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의 부편칩국장 밥 우드워드가 대통령과 참모들의 갈등을 다룬 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백악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워싱턴포스트의 부편집국장이자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것으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의 책 때문이다. 오는 11일(현지시각) 출간될 예정인 이 책에는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라는 제목이 붙었으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약 20개월여 동안 단편적으로 보도됐던 대통령과 참모진의 갈등설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우드워드 “트럼프, 한·미 FTA 폐기하려 했다… 게리 콘이 막아”

우드워드가 집필한 책은 출간을 일주일 남겨둔 4일(현지시각) 현지 언론을 통해 일부 내용이 유출됐다. CNN이 이날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드워드는 백악관에서 “뱀과 쥐, 매와 토끼, 그리고 상어와 물개를 칸막이 없는 우리에 넣어둔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썼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올해 3월까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았던 게리 콘이다. 우드워드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게리 콘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지와 대통령 직무를 배우려는 의지 부족에 충격을 받았으며, 대통령이 국방과 경제, 그리고 외국 정부와 현명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두고 매티스 국방장관과 수차례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한반도 경제·외교문제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들에서도 트럼프와 의견충돌을 빚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완전히 폐기할 것을 명령한 서류를 자신의 책상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게리 콘 전 NEC위원장이 이것을 훔치는 바람에 협정 폐지는 현실화되지 못했으며, 콘 위원장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과 관련해서도 같은 일을 벌였다.

한편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못하도록 설득하느라 애를 쓴 것으로 묘사됐다. 우드워드는 그가 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도가 “초등학교 5, 6학년 수준이다”고 불평했다고 밝혔다.

◇ 워싱턴 포스트, 익명의 기고문 통해 백악관에 연타 날려

우드워드의 폭로를 수습하려 애쓰던 백악관은 하루 뒤 또 다른 고발에 직면했다.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각) 행정부의 현직 고위 관료가 보낸 기고문을 익명으로 게재했다. 자신을 ‘트럼프 행정부 안에 있는 저항세력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이 인사는 “백악관의 가장 큰 딜레마는 행정부의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대통령의 정책들을 좌절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 익명의 기고자는 행정부가 분열된 원인을 트럼프의 얕은 도덕의식에서 찾았다. 그는 “트럼프와 함께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특별한 원칙 같은 것은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대통령을 “건강한 공화국을 만드는데 해로운 존재”라고 표현했다. 우드워드의 폭로와 유사한 구절도 있다. 행정부의 ‘최고위 관료’가 자신에게 “대통령이 1분 뒤에 마음을 바꿀지 말지 아무도 모른다”고 불평하곤 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자신이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 더 튼튼한 국방 등의 정책에는 동의하지만 긴 세월 동안 공화당과 미국 보수파가 지켜온 가치들(자유시장경제와 개인에 대한 존중 등)을 무시하는 것은 반길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언론사들을 ‘민중의 적’이라고 부른 일을 ‘비민주적’이라고 표현하며 깊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 트럼프는 ‘발끈’

11일(현지시각) 출간 예정인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의 표지. <뉴시스/AP>

밥 우드워드의 책과 뉴욕타임스에 실린 익명의 기고문은 모두 같은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백악관의 명령체계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공화당 인사들이 대부분인 내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드워드가 자신의 책에 쓴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지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있다. 자서전이나 폭로기사를 쓰는 작가들은 세부 내용을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출간 전 공개하는 내용들도 자극적인 것들로 골라내곤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5일(현지시각)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우드워드에 대한 비평(“기사가 지루할 때만 사실관계를 재검토하는 인물”)도 함께 실었다.

다만 현재까지 대통령과 불화를 빚으며 퇴진한 행정부 고위 인사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블룸버그가 지난 3월 22일(현지시각) 집계한 바에 따르면 당시에 이미 대통령의 핵심 참모 중 35%가 백악관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게리 콘 위원장과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이 포함돼있다. 존 켈리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 보좌관과 권력다툼을 벌였으며, 내각에서는 렉스 틸러슨이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로 국무장관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부터 현재까지 총 14개의 트윗을 올리며 우드워드와 익명의 기고자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이 우드워드의 책에 써진 것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켈리 비서실장과 매티스 국무장관의 발언을 공유했으며, 워싱턴포스트지가 실은 기고문에 대해선 반역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또한 뉴욕타임스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후 “실존한다면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 측에 신원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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