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국회에서 새해를 맞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석한 운영위원회 전체회의가 1월 1일 자정을 넘긴 0시 46분께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촉발된 문재인 정부의 불법사찰·블랙리스트 의혹을 놓고 여야 의원들은 밤늦은 시각까지 목소리를 높여가며 공방을 이어갔다.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 운영위 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게 된 조 민정수석은 초반에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김도읍 한국당 의원이 우윤근 러시아대사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장을 확인했느냐” “언제 했느냐” “이유가 무엇이냐”는 등 속사포 질의를 퍼부었을 땐 답변 과정에서 말을 더듬기도 했다. 양쪽 볼이 붉게 상기된 모습도 포착됐다.

하지만 금세 여유를 되찾았다. 한국당 의원들이 검증되지 않은 ‘폭로성’ 증언을 공개하며 ‘헛발질’ 질의를 반복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만희 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김정주 녹취록’이 대표적이었다.

“저는 환경 분야에서 20년간 종사해 온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에서 근무한 김정주이고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중략) 2017년 8월30일, 환경부와 기술원 노조,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의원의 집요한 괴롭힘과 인격적 모독, 폭행, 허위사실 유포로 정든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면서 도저히 사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사퇴했고, 지금도 그때의 충격으로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때문에 퇴사했다는 김정주 전 환경부 산하 환경기술본부 본부장의 주장이 담긴 녹취록을 운영위 회의장에서 틀었다. 이 의원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조 수석을 향해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한 번도 그만두라고 한 적 없다, 임기 존중하겠다’고 했죠?”라며 녹취록을 재생했다. 조 수석이 “이런 문건을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고 답하자 “‘내로남불’의 DNA가 뼛속까지 들어있는 정권, 거짓과 위선이 판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본부장은 2016년 총선에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을 달았고, 본부장 임기 2년은 물론 낙선 이후 1년 임기 연장을 신청해 총 3년을 꽉 채우고 퇴임사까지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답변에 따라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석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김태우 사태’를 기점으로 여론몰이를 하려던 한국당의 조급함이 오히려 역풍을 부른 셈이다.

반면 조 수석은 국회 데뷔전을 무난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인처럼 수려한 말솜씨는 아니었지만, “제 업무 밖의 일”이라며 추가질문을 피했고 “운영위를 보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란 단호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혐의를 파악한 직후 상황에 대해서는 “조용히 덮었으면 하는 일말의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라고 솔직한 실토를 뱉기도 했다. 굵직한 선거철마다 ‘영입인재’ 1순위로 꼽혀왔던 조 수석이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더 큰 도약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조 수석은 운영위를 끝낸 1일 새벽 “새해에는 정치공방보다 민생경제 쪽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상파방송 새해 여론조사 결과, 국민이 꼽은 ‘올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분야’ 역시 경제(61.2%)였다. 정부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물론 야당의 몫이다. 하지만 ‘본업’인 민생경제를 위한 법안 처리는 뒤로하고 정치공세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민심을 얻기 어렵다. 운영위에 이어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는 한국당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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