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함께 환호하고 있는 손흥민과 라멜라.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에릭 라멜라. 손흥민을 응원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내 팬들 사이에선 썩 달가운 이름은 아니다. 손흥민의 강력한 경쟁자일 뿐 아니라, 어딘가 포체티노 감독의 편애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 큰 논란을 일으켰던 페널티킥 사건도 한 몫 한다.

하지만 한동안 라멜라의 존재감은 잊혀졌다. 라멜라가 부상으로 1년 넘게 자리를 비운 사이 손흥민은 토트넘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해리 케인,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과의 호흡은 날로 좋아졌고, 본인 스스로의 자신감도 하늘을 찔렀다. 동료들이 부상이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런데 최근 손흥민을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라멜라가 복귀하면서, 손흥민이 포체티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열린 토트넘과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는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싣게 했다. ‘한국인 더비’ 가능성을 내심 기대한 국내 팬들은 이청용은 물론 손흥민까지 선발명단에서 빠지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손흥민을 대신해 출전한 라멜라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토트넘도 답답한 경기력 속에 0의 행진을 이어갔다. 정규시간을 2분 남기고 해리 케인의 천금 같은 결승골이 터졌기에 망정이지, 승점 3점을 얻지 못해도 할 말이 없었던 경기력이었다.

크리스탈 팰리스전 이후 손흥민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내는 물론이고, 영국 현지에서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나 칼럼의 댓글엔 “이적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손흥민은 정말 포체티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걸까? 포체티노는 정말 손흥민보다 라메라를 총애하고 있을까?

현 상황에서 손흥민이 라멜라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라멜라는 부상 공백이 너무 길었고, 아직은 실전 감각 등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감독 입장에선 라멜라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손흥민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선수 하나로는 한 시즌 모든 대회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라멜라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손흥민과 적절히 경쟁하며 서로의 체력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 아울러 부상 등의 악재가 발생해도 팀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감독의 바람이다.

따라서 포체티노 감독은 여건이 허락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라멜라에게 실전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을 터다.

토트넘의 최근 경기들을 살펴보자. 한국시간으로 지난 2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 EPL 경기를 치렀고, 이에 앞서 19일 로치데일과 FA컵 경기를 가졌다. 14일엔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 원정 경기를 다녀왔고, 10일엔 아스널, 5일엔 리버풀, 1일엔 맨유를 각각 EPL에서 상대했다. 그 사이 8일엔 뉴포트와의 FA컵 경기도 있었다. 그야말로 빡빡한 2월을 보낸 토트넘이다.

이 중 손흥민은 맨유(80분), 리버풀(90분), 뉴포트(61분), 아스널(70분), 로치데일(풀타임)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교체로 출전한 것은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와 가장 최근 크리스탈 팰리스전이다.

반면 라멜라는 맨유, 리버풀, 아스널과의 리그 경기에 모두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고, 이 중 2번은 손흥민을 대신해 투입된 것이었다. 상대의 무게가 떨어지는 FA컵 뉴포트, 로치데일 경기는 선발로 나섰다.

즉, 강팀을 상대로 한 중요한 경기에선 손흥민이 선택을 받았고, 수월한 상대로는 라멜라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때,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가 반론으로 제기될 수 있다. 포체티노 감독은 라멜라를 선발로 낙점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을 꼽았다.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기도 하다.

다만 유벤투스전과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 손흥민 대신 라멜라를 선택했다는 것이 ‘편애’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올 시즌 출발이 최악이었고, 강등권에 가까운 순위를 기록 중이었다. 특히 부상자가 많은 가운데, 수비에 중점을 두는 전략을 펼쳐왔다. 손흥민은 배후공간이 있는 상황에서 더 큰 위력을 갖는다. 반면, 라멜라는 아직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했으나 기술력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상대의 응집수비를 깨기엔 라멜라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뿐만 아니다. 손흥민은 한창 좋았을 때와 비교해 최근 컨디션이 조금 주춤했다. 포체티노 감독 입장에선 손흥민에게 휴식과 자극을 주고, 라멜라에겐 실전 감각의 기회를 주는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었을 수 있다.

일각에선 델레 알리나 에릭센에 비해 손흥민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손흥민과 가장 역할이 겹치는 선수가 라멜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델레 알리와 에릭센에게 부여되는 역할을 손흥민이나 라멜라에게 부여되는 것과 분명 다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손흥민이 이미 월드클래스 선수라는 사실이다. 또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포체티노 감독이다. 지나친 걱정은 때로 선수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원치 않는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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