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대표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수락했을 때, 한 비박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일대일’ 단독 영수회담 형식이 아니면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던 황 대표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선회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황 대표가 처음 단독회담을 제안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여러 당의 대표가 모여 한 마디씩 거드는 형식으로는 실질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한 뒤에 일대일 회담을 하자는 청와대의 ‘역제안’도 거절했다. 황 대표는 “일대일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저와 단독 만남을 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던 황 대표가 7월 15일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형식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돕기 위한 모든 방식에 다 동의한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황 대표 측 한 의원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만큼 서둘러서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만나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여야 관계자들 사이에서 “황 대표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는 이전부터 돌고 있었다. 단독회담을 요구하며 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대표 회동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가 세 번째에 ‘조건부 참석’으로 입장을 바꿨던 홍준표 전 대표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는 “안보 위기가 엄중하다”는 이유로 2018년 3월 열린 청와대 초청 정당대표 회동에 참석했다. 황 대표의 명분이 ‘경제’라면 홍 전 대표는 ‘안보’였던 셈이다. 제1야당 대표로서 청와대의 대화 요구를 언제까지나 거부할 수는 없었다는 게 공통된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홍 전 대표와 황 대표가 맞닥뜨린 정치적 상황이 다르다는 데 있다. 황 대표가 회동의 형식을 가지고 청와대와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당 안팎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해묵은 계파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본인을 포함한 당 소속 인사들의 실언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당 지지율이 하락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던 홍 전 대표는 안보위기를 고리 삼아 정당대표 회동 후 단독 영수회담까지 끌어냈고, 당시(2018년 4월) 한국당 지지율은 4주 연속 상승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황 대표가 이번 청와대 회동에서 특별한 성과를 올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주요 의제였던 일본의 수출규제 대책에 대해선 원론적인 부분만 공감대를 형성했고 대일 특사 파견, 외교안보라인 교체와 같은 한국당의 요구도 관철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도출한 ‘공동발표문’도 추상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다. 황 대표의 우려처럼 ‘여러 당 대표가 한 마디씩 거드는’ 형식으로는 실질적인 논의가 불가능했던 걸까?

황 대표는 청와대 회동이 끝날 무렵 다른 대표들이 자리를 뜬 와중에 문 대통령과 창가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제안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애초에 청와대가 정당대표 회동 후 단독회담을 하자고 했었고, 홍 전 대표 때 사례를 고려하면 앞으로 황 대표와 문 대통령의 일대일 회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황 대표 역시 이번 회동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준비했던 이야기를 다 못했다”며 단독회담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만남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추후에 있을지도 모를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자체에 기대를 거는 국민은 거의 없다. 단순히 ‘국면 전환’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의 영수회담이라면 더욱 비판을 받게 될 뿐이다. 문 대통령과 홍 전 대표의 단독회담 이후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