을 굉장히 오래 했다. 밤새는 일도 많았을 텐데, 애를 많이 쓴 흔적이 보이더라. 깔끔하고 예쁘게 잘 나온 것 같다.” 

-지현우와의 호흡은. 
“어떤 배우가 걸릴까 했는데 지현우가 걸렸더라.(웃음) 지현우를 처음 봤을 때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강철같이 단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작품을 하며 옆에서 들여다보니 외유내강한 모습이 있더라. 내면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자신을 누르고 보여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젊은 사람이 잘 참아내고 한다는 것이 좋아 보였고, 강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1년 만에 홍보를 위해 다시 만나게 됐는데, 어깨도 넓어지고 강한 남성이 돼있더라. 하하. 보면 볼수록 강인하고 신뢰가 가는 후배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배우, ‘전원일기’ 맏며느리 그리고 ‘국민 엄마’까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때로는 이런 타이틀이 부담이 되진 않나. 
“고두심 하면 제주도니까 내가 잘 해야 제주도 사람이 욕을 먹지 않겠구나 생각에 무거웠다. 그러다 ‘전원일기’에 들어가니까 ‘한국의 큰며느리 상은 고두심’ 이렇게 된 거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고 늘 참고. 그런 며느리로 22년을 살고 나니 엄마 역할로 들어갔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명치끝이 아프고 아리고 하잖나.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다. 당신은 없다. 자식과 남편만 있는 거지 자신은 없다. 우리 윗대는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내가 어머니의 표상이 돼서 ‘국민 엄마 고두심’이라고 하니 정말 무섭더라. 또 지난해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았으니, 완전히 꼼짝 말라는 것 같더라. ‘국민’이라는 호칭은 정말 어렵다. 어쨌든 그 시간 속에서 내 자신의 것들을 잘 지키며 조심스럽게 살아보려고 하다 보니 오늘날 고두심을 봐 주시는 것 같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