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답변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답변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고(故) 김용균 씨가 저를 소환했다고 생각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 등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시급한 법안들이 자유한국당의 운영위 소집 요구와 맞물려 공전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조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김용균법이 처리된 전후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조 수석은 국회에 출석한 8번째 청와대 민정수석이 됐다. 민정수석이 업무보고·국정감사를 비롯해 국회 상임위원회에 출석한 것은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전해철 전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후 12년 만이다. 민정수석은 주요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만큼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명분에 따라 ‘국회 불출석’ 관행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다.

특히 민정수석이 국정감사가 아닌 운영위 현안질의의 답변증인으로 채택돼 국회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조 수석은 “한국당에 의해 고발된 당사자이면서 검경 업무를 관장하는 민정수석이 관련 사건에 대해 운영위에서 답변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서도 “민정수석의 운영위 불출석 관행보다 ‘김용균법’ 통과가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 수석이 첫마디를 뱉기까지는 1시간 가량이 걸렸다. 운영위는 오전 10시에 개의했지만, 증인 출석 요구와 운영위원 사·보임 문제를 놓고 여야 의원들의 설전이 이어지면서 본 질의는 11시가 다 돼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야당은 민정수석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과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오후에라도 출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 수석이 운영위 소집 배경인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와 관련한 청와대 현안보고를 진행하려 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 차관 보고는 안 받는다”며 막아서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럴 거면 민정수석을 왜 불렀느냐”고 반박했고, 운영위원장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국당이 거의 한 달 째 일방적으로 주장했던 내용에 대해 청와대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중재해 현안보고가 진행됐다.

조 수석은 “국정농단을 경험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해왔다.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게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 특감반 소속 행정요원이 (민간인 정보를) 수집해온 경우엔 폐기하거나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며 “이 사태 핵심은 김태우 행정요원이 (본인의) 징계 처분이 확실시 되자 정당한 업무처리를 왜곡해 정쟁을 만들고 희대의 농단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 한다. 이 자리로 왜곡된 주장에 대한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오후 전체회의에 조국 민정수석이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오후 전체회의에 조국 민정수석이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 형광펜 밑줄 그은 자료 수북

본격적인 질의가 시작됐을 때도 조 수석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빼곡한 방송 생중계 카메라와 처음 겪어보는 질의 공세에 당황한 기색도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답변했다. 조 수석이 앉은 증인석 자리에는 사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답변 자료가 가득했다.

조 수석은 김 전 특감반원의 ‘스폰서’로 불리는 건설업자 최모 씨와 고교 동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특감반) 사태 파악 이후에 알게 됐고 (최씨와는) 일면식도 없고 어떤 연락도, 직접·간접적으로도 연락을 한 바 없다”고 했다. 김 전 특감반원을 직접 만난 적 있느냐는 질의에는 “따로 보고를 받은 적 없다”며 “총 2~3회 정도 특감반원 전체 점심 회식이 있었는데 그때 김 전 특감반원이 있었다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께서 취임 후 첫 번째로 한 일 중 하나가 국정원의 IO(정보담당자)를 모두 철수시킨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 저희가 열 몇 명되는 행정요원을 갖고 민간인 사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저는 즉시 파면돼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조 수석은 이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판례를 예로 들며 “‘민간인 사찰’이라 함은 몇 가지 판례에 적시된 요건이 있다. 권력기관이 지시를 해야 하고, 정치적 이용 목적이 있어야 하고, 특정 대상·인물을 목표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금 특감반원 김태우 요원이 수집한 민간정보가 부분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정보는 이 같은 민간인 사찰 요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민간정보조차도 감찰반장인 반부패비서관을 통해서 폐기되거나 관련 부서로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은 감찰 결과 지난해 6~7월께 김 전 특감반원이 지인인 건설업자 최씨에게 ‘청와대 특감반으로 가고 싶다’며 인사 청탁을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씨가 김 전 특감반원의 인사를 부탁한 제3자를 알고 있느냐’고 질의했고 조 수석은 “제가 감찰본부에 연락해서 감찰 내용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3자를 밝히는 것은) 제 업무 범위를 넘어선다”며 “최씨와 민간인(제3자)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사건이 배당된 서울 동부지검 등에서 수사로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야당은 특감반원 사태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조 수석 ‘경질론’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 다르게 생각한다”며 “전체적으로 정치적인 상황이 부족했다고 해서 각 책임자에게 다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공직자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전체 책임자로서 느끼는 책임과는 별개로 민정수석 또는 책임라인에서 김 전 특감반원의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면서 대응해왔다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조 수석은 “이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 크다”면서도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책임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퇴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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