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거래소의 끊이지 않는 해킹 피해로 신뢰를 잃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암호화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가 또 다시 해킹 피해를 입었다. 높은 수준의 보안이 최대 강점인 암호화폐가 계속해서 해킹 리스크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거래량 7위에 해당하는 코인레일은 지난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암호화폐 해킹 피해 사실을 알렸다. 펀디엑스, 애스톤, 엔퍼 등 9종의 암호화폐가 해킹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 규모는 4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피해로는 최대 규모다.

이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암호화폐 시세는 큰 폭으로 추락했다. 800만원대를 유지해오던 비트코인은 700만원대로 떨어졌고, 하루 새 20%가량의 하락폭을 보인 암호화폐도 있었다.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이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4월 야피존이 해킹 피해를 입은데 이어 12월엔 유빗이 해킹을 당했다. 각각의 피해규모는 55억원과 172억원이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도 잇달았다.

해외에서는 일본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가 올해 초 6,000억원대에 달하는 해킹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는 해킹이 불가능한 높은 보안성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킹 피해에 얽히는 일이 계속되면서 암호화폐의 신뢰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해킹 피해를 입은 것은 암호화폐 자체가 아닌 암호화폐 거래소다. 지폐 자체는 위조가 불가능한데, 허술한 금고를 털어 아예 이 지폐를 훔친 것과 같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의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암호화폐 유통 및 거래가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증권거래와 흡사한 중앙 집중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는 해킹을 통해 탈취한 뒤 현금화가 쉽고, 추적이 어렵다. 암호화폐 관련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커들이 꾸준히 타깃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피해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대규모 해킹 피해를 입을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이를 온전히 보상받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는 방법이 있겠지만,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들 뿐 아니라 거래소 파산 등으로 인해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일부 거래소의 경우 약관을 통해 보상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관련 규제 또는 보호방안 마련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시세가 급등하며 광풍을 일으켰던 지난해, 정부는 신규 자금이 유입되기 어렵도록 규제 방안을 마련했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 및 수사를 벌였다. 일각에서는 거래소 폐쇄 등 강도 높은 규제 방안이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1월 중순 이후 암호화폐 시세가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줄어들자, 정부의 움직임도 속도가 뚝 떨어졌다. 현재는 마음만 먹으면 암호화폐 거래소에 자금을 넣고 거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과거 유빗 해킹 당시 피해를 입은 바 있는 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별도의 암호화폐 지갑에 보관하다가 거래가 필요할 때만 해당 거래소 지갑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지만, 송금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어려움이 많다”며 “해킹 피해를 당한 이후엔 여러 거래소에 분산해서 보관하고 있다. 그나마 혹시 모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암호화폐 자체를 금지시키는 방안은 부담스럽고, 해킹 등 각종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은 암호화폐를 인정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현재로선 거래소 자체적 보안 강화가 유일한 대책이며, 또 다시 대규모 해킹 피해가 발생할 경우 암호화폐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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