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으로 또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으로 또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감독 연상호)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다. 

‘송곳’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영화 ‘부산행’ ‘반도’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 집필을 맡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연상호 감독이 원작 각본에 이어 시리즈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아 실사화를 이끌었다. 여기에 배우 유아인‧김현주‧박정민 등 연기력과 흥행력을 모두 갖춘 배우들이 총출동해 완성도를 높였다.  

공개 전부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으며 주목받았던 ‘지옥’은 지난달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공개 열흘 만에 1억1,00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93여 개국의 TOP10 리스트를 강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또 한 번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지옥’은 지옥행 고지라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설정과 매회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살아 숨 쉬는 캐릭터 등을 앞세워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쌓아올린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또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완성한 연상호 감독은 최근 진행된 화상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지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해당 기사에는 ‘지옥’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지옥’.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지옥’. /넷플릭스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음과 동시에 다소 무거운 소재에 대한 호불호도 갈리고 있는데.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다. 공개되고 자고 일어났더니 좋은 순위를 얻었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다.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다. ‘지옥’이라는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보편적으로 대중을 만족시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거나 딥하게 볼 수 있는 분들이 좋아하는 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오히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리즈라는 매체를 통해 생소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빠져는데 일정 부분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호불호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2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해외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세계적 인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십여 년 전부터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전 세계에 쌓아온 신뢰 같은 것들이 최근 폭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는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존재했고, 그것을 알아봐 주는 세계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결계’다. 결계라고 하는 것은 조금씩 금이 가다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지금 한국 콘텐츠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시장이라고 하는 벽에 천천히 내기 시작한 균열들이 모여 둑이 무너진 것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화두를 던진 ‘지옥’. /넷플릭스
종교적 화두를 던진 ‘지옥’. /넷플릭스

-‘지옥’은 감독의 전작 중 ‘사이비’를 연상하게 했다. 민감할 수 있는 종교적 화두를 어떻게 던지고자 했나.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는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에 좋은 장치다. ‘지옥’은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 공포,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장르다. 거대한 미지의 존재와 인간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 혹은 오히려 피어나는 인간의 강함을 표현하기에 좋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종교적인 색채도 있지만, 코스믹 호러 장르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기획했다.” 

-지옥행 날짜를 사전에 고지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람에게는 그 시간까지가 현생의 지옥이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이런 설정을 구상하게 됐나.
“‘부산행’을 만들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인간에게는 죽음이라고 하는 종착지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분명한 종착지이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부산행’에서 부산이라고 하는 종착지가 인간의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지옥’은 그 종착치가 고지됐을 때 인간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미묘한 설정의 차이만으로 평범한 삶과 극적인 삶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미묘하지만 독특한 설정이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데 주요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직설적인 제목을 택했다. 이유가 있다면. 
“예전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부터 제목을 지을 때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지옥’도 단순하게 결정했다. 그런데 오히려 제목을 짓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지옥이라는 단어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지옥이라고 하는 실체가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게 됐을까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런 상상들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큰 모티브가 됐다.” 

초자연적 현상을 있을 법한 이미지로 구현한 ‘지옥’. /넷플릭스
초자연적 현상을 있을 법한 이미지로 구현한 ‘지옥’. /넷플릭스

-‘부산행’ ‘반도’ ‘지옥’까지 희망의 상징으로 아이를 등장시키고 있다. 현 세대에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일까.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아이들만 봐도 기분이 좋다. 아이라고 하는 존재는 아주 조그마한 사랑만 줘도 크게 만족을 한다. 다음 세대, 아이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정말 끔찍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사회라면 더 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하면서도 그런 지점들에 대해 생각했고 이야기에 반영이 됐다.” 

-웹툰을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 존재가 현실 세계와 굉장히 이질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것이 구현됐을 때 실제로 일어날 법한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B급 영화나 서브컬처 영향을 워낙 많이 받았기 때문에 동시에 그런 면도 잘 보였으면 했다. 일어날 법 하면서도 이질적이고 B급적인 느낌들을 동시에 잡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했다.”

-신생아에게 지옥행을 고지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충분한 설명과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지점이 ‘지옥’의 후속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후속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완성한 ‘지옥’. /넷플릭스
비현실적인 설정을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완성한 ‘지옥’. /넷플릭스

-새진리회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집단 린치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혐오를 반영하는 느낌이다. 원작을 집필하고 극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실제 사회적 사건이 있나. 
“‘지옥’을 만들면서 특정 사건이나 어떤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요소를 빼려고 했다. 물론 실제 있을 법한 일이 되는 것들이 중요했지만 어떠한 특정 사건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이 작품을 만들 때 주요했던 포인트였다. 시연과 고지라는 상황이 주어진 세계관을 짓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운지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많다. 어떻게 봤나.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내가 처음 이 세계를 생각했을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본인이 맡은 캐릭터에 현실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해 줬다. 이번에 작업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감독’과 ‘배우’가 아니라, 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모여 같이 공연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 대해 배우, 그리고 스태프에게 감사하다.” 

-지옥행을 고지하는 천사 목소리에 정지소가 특별출연으로 함께 했는데.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비하인드나 이스터 에그 같은 게 존재하면 외적인 걸 즐기는 분들이 조금 더 즐겁게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행’ 작업할 때 심은경이 연기해 줬던 첫 번째 감염자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어떤 배우가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처음 콘셉트 아트를 그렸을 때 이미지가 정지소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아서 부탁을 했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무한한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차량과 사람들의 모습을 엑스선으로 담아낸 오프닝도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를 구현한 의도가 있다면. 
“한국에서 드라마를 할 때 오프닝은 오프닝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에 맡긴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오프닝도 크리에이터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전문가가 만든 것처럼 화려하게 만들 순 없지만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존재한다면 우리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뜨겁지만 신의 관점에서는 관조하거나 관망하거나 드라이한 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까 생각하다가 모든 것이 투시되고 카메라적으로 액티비티가 전혀 없는 풍경 같은 이미지로 구현하자는 생각에 지금의 오프닝이 나왔다.”

-넷플릭스와의 첫 작업이었다. 어땠나.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굉장히 좋은 플랫폼이다. 기존 배급 방식과 굉장히 다르고 글로벌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영역 역시 넓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내에 먼저 보인다는 제약이 없으니 조금 더 자유로운 기획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권을 갖고 있는 여러 나라에 동시에 공개를 하고 동시에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옥’이 넷플릭스와의 첫 작업이었는데, 성공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긴 하지만 또 작업하게 된다면 비슷한 성공을 위해 비슷한 방식을 취하진 않을 거다. 더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 일거다.”

-시즌2에 대한 계획은. 
“시즌2라기보다는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최규석 작가와 지난여름부터 만들고 있다. 최근 최 작가와 이후의 이야기를 만화로 작업을 하기로 얘기를 해놓은 상태다. 내년 하반기 정도에는 여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화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의 영상화에 대해서는 아직은 구체적인 논의가 있지 않은 상태다. 추후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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