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5월이 석 달이나 남아있는 2월 초순에 난데없는 5.18의 분노와 화염을 불러온 것은 오롯이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 자리를 노리고 5.18 공청회를 주최한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등은 극우인사 지만원 씨를 초청, 그들이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 내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지만원 씨는 자신의 특기인 ‘5.18북한군개입설’을 또다시 되풀이 했다. 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내려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60만 정규군과 3만여 주한미군은 한낱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것도 전군이 전투준비 태세에 돌입해 있는 데프콘(DEFCON) 상황에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해 만행을 저지르고 달아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면, 적어도 한국군 합참의장과 주한미군 사령관은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그가 20년 가까이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 소수의 극우세력과 수구 정치인들, 그리고 솜방망이 처벌을 예사로 하는 사법부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만원 씨의 왜곡과 궤변을 길러 준 절대 자양분은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라고 본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1년 1월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의 무죄판결을 들 수 있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내란음모’라는 지만원 씨의 주장에 대해 당시 법원은 “5.18을 왜곡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이미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됐기 때문에 지만원 씨 주장으로 5.18 관련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바뀌기 어렵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그 판결 또한 궤변에 가깝게 보인다. 대법원 판결도 동일했다. 

그 후 지만원 씨의 주장에는 힘이 실렸고 강해졌지만 법원의 판결은 관대했고 2심, 3심으로 갈수록 형량은 오히려 낮아지기도 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하는 식의 사실상 봐주기 판결을 서슴지 않았다. 지만원 씨가 북한군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못 박아 주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판결 이후부터라는 게 5.18 관련 단체들의 설명이다. 

지만원 씨가 ‘광주에 내려온 북한 특수군’이라며 이름 붙인 ‘광수’를 유포시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5.18 당시 광주 현지에 내려와 활동한 광수가 600명이 넘는다며 일련번호를 붙여 놓았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황장엽·장성택·이을설·오극렬·이선권 등 북한의 VIP는 물론 고영환 등 탈북자들도 다수 포함돼있다.

이번에 북한군 개입설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자 같은 당의 서청원 의원이 입을 열었다. 80년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 중견 기자로 광주현지를 열흘가량 샅샅이 취재한 그였다. “5.18은 숭고한 민주화 운동이다. 600명의 북한군이 와서 광주시민을 부추겼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지만원 씨의 망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던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도 “이번만큼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의 망언 3인방 제명 촉구 등이 담긴 성명을 발표했다.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는 지만원 씨에 의해 ‘광수’로 지목된 시민 600여명을 찾아 지만원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만원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는가 하면 유튜브 방송인 ‘하태경TV’도 시작했다. 

80년 5월 부산 국제신문 소속의 조갑제 기자도 회사에 병가를 내고 광주에 잠입, 취재한 죄(?)로 강제 해직됐다. 그는 지만원 씨의 북한군 개입설이 등장하자 무엇보다 사실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반박문을 게재했었다. 그는 북한군 개입설이 왜 말이 안 되는지 12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한두 가지만 옮겨보자. 

△5월 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시외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 중이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광주에서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이 5월 18일 광주상황을 보고받고 특수부대에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아무리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 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돼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이념적 입장, 또는 희망적 관점에서 북한군 개입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광주사태 당시 시위대는 반정부적이었지만 친북적이지는 않았다. 시위대가 간첩 같은 사람이 끼어 있다고 군 당국에 신고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늘 나왔다. 

조갑제 씨의 반박은 5.18을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것 말고는 저널리즘에 합당한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 막무가내 식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역사는 주관적인 이념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같은 극우논객으로 불리면서도 북한군 개입설 파동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편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이면 5.18도 40주년이 된다. 5.18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고 특정 지역만의 아픔도 아니다. 국민 모두의 아픔이고 슬픔이기에 전 국민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국가 기념일이다. 5.18 광주가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죄 없는 광주시민들은 또다시 아픈 상처를 쓸어안는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5.18은 아직도 강 건너 불이다. 5.18의 분노와 5.18의 슬픔은 왜 광주만의 몫이어야 하는가? 그 무거운 짐을 온 국민이 나누어 짊어지면 안 되기라도 하는 것인가?

아직도 5.18은 4.19나 6.25, 8.15처럼 국가적인 행사로 자리 잡지 못하고 광주라는 지역에 한정된, 그래서 옹색하고 왠지 편치 않는 지방행사로 밀려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광주지역 5.18 유공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5.18을 광주지역에만 국한된 행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도 이번에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은 5.18의 아픔이 광주만의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자유한국당)은 ‘달빛동맹’(달구벌+빛고을 동맹)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용섭 광주시장(더불어민주당)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권영진 시장은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인해 5.18 정신을 훼손하고 광주시민들에게 깊은 충격과 상처를 드렸다”고 말하고 “대구·경북 시·도민의 57.6%가 해당 국회의원들의 제명에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용섭 시장도 “권영진 시장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고 화답했다.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광경이요, 참으로 경탄해마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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