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 뒤 헤어지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스치듯 멀어지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청와대가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와 관련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편집방향과 논조를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해당 언론사의 일본어판이 한국의 여론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지 못하며, 나아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본인의 혐한 기류에 일조하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청와대가 특정언론사를 콕 찍어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7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야후재펜 국제뉴스 면에는 중앙일보 칼럼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조선일보 ‘수출규제 외교장에 나와라’, ‘문재인 대통령 발언 다음 날 외교가 사라진 한국’ 이러한 기사가 2위, 3위에 랭크돼 있다”며 “이것이 진정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이어 고 대변인은 “한국 기업인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를 모으려고 하는 이때에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들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편집방향을 문제 삼았다.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한국의 여론을 잘못 이해하도록 함으로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기사 제목 달랐다

특히 청와대는 해당 언론사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기사제목이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가 4일자 ‘일본의 한국 투자 1년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제하의 기사를 일본어판에서는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5일자 ‘나는 선 상대는 악?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 것도 해결 못해’라는 기사를 ‘도덕성과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로 교체한 것을 예로 들었다.

지난 15일에는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를 일본어판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일 한국 청와대’로 바꿔 기사를 제공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나아가 청와대는 두 언론사의 사설과 칼럼 논조에도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고 대변인은 “중앙일보는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정책’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조선일보는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칼럼으로 일본 인터넷에 게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국 민정수석도 청와대 브리핑에 앞서 같은 내용으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었다. 조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혐한 일본인의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이 누구냐”며 “민정수석 이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한다. 두 신문의 책임있는 답변을 희망한다”고 적었다.

정부의 대일 대응기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정부의 대일 대응기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 ‘북한→일본’으로 전쟁터 변경

다만 청와대는 조 수석의 주장과 청와대 공식입장 사이 직접적인 연관성은 부인했다. 대변인실 차원에서 해당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며, 또한 대통령의 생각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 대변인실이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하지만 늘상 말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며 “언론보도 분석을 통해 오보가 나가는지,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는지 파악하는 일 또한 우리의 업무”라고 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가 특정 언론사의 논조를 비판하고 전선을 세운 것이 이례적이지만 처음은 아니다. 판문점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해 5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부 언론 보도가 (남북관계에 있어) 위태로움을 키우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보도가 심각하다”며 “70년 만에 맞는 (평화의) 기회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70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제 그만 잡고 있는 발목을 놓아주기 바란다”고 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핵심 쟁점이 북한에서 ‘일본’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국민적 반감이 남아 있고,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여론도 적지 않아 보수와 진보 진영 간 팽팽한 기류가 형성됐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적 앙금이 무엇보다 크고, 최근의 무역규제 조치가 정당성이 없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실제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대응 수준에 대해 ‘적절하다’는 의견이 39.2%, ‘너무 약하다’는 33.8%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3%가 현 정부 기조를 옹호하거나 더욱 강경하게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반면 현재 한국정부의 대응이 ‘너무 강하다’는 답변은 12.3%에 불과했다. <7/16 조사. 최종응답자 500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 응답률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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