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백련사에서 만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그는 백련사 인근 흙집에서 지난해 8월부터 칩거 중이다. <사진|전남 강진=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전남 강진=소미연 기자]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얼굴 낯이 많이 익다”며 악수를 건넸지만 기자의 방문이 마냥 반가울리 없었다. 예상했던 질문이 쏟아지자 특유의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카자흐스탄 강연 이후 정계복귀설이 더욱 뜨거워지면서 아예 입을 닫았다. 기자들도 멀리했다. 이미 지난 4일 입국장에서 ‘답’을 모두 했다는 게 손학규 전 고문의 입장이다. 당시 그는 ‘역할론’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고, “산이 나가버려라 하면” 하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랬던 손학규 전 고문이 기자에게 물었다. 16일 전남 강진의 백련사에서다.

◇ ‘사의재’ 통한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 실천 강조

손학규 전 고문은 기자가 전날 묵은 숙소를 궁금해 했다. 마침 기자가 묵은 숙소가 ‘사의재’ 옆 한옥체험관이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와서 처음으로 묵었던 방이자 주막이다. 이에 손학규 전 고문은 “좋은 데서 잤다”며 사의재의 뜻을 설명했다.

“(정약용 선생이) 요새로 치면 사상범아닌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을 때 주막에서 머물렀다. 그때 정약용 선생이 마땅히 지켜야 될 네 가지의 규율을 스스로 정했는데, 첫째 생각을 맑게 하고, 둘째 용모를 단정하게 하며, 셋째 말수를 줄이고, 넷째 처신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키면서 자신이 묵었던 방을 사의재로 불렀다.”

사의재에 대한 손학규 전 고문의 의미도 남달랐다. 그는 “강진에 와서 사의재를 보고 ‘아, 그래. 맞다’고 깨달았다”면서 “예전에는 수염도 깎지 않았는데, 용모를 단정하게 하려 노력한다. 수염을 매일 깎는다”며 웃으며 말했다. 실제 손학규 전 고문은 7년여 전 춘천 대룡산 자락에서 칩거할 당시 수염을 깎지 않았다. 닭을 키우고 밭을 갈며 농민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강진 칩거를 시작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

▲ 손학규 전 고문이 부인 이윤영 여사와 함께 지내고 있는 흙집. 두 내외는 지난해 겨울에 이어 올 겨울도 흙집에서 지낼 계획이다. <사진|전남 강진=소미연 기자>
공교롭게도 현 정국에서 손학규 전 고문의 실천이 여실히 확인됐다. 침묵했고, 기자들의 눈을 피했다. 뿐만 아니다. 측근에 따르면, 손학규 전 고문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진 2.4km의 산길을 매일 걸었다. 운동 차원이지만, 정약용 선생이 오간 그 길에서 손학규 전 고문의 정신 수양이 엿보인다. 항상 산을 오르고 난 뒤에는 찬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살이했을 때부터 몸에 밴 생활 습관이다.

무엇보다 측근들은 사의재를 통한 손학규 전 고문의 선문답을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해석했다. 사의재의 뜻은 손학규 전 고문이 흙집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의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계복귀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 다시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을 꺼낸 것은 처음과 변함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아직 하산할 계획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날 손학규 전 고문은 백련사로 찾아온 지지자들과 조우한 자리에서 하산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자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가사의 ‘청산별곡’을 불렀다.

실제 손학규 전 고문은 강진 흙집에서 두 번째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아궁이와 장판을 새로 하고, 창문을 이중창으로 바꾸는 등 흙집을 보수했다. 처마 밑에는 땔감으로 쓸 장작도 쌓아뒀다. 여기에 이윤영 여사도 손을 거들었다. 기자가 전날 흙집에서 마주한 이윤영 여사는 마당 주변의 나뭇잎을 주워 포대에 담고 있었다. “후박나무 잎이 두꺼워 아궁이에 잘 탄다”는 게 이윤영 여사의 설명이다.

방 한 칸에 툇마루가 전부인 흙집에서도 이윤영 여사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릴 만큼 추웠던 지난해 겨울도 “(고드름이) 커튼 같았다. 그런 풍경을 어디서 보겠나”고 반문하며 다가올 겨울도 “춥지 않다”고 말했다. 얼마 전 손학규 전 고문과 이윤영 여사의 겨울나기를 함께 할 진돗개 순덕이가 새 식구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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