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당시 태안 앞바다를 뒤덮은 기름은 현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기름을 제거됐지만, 관광객 감소 등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발암 공포는 물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지도 오래다.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 측의 보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5년의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이들의 ‘검은 악몽’을 되짚었다. 

▲ 충남 태안 기름유출사고 발생 5주년을 앞두고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원유유출사고 태안 유류피해민총연합회 삼성 투쟁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삼성중공업의 책임 있는 보상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악몽이 덮친 것은 지난 2007년 12월 7일 오전.
당 시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이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충돌하면서 원유 1만2,547㎘가 유출됐다. 인천대교 건설공사에 투입됐던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을 예인선단 2척이 쇠줄에 묶어 경상남도 거제로 예인하던 도중 한 척의 쇠줄이 끊어지면서 묶여있던 해상크레인이 유조선과 3차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고는 GS칼텍스(구 LG정유)-시프린스호 사건보다 2.5배 큰 규모로, 최악의 원유 사고로 기록됐다.

흘러나온 원유 1만2,547㎘는 순식간에 태안 앞바다를 검게 뒤덮었다. 설상가상 높은 파도와 강풍 속에서 방제정은 제 기능을 잃었고, 오일펜스 역시 뒤늦게 설치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악화되기 시작했다. '청정도시' 태안군은 삽시간에 '재앙의 도시'로 전락했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수습되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 까지 2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절망적인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째. 전국에서 5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았다. 기름덩이를 제거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밤낮없이 이뤄졌다. 태안 앞바다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 모습을 복원하는데 2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놀랍게도 5년이 지난 2012년 현재 태안 앞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푸른빛을 되찾았다.

여전히 '검게 드리워진' 악몽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검은 바다, 태안'은 잊혀졌다.

예의 푸른빛을 되찾은 것만으로 당시의 '악몽'은 치유됐을 것이라 모두 믿었다.

정말 그럴까.

태안 기름유출사고 발생 5주년을 나흘 앞둔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중공업 사옥 앞에서는 서해안유류피해민총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서해안 유류피해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꽃상여에 불을 질러 꽃상여 화형식을 진행하면서 “서해안기름유출 가해기업인 사회적 살인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국민소환에 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 모인 총 3500여명의 서해안 유류 유출 피해민을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김진권 연합회 의장은 “피해자인 우리가 삼성 앞에서 지난 5년 간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기름 유출 후 삼성의 미온적 태도를 규탄했다.

▲ 같은날 열린 삼성 원유유출사고 희생자 합동 위령제.

실제 당시 사고 이후 태안군의 지역경제와 주민들은 상당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일 단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다. 태안군이 집계한 관광객 수 자료에 따르면, 사건 발생 전인 2007년 태안군을 찾은 관광객은 2,088만명, 그러나 올해 9월 678만명만이 이곳 태안을 찾았다. 수산물 위탁판매 역시 2007년 1만4,146t에서 지난해 7,354t으로 급감해 ‘관광’과 ‘수산물 판매’를 업으로 삼는 이 지역의 경제가 신음을 앓고 있다.

주민들의 건강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지 난 2011년 12월 14일 태안환경보건센터가 공개한 ‘방제지역 주민 건강영향지표 추적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방제작업에 참여했던 주민들에게서 세포 내 유전물질이나 지질 산화적 손상지표가 높게 나타났다. 이들의 손상지표는 폐금속 광산 주민보다 2배가량 높았으며 공단 인근 주민보다는 약 3배 이상으로 드러났다.

보건센터 측은 “방제작업기간이 길수록 알레르기 증상이나 고혈압 유병률 증가 이상소견이 보인다”면서 “심한 경우 면역체계 이상을 가져오거나 암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유류피해 주민 614명을 대상으로 정밀검진을 한 결과, 230여명이 용종과 같은 이상 징후가 보여 조직검사를 받았고, 이 중 5명은 대장암과 식도암 등 암 질환을 진단 받았다.

급기야 사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민 4명이 자살하는 등 태안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어야만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삼성중공업의 배상 문제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답보 상태라는 점이다.

대기업의 '배짱'인가

정부는 사고 당시 생활고를 겪는 주민 6만7,757가구를 위해 993억원의 긴급생계안정자금을 내놨다. 2008년과 2009년에는 특별공공근로사업 등을 실시해 이들의 생계를 도왔다. 하지만 이후엔 이마저도 줄었다.

1 차 보상 책임이 있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청구된 피해배상 건수는 2만8,951건, 금액으로는 2조7,751억1,300만원에 달하지만 국제기금의 피해 인정건수는 4,762건, 금액은 1,798억8,800만원에 그쳐 주민들이 신청한 배상금액 대비 피해사정 결정 금액의 비율은 6.3%에 불과하다.

이는 IOPC펀드가 2008년 1차 조사 후 피해액이 5,663억~6,013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삼성-허베이스피릿 원유사고보다 규모가 작았던 씨프린스호 사고 때 청구금액의 47.4%를 받은 점, 1997년 일본 나홋카호 중유 유출 때 보상 청구액의 73%, 1999년 프랑스 에리카호 기름 사고 때 60% 보상을 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유류 사고로 가게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놓인 태안군 내 A횟집 주인은 IOPC펀드에 손해배상금 5,000만원을 신청했지만, 펀드로부터 10만원도 채 되지 않는 배상금 통지서를 받아들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쯤되자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을 향한 태안 주민들의 분노는 그야말로 극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입장은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삼 성중공업은 지난 2008년 말, ‘태안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며 법원에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 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은 기름유출 사건에 대한 책임한도액 및 그에 따른 법정이자를 56억3,4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피해규모를 고려할 때 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국민적 비난여론을 의식한 삼성은 마지못해 1,000억원의 지역발전협력기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역시 태안 주민들이 겪은 피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주민들은 사고의 피해 규모 등을 고려해 5,000억원 출연을 요청하고 있고, 삼성 측은 "그 정도면 도의적 책임은 충분하다"고 맞서면서 협상은 5년 째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 노인식 삼성중공업 사장.

앞서 삼성중공업 본사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연 국응복 연합회 회장은 “피해민들이 생계의 고충과 사고 후유증인 질병으로 신음하는 동안 가해기업인 삼성중공업은 5년 간 4조3,000억원이라는 당기 순이익을 내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며 1,000억원의 기금 출연과 56억여원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삼성중공업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연합회가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측에 주장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은 국민이 소환한 국회 유류특위에 출석해 국민과 피해민에게 사죄하고 피해주민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할 것, △유류사고로 인해 산화한 네 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할 것, △사고 초기 약속대로 정부 주도의 연안생태계 복원계획에 참여해 피해지역 바다의 생태계를 원상 복구할 것, △기름 유출사고로 인해 붕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태안에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할 것, △피해지역 발전기금 생태 환경학적 피해액과 관광객 감소로 인한 관광피해 금액을 합산해 증액을 출연할 것 등이다.

한 편, 제 18대 대통령직에 오른 박근혜 새누리당 당선인은 후보로서 태안을 방문했던 지난 11월 28일 유세 현장에서 태안기름유출사고에 대한 보상과 지역경제 활성화, 환경복원 등을 적극 지원키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 5년간 태안 주민들을 새까맣게 멍들게 했던 기름유출사건이 과연 이번 정부에서 매듭지어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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