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앞둔 가운데,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추진이 발표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대장주’, ‘황제주’ 등의 타이틀을 달고 있던 삼성전자가 지난달 31일 액면분할 추진을 전격 발표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결정이다.

액면분할을 하면, 총 주식 수는 늘어나고 1주당 주가는 낮아지게 된다. 50분의 1로 액면분할이 이뤄지면, 현재 200만원을 훌쩍 넘는 삼성전자 주가는 몇 만원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는 일반 소액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일반 국민들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더 쉽게 사고 팔 수 있게 되고, 삼성전자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이러한 행보에 의혹의 시선도 제기된다.

일부 언론매체들은 삼성전자의 이번 액면분할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낸 이익을 더 많은 국민에게 나눌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렸다는 찬사도 이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줄곧 “몰랐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이 대통령 최측근 비선실세와 각종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이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최지성 전 부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줄곧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이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크게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액면분할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곧이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사실이라 해도 문제다. 절차상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결정은 이사회 결의를 통과했고,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이 방안을 마련한 삼성전자 이사회는 총 9명(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사내이사 4명은 권오현 회장과 윤부근 부회장, 신종균 부회장,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이사회 내에 4개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와 사내이사 3명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 등이다. 절차대로라면 액면분할은 경영위원회에서 다뤄진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경영위원회에 이재용 부회장은 포함돼있지 않다.

즉, 정말로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 액면분할의 결정적 계기였다면, 이사회에 의한 삼성전자의 의사결정 구조는 허울뿐이란 것이 된다.

더욱이 이번 액면분할 결정은 아주 묘한 시기에 발표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오는 5일 항소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중요한 선고를 일주일가량 남겨둔 시점에 액면분할이 발표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액면분할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여론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다. 일부 언론은 액면분할 결단을 내린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날 경우,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수감생활이 길어질 경우 경영공백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1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삼성전자는 꾸준히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주가 역시 크게 올랐다.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이란 가장 큰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 일가는 과거에도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여론 전환용’ 카드를 꺼낸 바 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사재출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시 사재출연 카드를 꺼내긴 어렵기 때문에 액면분할을 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이 액면분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혹은 피해를 볼수도 있다. 다만, 이 결정에 항소심 선고를 앞둔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여론 전환 목적이 포함됐다는 시선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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